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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학대받는 아이도 우리 아이들이다

김동규 서울대 의대 교수 신경외과학교실

김동규
서울대 의대 교수

우리 사회에 쏟아지는 끔찍한 피학대아증후군
아이들을 올바르게 키우는 것은 어른들의 몫

신경외과학교실

약 40년 전 의과대학 시절 여러 가지 질환에 대해 정신없이 배울 때 일이다. 힘든 중에도 각 질병의 발생 빈도, 원인, 증상, 치료 등의 수업 내용이 재미있었다. 병의 발생기전의 논리적인 설명을 접할 때는 신비하기까지 했다. 이해가 힘든 질병들도 있었다. 특히 피학대아증후군은 존재 자체가 믿어지지 않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친자식을 때리고 방임한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아동학대라는 개념이 명쾌하지 않은 때였다.

1946년 미국에서 만성경막하혈종과 장관골 골절이 있는 유아가 보고됐다. 젖먹이 아이에게 흔치 않은 병이었다. 원인을 알아보니 부모가 어린 자식을 수시로 심하게 흔들고 내동댕이쳤다고 한다. 화를 참지 못할 때마다 말 못하는 아이에게 분풀이한 것이었다. 흔들어대는 바람에 반복적으로 뇌가 손상을 받아 혈종이 생긴 것이다.

이후 60년대 초 미국 전역에서 부모나 양부모에게 학대받는 사례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가 있었다. 상당수의 피학대아가 있는 것이 확인됐고 피학대아증후군이 의학 교과서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3개월 된 남자 아이를 껴안은 여인이 헐레벌떡 응급실로 뛰어 들어왔다. 아이가 갑자기 경기를 하고 정신이 없다며 상기된 얼굴로 다급하게 말했다.

사실 유아에게 발작은 드물지 않게 보는 현상이다. 감기 등으로 열이 높아도 나타날 수 있다. 우선 엄마를 진정시켰다. 바짝 마른 아이는 기운이 없는 듯 축 늘어져 있었다. 진찰을 위해 옷을 들춰보니 여기저기 멍 자국이 있었다. 옆구리에는 최근에 생긴 듯한 상처도 있었다. 짐작되는 것이 있어 전신 X선 사진과 머리 CT 사진을 찍었다. 아니나 다를까 만성경막하혈종과 갈비뼈 골절이 있었다. 피학대아증후군이 틀림없어 보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때리지 않았냐고 물었다. 엄마는 펄쩍 뛰었다. 절대로 때린 적이 없단다. 아이의 발병 당시 상황을 자세히 알아보았다. 엄마가 직장에서 퇴근해 보니 아이는 거실에 정신을 잃은 채 있었다. 아빠는 하는 일 없이 늘 집에 있었고 당시 안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고 한다. 평소 낮 시간 동안은 아빠가 아이를 돌봤다는 설명이었다. 유아를 혼자 놔둔 것, 아이가 아픈데 같이 병원에 오지 않은 점 등이 의아했다.

아기 아빠를 데려오도록 부탁했다. 아빠는 학대를 일관되게 부정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엄마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생각해 보니 오늘 같은 이상한 일이 몇 번 있었다고 한다. 엄마가 아빠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마지 못해 아빠는 모든 사실을 고백했다. 아기가 자주 보채는 통에 울화통이 나 몇 번 팽개쳤다고 한다. 지금은 후회하지만 순간적으로 짜증을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엄마의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정황을 미루어 엄마는 정말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병원에서 경찰에 알렸고 아빠는 조사를 받게 됐다. 아이는 다행히 수술을 받고 회복됐다. 엄마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남편과 헤어지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전해 들었다.

사태가 법에 따라 마무리됐다. 아동복지법에 의하면 의료인은 학대 사실을 인지하는 즉시 신고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젖도 떼기 전 뇌수술을 받은 아이와 남편에게 배신당한 엄마의 상처가 쉽게 아물 수 있을까. 의사의 마음도 돌덩이같이 무거웠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보도되는 어린이 관련 기사를 보며 가슴이 아프다. 입양 딸 학대 및 시신 훼손 사건, 맨발 소녀 탈출 사건, 두 달 젖먹이 학대 사건 등에 국민은 치를 떨었다. 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을 때리는 동영상을 보며 남의 일로만 생각되지 않았다.

우리의 어린 아들과 딸은 정말 괜찮을까. 우리 손주들은 잘 지내고 있나.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낸 어른들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하다.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는 워킹맘은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이 됐는지 한숨만 나올 뿐이다.

어린이들을 좋은 환경에서 올바르게 키우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책임을 정신장애인의 일탈로만 돌리지 말고 서로를 돌아보며 불행한 아이가 생기지 않도록 함께 노력하자.

김동규 서울대 의대 교수 신경외과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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