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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정유라도 끌어다 쓴 보증신용장 대출 문제없나

이태경 경제부 기자

이태경
경제부 기자

“정유라씨가 평범한 19살 대학생이었다면 어땠을까요. 독일 현지에서 그렇게 간단한 절차로 초저금리 대출을 받기 어려웠을 겁니다.”

PB들, VIP 고객에 소개하는 제도
기업 아닌 개인도 832명 받아
해외 재산 빼돌리기에 악용 가능성
업계 “개인고객 거래 제한 검토를”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딸인 정씨가 연리 1% 미만의 특혜성 대출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한 시중은행 여신담당자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지난해 10월 외환은행(KEB하나은행으로 통합) 압구정중앙지점은 최씨와 정씨 소유의 평창 토지를 담보로 잡은 뒤 외환은행 독일 법인에 보증신용장을 발급했다. 정씨는 이를 근거로 외환은행 독일법인에서 25만 유로(약 3억2000만원)를 대출받았다.

4대 시중은행에 알아보니 정씨처럼 해외에서 보증신용장 대출을 받은 사람은 하나은행(외환은행 포함)에서만 2010년 이후 802명이다. 다른 은행에선 신한은행에 30명이 있었을 뿐 KB국민·우리은행은 이런 대출을 받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보증신용장은 중소기업의 원활한 수출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기업이 수출을 하면 국내 은행의 보증을 담보로 해외 현지 은행이 국내 기업에 수출대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수입업자가 대금을 늦게 지급해 수출업자가 피해를 입는 걸 막기 위한 제도다. 그런데도 당시 외환은행은 보증신용장 국제 규칙에 “개인은 이용할 수 없다”는 조항이 없다는 점을 들어 해외 체류 중인 개인 고객의 대출 수단으로 활용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 PB(자산관리)센터에서 VIP고객에게 소개해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국내에 부동산이 많은 부유층의 재산 해외 반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해외에서 일반 대출을 받은 사람과의 형평성 논란도 거세다. 보증신용장 대출이 일반대출에 비해 절차가 간단한데다 금리·수수료도 싸기 때문이다. 만일 일반대출이었다면 해외 현지에서 대출 신청 서류를 국내 은행 지점으로 보낸 뒤, 현지 영사관이 인증한 국내의 대리인을 통해 대출을 받아야 한다. 대출금은 국내의 본인 계좌로 입금되기 때문에 유로화로 환전해 다시 해외 현지로 송금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더구나 보증신용장을 활용한 대출은 수출기업의 편의를 돕자는 취지로 송금·환전 수수료를 거의 받지 않고 있다. 만일 정씨가 일반대출을 받았더라면 적지 않은 송금·환전 수수료를 부담해야 하는 것은 물론 대출금리도 국내 수준에 맞춰 연 2~3%대로 뛰었을 가능성이 크다.

금융당국은 정씨의 대출 건에 한해서만 금리와 담보가 제대로 설정됐는지 들여다보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금융권에선 “이번 기회에 개인 고객의 보증신용장 거래를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수출기업의 무역 거래를 위해 만든 제도의 혜택을 개인이 누리는 것은 옳지 않다는 취지에서다. ‘정유라식 특혜 대출 의혹’이 재발하는 것을 막으려면 허점이 있는 현 제도를 반드시 고쳐야 한다.

이태경 경제부 기자 uni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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