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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칼럼] 캐나다에서 본 소프트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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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국무총리

국가가 혼란스럽다. 서민 삶은 하루가 다르게 악화일로다. 미래가 걱정이다. 민주공화국에 대한 신념과 정치철학 없는 리더십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지난달 방문했던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생각난다.

트뤼도, 난민·원주민 정책 바꿔
난민에게 점퍼 입혀주며 환영
리더십의 핵심은 소프트 파워
큰 목소리로 자기 주장만 하고
갈등 유발·애국심 강조하기보단
경청·실천하는 리더 등장하기를


캐나다 방문은 3·1운동의 제34번째 민족대표인 스코필드(F. Schofield) 박사가 캐나다 정부로부터 캐나다 역사에서 꼭 기억해야 할 인물로 뽑혀 그 헌액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방문길에 토론토대에서 ‘스코필드 박사와 불평등 개선을 위한 한국의 노력’이란 주제로 특강도 하였다.

캐나다에 머무는 동안 높은 지지를 받는 트뤼도 총리의 리더십과 매력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그리고 21세기형 리더의 유형을 발견했다. 트뤼도는 미국인까지 좋아한다. 지난 3월 트뤼도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의 경선 과정은 참담했다. 도널드 트럼프의 막말과 공화당 후보들의 비방에 이어 힐러리 클린턴 역시 e메일 사건으로 미국 유권자들은 진절머리를 냈다. 이때 미국을 찾은 트뤼도에게 일부 미국 유권자가 “우리는 당신에게 애원합니다. 우리 대선에 출마하면 안 될까요?”라고 권유한 것은 이미 언론에 보도된 대로다.

트뤼도 총리에 대한 애정은 일부 미국인만의 짝사랑이 아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세계 경기에 대해 연일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다가 캐나다를 방문해 트뤼도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는 “강력한 경기부양 정책을 펼치는 캐나다 정부가 경기침체에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있다. 다른 국가들이 트뤼도 총리를 보고 배워야 한다”며 모처럼 밝게 웃었다. 트뤼도 총리의 개인적 인기는 캐나다의 매력까지 상승시킨 것이다.

트뤼도 총리의 인기 비결은 외형적인 매력에도 있다. 1970년대 이미 ‘트뤼도 마니아’를 형성할 만큼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아버지 피에르 트뤼도 전 총리의 우월한 유전자를 이은 외모에 요가와 복싱을 비롯한 각종 스포츠에 능함, 양자역학까지 쉽게 설명하는 박식함, 영국 왕세자 가족부터 시리아 난민까지 누구를 만나도 미소로 대하는 따듯함 등이다. 하지만 그런 ‘스타성’은 금방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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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도는 지난 총선에서 ‘진짜 변화(real change)’를 내세워 승리했다. 정부의 투명성과 친화 정책, 그리고 다양성에 대한 믿음이 캐나다는 물론 외국에서도 트뤼도 열풍을 불러오는 핵심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총리 취임식 날 남녀 각 15명으로 구성된 내각 명단을 발표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남녀 비율만 맞춘 것이 아니었다. 새 내각은 30세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분포와 각 주 출신 인사를 모두 포함한 지역 안배를 이뤄내는 등 완벽한 ‘다양성’ 내각이란 평가를 받았다. 임명된 장관 가운데는 난민, 시크교도, 원주민 등도 포함돼 있다. 양성평등과 다양성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지금은 2015년이니까”라고 답해 큰 박수를 받았고 큰 파장을 일으켰다.

남녀 동수 내각으로 주목받은 트뤼도의 정치 이념은 이전의 보수당 하퍼 정부와 명확하게 구별된다. 부자 증세 등 경제 정책 변화도 주목받았다. 그러나 대중으로부터 가장 큰 환호를 받은 것은 난민, 이민자, 그리고 원주민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다. 대부분의 국가가 이슬람국가(IS) 테러 위협에 움츠리며 시리아 난민 수용을 두려워할 때 트뤼도는 선거공약으로 2만5000명의 난민 수용정책을 발표했고 당선 이후에는 수용 인원을 5만 명으로 확대했다.

지난해 12월 10일 트뤼도 총리는 토론토 공항에 도착한 163명의 시리아 난민 가족을 만나 직접 겨울 점퍼를 입혀주며 환영했다. 당시 테러 후유증으로 시리아 난민에 대한 반감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서유럽에서도 난민 수용 정책을 폐기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캐나다의 온정이 더욱 돋보였다. 물론 캐나다도 여전히 경기가 침제됐고 자국민의 취업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캐나다 사람들은 모처럼 남녀노소는 물론 자국민과 난민들이 모두 동반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는 것에 희망을 갖는 것으로 보였다.

트뤼도 총리 리더십의 핵심은 무엇일까. 그것은 ‘소프트 파워’가 아닐까. 조셉 나이(Joseph S. Nye)가 처음 사용한 용어인 소프트 파워는 군사력이나 경제제재 등 물리적으로 표현되는 힘인 하드 파워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강제력보다는 부드러운 설득을 통해, 명령이 아닌 자발적 동의에 의해 얻어지는 힘이다. 21세기 4차 산업혁명의 원동력도 소프트 파워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소프트 파워로 무장한 리더가 필요하지 않을까? 큰 목소리로 자기 주장만 하고, 갈등을 해소하기는커녕 더 부추기며 애국심만 강조하는 이들보다는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다양한 계층을 아우르며, 시대정신에 맞는 철학을 바탕으로 진정성 있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리더가 등장하기를 기원한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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