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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이 지금의 중국을 본다면

일러스트 강일구



한·중 수교 이후 대중 관계가 이렇게 갑갑한 적이 없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 문제로 외교는 외교대로, 경제는 경제대로 어렵다. 문제는 경제 제재로 인한 대중 수출 감소다. 한국의 대중 수출은 이미 16개월째 마이너스다. 사드 문제 발생 이전에 이미 한국의 대중 경제관계에는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차이나 포커스

2014년부터 중국이 변했다. 금융위기 이후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은 공급과잉이다. 그래서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가 왕이다. 한·중 수교 20여년간 우리는 중국에 주문자상표부착(OEM) 제조 물량을 주는 ‘갑(甲)’이었다. 중국은 우리 ‘OEM 공장의 노동자’였다. 그러나 지금 중국은 14억 명이 국내 여행 다니고 1억2000만 명이 해외여행을 가서 전 세계 명품의 46%를 사는 소비대국으로 변신했다. 한국에만 600만 명의 유커들이 몰려오면서 중국은 한국 내수 소비의 갑으로 등장했다.



성장으로 경제방향을 전환했다. 전통산업 구조조정의 본격화로 소비재는 왕이고, 중간재는 공급과잉으로 별 볼일이 없어졌다. 그런데 한국은 여전히 중간재 수출 비중이 78%에 달할 정도로 높다. 중국의 가공무역 억제 정책으로 한국의 OEM과 중간재 수출의 봄날은 확실히 갔다.



[아직도 갑으로 착각하는 갑갑한 한국]



그런데도 우리는 중국에 대해 여전히 우리가 갑이란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아직도 중국에서 한국의 대기업은 갑이고, 중소기업도 스스로 갑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미국과 맞짱 뜨는 중국에 대해 그간 우리의 OEM 경제력에 기댄 정치나 외교도 갑이라는 관념을 버리지 못했다. 이미 우리는 을(乙)인데 대기업과 중소기업, 경제와 정치외교 모두에서 갑이라고 착각한다. 모두가 갑, 갑하지만 실상을 알면 정말 갑갑하다.



“조선의 지독한 가난의 원인은 전적으로 선비가 제 역할을 못한 데에 있다.”



조선 정조시대 당대 최고의 문필가였고 실학자였던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이 한 말이다. 1780년 당시 44세였던 연암이 조선 정조시대에 청나라 건륭제의 생일을 축하하는 사절단에 포함돼 한양을 떠나 요동과 베이징을 거쳐 열하(熱河), 지금의 승덕(承德)에 도착했다. 청나라에서 보고 들은 156일간의 여행을 기록한 기행문(燕行錄)이 『열하일기』다.



양반전·호질 등 풍자소설 작가이기도 한 연암의 열하일기에 보면 조선의 지식인에 대한 시니컬한 패러디가 나온다. 지식인들에게 당시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3%에 달했던 세계 최대국가였던 청나라에 대해 “중국의 장관(壯觀)이 무엇이냐” 물으면 상사(上士) 즉, 상류층 선비는 “중국에는 도대체 볼 것이 없다(都無可觀)”고 답한다. 변발을 한 중국을 보고 머리 깎은 사람은 모두 볼 것도 없이 개·돼지나 다름없는 오랑캐라고 매도했다.



중사(中士), 2류 선비는 “볼 만한 것이 무엇일까(何足觀)?”라고 답한다. 청나라는 독자적인 것은 없고 모두 한족의 문화와 법과 제도를 재활용한 짝퉁국가라는 것이다. 그런데 연암은 자신은 스스로 하사(下士), 3류 선비라고 칭하면서 중국의 장관은 “깨진 기와조각이나 똥거름에 있다(壯觀在瓦, 壯觀在糞壤)”고 표현했다.



거대한 대국을 직접 본 연암은 중국의 힘을 이런 식으로 비유하면서 당대 지식인들, 소위 갑들의 중국에 대한 무지함을 비평했다. 어마어마한 양의 깨진 기와도 모두 모으면 다시 담을 치거나 담장의 어깨놀이에 깔아 여러 가지 무늬를 만들 수 있고, 베이징 길거리의 말똥도 모두 주워 거름간에 누각 모양으로 쌓으면 금싸라기처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용후생(利用厚生)이다.



