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황제의 이름을 찢어버린 베토벤

김호정 문화스포츠부 기자

김호정
문화스포츠부 기자

베토벤이 세번째 교향곡 제목 고치는 과정을 보자. 제목을 고치는 정도가 아니었다. 본래 ‘보나파르트 교향곡’이라 쓰여있던 표지에서 ‘보나파르트’에 선을 그어 지워버렸다. 지운 정도도 아니다. 펜으로 박박 그어서 종이에 구멍을 낼 듯 이름을 없애버렸다.
 
강렬한 지지는 엄청난 혐오가 됐다. 베토벤의 마음 속엔 새로운 세상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제시했다 믿었던 세계, 개인이 자신의 의지에 의해 살아갈 수 있는 시대를 믿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은 베토벤의 믿음을 조롱했다. 베토벤은 제목이 적힌 표지를 찢어버렸다. 교향곡 제목은 ‘영웅’으로 바뀌었다.
 
이 음악은 굉장히 이상하게 시작한다. 청중에게 일부러 불쾌감이라도 주려는 듯 불필요하게 커다란 음향의 화음이다. 그것도 두 번이나 갑작스럽게 울린다. 베토벤은 아름답지 않은 것을 음악에 끌어들인 최초의 인물이다.
 
 
(단순한 세 개의 음으로 만든 ‘영웅’ 테마가 발전하고 성장하며 거대한 교향곡을 이끌고 간다. 번스타인이 지휘한 ‘영웅’ 교향곡 1악장.)
 
그의 음악은 깎아놓은 듯한 아름다움을 일부러 비켜간다. 갑작스러움, 고통, 죽음, 싸움처럼 웬만하면 피해가고 싶은 감정을 모아 청중이 힘들게 직면하도록 끌어다 놓는다.
 
영웅 교향곡은 베토벤의 스타일이 정립된 최초 작품으로 꼽힌다. 태어난 이상 세계와 싸워야 하는 인간, 죽음을 넘나드는 투쟁, 그리고 승리로 이어지는 드라마를 그는 장대한 50여분짜리 교향곡 안에서 그렸다. 이전의 작곡가들이 하지 못했던 일이다.
 
 
(베토벤은 왜 ‘영웅’ 교향곡 2악장을 장례식 음악으로 만들었을까. 그는 음악 안에 거대한 인생 하나를 녹이고자 했을 것이다.)
 
이제 현대의 청중은 여기에서 나폴레옹을 만나지 않는다. 대신 베토벤의 정신을 읽는다. 이 곡을 완성하던 34세 베토벤은 이미 자신의 청력 이상을 알고 있었고, 죽음을 맞이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영웅 교향곡은 이처럼 가장 어둡던 시절에 이뤄낸 베토벤의 도약이다. 하이든·모차르트 같은 선배 작곡가들로부터 독립이 가능해졌다.
 
영웅 교향곡엔 베토벤을 뛰어오르게 한 발판이 보인다. 인간에 대한 믿음이다. 싸우고 절망하지만 삶을 지속하는 모든 사람의 행동에 영웅성을 부여했다. 지휘자 마이클 틸슨 토마스는 “이 음악의 영웅은 더 이상 나폴레옹이 아니고 일반 사람, 그리고 베토벤 자신”이라 해석했다.
 
 
(싸우고 지치지만 결국 승리하는 드라마. 베토벤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이 스타일은 처음엔 비판을 들어야 했다. 규격화된 음악에 익숙하던 당시 청중은 베토벤의 음악에서 교향곡의 요소를 발견하기 어렵다 비난했다.)
 
지도자의 이름을 지워버리다 못해 종이에 구멍을 내고 그 종이마저 찢어버린 수많은 사람이 광장에, 거리에 쏟아진다. 이들은 무엇을 다시 딛고 일어설 것인가. 인간에 대한 믿음은 이제 얼마나 남아있을까. 200년 전 음악에서 다시 답을 구한다.

김호정 문화스포츠부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