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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공직자, 권력자의 머슴 아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불만을 터뜨렸다. e메일 스캔들 재수사로 대통령 선거판을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임스 코미 FBI국장은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누가 옳은지는 모르겠다. 오바마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클린턴 당선을 위해 뛰고 있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이 임명한 코미 국장은 그 반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신선하다.

코미 국장은 조지 W 부시 정부에도 제동을 건 사람이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부시 행정부는 법원 영장 없이도 통신 내용을 감청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했다. 2004년 이를 재인가 받으려 하자 그때 법무부 부장관이었던 코미가 “불법이자 위헌”이라며 반대한 것이다. 이런 원칙주의를 높이 사 2013년 오바마가 그를 FBI국장으로 임명했다.

자신을 임명해줬다고 그 사람의 머슴이 되지는 않는다. 공직자의 기본 윤리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은 “생각하는 바를 대통령에게 자유롭게 말할 용기가 없으면 백악관에 들어가지도 말라”고 했다.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대통령을 그르치게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포드의 대통령직 승계를 가져온 워터게이트사건에서 배운 것인지도 모른다. 닉슨 정부에서 FBI 부국장이던 마크 펠트는 내부 고발로 워터게이트 사건에 불을 붙였다. 이른바 ‘딥 스로트(deep throat)’다. 특별검사 아치볼드 콕스는 닉슨이 임명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사건 은폐를 모의한 백악관 녹음테이프를 제출하라며 닉슨과 대립했다. 또 엘리엇 리처드슨 법무장관은 특별검사를 해임하라는 닉슨의 요구를 거절하고 사표를 던졌다. 윌리엄 란케르즈하우스 법무차관도 리처드슨과 같은 길을 걸었다.

닉슨이 몰락한 것은 워터게이트 도청 때문만 아니다. 그것을 사실대로 밝히고 사과했다면 사퇴까지는 안 갔을지도 모른다. 미국 국민이 더욱 실망하고 분노한 것은 자신들이 뽑은 대통령이 국민에게 거짓말을 하고, 권력을 이용해 끝까지 이를 은폐하려 했다는 점이다. 많은 공직자들이 이것을 말렸지만 또 다른 음모가들의 유혹에 넘어갔다.

우리를 들여다 보면 한숨이 나온다. 지난 3년 반 동안 무엇을 했나. 청와대 비서실이고, 장관들이고, 누구에게 충성을 했나. 그들은 국민 아닌 권력자에게 충성했다. 사실 충성이라는 말도 아깝다. 충성을 하려면 정말 박 대통령을 위해 무엇이 옳은지 생각이라도 했어야 한다. 생각이라는 것을 포기하고 몸으로 시키는 일만 한 머슴에 가깝다. 공직의 기본 윤리마저 팽개쳤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중립을 위해 정당 추천으로 만든 정부위원회들이 오히려 더 정치적이다. 방송위원회는 중립은 커녕 전쟁터다. 합리적 토론은 뒷전이고, 비난과 고성으로 충성을 경쟁하는 곳이 됐다. 공직 윤리는 사라지고, 정파의 의리만 펄떡인다. “사람은 의리가 필요해. 내가 지금까지 언니 옆에서 의리를 지키고 있으니까, 내가 이만큼 받고 있잖아.” 한번도 공직을 맡아본 일이 없는 강남아줌마 최순실씨의 이 말이 공직 윤리를 압도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임기 초 최순실씨에게 연설문 수정을 맡긴 사실은 인정했다. 임기 초에만 맡겼는지는 앞으로 가려지겠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 해도 최소한 허태열 당시 비서실장은 알았어야 하지 않은가. 사정 라인을 틀어쥐고 있었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정말 몰랐을까.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이 우병우 전 민정수석 진퇴를 물었을 때 이원종 전 비서실장은 왜 한숨만 푹푹 쉬었을까.

민정수석실에서 조응천 비서관, 박관천 경정이 보고서를 만들었을 때 비서실장은 진실이 궁금하지는 않았을까.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은 경제수석 때부터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의 자금을 끌어 모았다. 자신이 끌어 모은 돈으로 만든 재단을 최순실씨가 주머니 속 공깃돌처럼 갖고 노는데도 몰랐다는 게 고위 공직자로서 할 말인가. 최씨의 해외여행에 편의를 봐준 항공사 직원을 승진시켜주지 않는다고 협박까지 하면서 그것이 나랏일이라 생각했을까. 특히 문체부는 정부 일을 한 것인지, 최순실씨의 개인사무를 한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이원종 전 비서실장은 최씨의 연설문 수정 사실이 드러나기 전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라고 말했다. 사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들이다. 멀쩡한 기업체를 강탈하는데 공직자와 공기업 임원이 공조하는 것은 유신시대에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일이다.

당 태종은 “신하들이 천자의 분부에 무조건 순종하고, ‘지당하옵니다’만 연발한다”며 화를 냈다. 한 마디도 간하지 않고, 천자의 조칙에 결재만 하는 일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데, 천하의 우수한 인물을 발탁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수석비서관회의나 국무회의나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받아쓰기만 한다.

어쩌면 이 정부 들어 유독 이상한 인사가 빈발한 게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헬스클럽 트레이너에게 청와대 3급 행정관이란 벼락감투를 씌워주고, 최씨 측근들이 ‘나도 장관 하고 싶다’고 설쳐도 놀랄 일이 아니다. 한 젊은 CF감독이 정부 요직을 나눠주고, 청와대 행정관이 최씨의 운전수 노릇을 하고, 휴대폰을 황송한 듯 옷자락에 닦아서 건넸다. 최씨의 심기에 거슬리면 장관도 날아가고, 국장·과장도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혀 쫓겨나는 형편이니 누구를 탓하랴. 결국 모든 게 대통령의 책임이다.

박 대통령은 4일 담화에서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라고 말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말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대통령이 지시해 벌인 일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 모금을 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미 처벌을 받았다. 아무리 좋은 취지라도 해서는 안되는 방법이다. 창조경제센터도 지역별로 기업에 맡겼다. 대부분 임기 중에만 적당히 넘기면 철거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가슴을 칠 일은 이 지경이 되도록 측근들 중에 간(諫)하는 사람이 없느냐 하는 것이다. 몰라서 박수만 쳤다면 멍청한 사람이다. 알고도 입을 다물었다면 모리배다. 대통령의 ‘레이저 총’이 두려워서였을까. 그렇다면 공직을 맡아서는 안되는 사람이다. ‘근본 없는 사람’을 키워줘 싫어하는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미련한 사람이다.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 jink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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