연암의 중국관은 결국 경험이 최고의 선생님이었다. 천하 대세의 변화를 감지하고 직접 중국을 가서 본 연암의 판단과 지도층 자기네끼리 이너서클 만들고 권력 다툼에만 몰두하느라 외부세계, 중국에 대해 무지했던 조선 지도층의 판단은 이렇게 달랐다.연암이 말하는 선비란 당대의 지도층, 갑들을 말한다. 지도층들의 무지가 결국 국가에 화를 불러온다. 노자는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에서 생기고, 천하의 큰 일은 언제나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다(天下之難事必作於易 天下之大事必作於細)’고 했다.



한·중 간의 어려움도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 조선의 가난도 선비들의 문제였지만, 현재 중국과의 어려움도 한국 지도층들의 문제가 아닐까. 한국은 중국의 대변화와 중국 지도자들의 생각을 제대로 읽고 있는지 궁금하다. 연암이 말한 상사(上士)와 중사(中士)처럼 이미 미국과 맞짱 뜨는 G2인 중국을 북한과 같은 공산주의라고 ‘오랑캐’로 무시하고, 인공위성을 쏘는 중국을 여전히 기술 없는 ‘짝퉁의 나라’로 보고 있지는 않은가?



[독하게 공부하는 독종만이 살아 남는다]



한국의 지금 상황은 마치 18세기 동북아 시대로 다시 돌아가는 듯하다. 한국은 말로는 큰소리치지만 강해진 중국의 눈치를 보면서 어쩔 줄 모른다.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 위협에 전전긍긍이고 국론은 사분오열이다.



중국의 최대 성군(聖君)으로 불리는 당태종의 『정관정요』에 보면 구리로 거울을 삼으면 의관을 바르게 할 수 있고,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나라의 흥망을 알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희망이 없고, 역사를 잘못 이해한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한국사도 제대로 교육 않는 한국의 교육정책, 국사마저 입시에 선택과목이라면 젊은이들이 중국의 역사까지 공부할 리가 없다. 상대를 모르는데 어떻게 상대를 이길까?



중국과 한반도의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중국이 한국과 250여 차례의 전쟁을 했지만 중국이 한반도를 침략해 재미를 본 적이 별로 없다. 수 양제는 고구려를 침략했다가 패해 국력이 쇠락해져 나라가 망했다. 당 태종도 고구려를 침략해 연개소문과 싸우다 양만춘 장군의 화살에 눈을 맞아 결국 그 후유증으로 사망에 이르렀다. 그래서 당 태종은 후손들에게 고구려는 절대 먼저 공격하지 말라는 계훈을 남겼다. 명나라는 자기 몸도 제대로 못 추스릴 정도로 약해진 상황에서 체면 때문에 임진왜란을 맞은 조선을 돕겠다고 나섰다가 국력을 소진해 결국 청나라에게 망했다.



한·중관계가 어렵다면 한·중 간 역사를 다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중국은 시진핑 주석을 포함한 25명의 국가 최고 수뇌부들이 한 달에 한번 집체학습(集?學習)이라는 이름 하에 당대 최고의 전문가를 모셔서 ‘열공’하는 나라다. 이렇게 최고지도자부터 공부하는 나라를 어떻게 이길까?



중국과의 문제에 대한 해법은 중국을 공부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정치든 외교든 경제든 간에 중국을 독하게 공부하는 독종만이 살아 남는다. 책은 거짓말하지 않고, 세상의 모든 것이 배반해도 공부는 배반하지 않는다. 비행기 타면 비 오는 날 여의도에서 분당 가는 것보다 가까운 나라가 중국이다. 한국의 기업인들도 대중 관계가 어렵다면 중국을 다시 공부해야 한다. 중국의 최고경영자(CEO) 과정, E-MBA를 가서 중국을 미친 듯이 공부하면 거기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전병서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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