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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의 재발견】 : 요약(69)

“도기의 빛깔이 푸른 것을 고려인은 비색(翡色)이라고 한다. 근래에 만드는 솜씨와 빛깔이 더욱 좋아졌다. 술그릇의 형상은 참외 같은데, 위에 작은 뚜껑이 있고 그 위에 연꽃에 엎드린 오리 모양이 있다.”(『고려도경』(1123년) 권32 도존(陶尊)편) ??


12세기 전반 고려를 찾았던 송나라 사신 서긍이 묘사한 고려청자의 모습이다. 청자의 종주국인 중국인의 눈에도 중국의 것과는 다른 독자적 제품으로 비칠 만큼 고려의 청자 제조술이 발달했음을 알려주는 기록이다. 서긍이 주목한 고려 독자의 제품은 비색 청자였다. ??

?“건주(建州)의 차, 촉(蜀)의 비단, 정요(定窯)의 백자, 절강(浙江)의 차 등과 함께 고려비색(高麗翡色*비색청자)은 모두 천하제일이다. 다른 곳에서는 따라 하고자 해도 도저히 할 수 없는 것들이다.”(『수중금(袖中錦)』)


비색청자는 서긍뿐 아니라 송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인정한, 고려의 높은 기술 수준이 반영된 제품이었다. 청자는 섭씨 1200도 이상의 고온에서 제작된다. 이 정도의 온도를 낼 수 있는 가마 시설에다 흙과 유약이 고온에서 융합돼 비취색이 감도는 특유의 색깔을 창출하는 제작 기술이 필요하다. 그 점에서 비색청자는 지금의 신소재 첨단제품이나 다름없었다. 서양에선 17세기에야 제작이 가능했다. 중국은 이미 9세기 무렵 청자를 생산했는데, 고려는 10세기 초 중국에서 기술을 수입해 만들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11세기 후반~12세기 초에 독자의 제작기술을 개발해 탄생한 게 비색 청자다. ??


상감청자는 상감 기법으로 만들어진 청자다. 상감은 원하는 형태로 물건을 만든 뒤 표면에 무늬를 새기고, 흰색과 붉은 색 흙을 발라 굽는 기법이다.


고려청자는 항아리·주전자· 대접·접시·잔·병 등의 식생활 용구, 촛대·향로 등의 제의(祭儀) 용구, 베개·상자·의자·벽돌·기와 등의 주거 용구, 연적·벼루·붓꽂이 등의 문방 용구에 이르기까지 의식주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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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왕조 시절 국제 질서는 고려와 송나라·거란·금나라(여진)·일본 등이 다양하게 교류한 다원적인 사회였다. 고려는 송나라 외에 여러 국가의 교류했던 것이다. 더욱이 거란과의 전쟁이 끝난 1021년부터 50년간 고려는 송나라와 국교를 단절한다. 민간교류는 계속됐지만 국교 단절은 아무래도 새로운 기술의 수용과 교류에 제한을 주기 마련이다. 송과의 국교 단절 이후 고려의 공예기술은 거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

경기도 가평 장지방(張紙房)에서 전통 한지를 제작하는 모습. 장지방은 문화재청이 지정한 지장(紙匠)의 공방이다. [사진 김형진 국민대 교수]


?고려시대에 생산된 종이를 당시 중국의 문인·학자들은 ‘고려지(高麗紙ㆍ고려 종이)’라고 불렀다. 오늘날 한국의 대중가요·영화·드라마를 선호하는 해외 트렌드를 ‘한류(韓流)’라 하듯이 고려지는 고려판 ‘한류’의 원조이자 또 하나의 고려 명품이다. ??


송(宋)나라 왕실은 다량의 고려청자를 수입·소비했고, 그 유물들이 남송의 수도 항저우(杭州)에서 집중적으로 발굴되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이 『고려사』 등의 역사 문헌에 기록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반면에 고려지가 중국에 널리 유통된 사실은 각종 문헌 기록에 많이 나타난다. 1074년(문종28), 1080년(문종34) 7월 고려는 송나라에 대지(大紙) 20부(副*2000폭)를 각각 바쳤다. 원나라(몽골)도 고려와 1218년 공식 관계를 맺은 지 3년 만인 1221년(고종8) 고려로부터 종이 10만 장을 공물로 받아갔다. 또 1263년(원종3) 9월과 이듬해 4월에도 원나라는 다량의 고려 종이를 공물로 수취했다. 이렇게 고려지는 송나라뿐만 아니라 원나라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


중국인들은 ‘아름다운 흰빛에 결이 있는 매끄러움’ ‘두터움과 흰빛’ ‘흰빛과 질김’ 등의 표현으로 고려지의 우수성을 묘사했다. 종이는 인쇄술·나침반·화약과 함께 중국이 자랑하는 4대 발명품인데, 한나라 채륜(蔡倫)이 2세기 무렵 발명한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천년이 지나지 않아 중국은 고려지를 수입해 사용한 것이다. 그만큼 고려지는 당시 중국 문인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


?최근 몽골에서 고려지를 생산했던 공방의 유적이 발굴되었다. 몽골은 품질이 좋은 고려지를 공납 받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고려지 기술자를 징발해 현지에서 직접 생산하여 수요를 충당했던 것이다. 고려지의 품질과 기술을 그만큼 신뢰했기 때문이다. 종이 표면을 두드려 가공함으로써 먹의 번짐을 막는 도침법(搗砧法)은 고려지 제작기술의 핵심이었다. 고려지의 품질을 크게 향상시킨 도침법은 닥나무와 같이 비교적 단단한 종이 재료 때문에 창안된 기술이다. 고려지가 당시 동아시아 세계에서 인기를 끈 것은 단순히 종이 제작 기술의 우수성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끊임없는 기술 축적과 함께 그를 뒷받침한 사회적 생산시스템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고려 사회는 이러한 사회적 생산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그건 바로 ‘소(所)’ 생산체제로 압축된다.


? 고려 때 제도화된 ‘소’는 금·은·동·철 등의 광산물, 소금·미역·생선·생강·직물·땔감 등의 농수산물, 자기· 나전칠기·종이·기와·먹 등의 수공업제품을 전문적으로 생산한 곳이다. 고려는 ‘소’라는 특수 행정단위를 두고 해당 제품의 전문 기술자인 장인(匠人)과 각종 제품의 생산을 위한 잡역에 동원된 소민(所民)을 두어 수준 높은 수공업제품을 생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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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문화의 또 다른 정수를 보여주는 명품은 나전칠기(螺鈿漆器)다. 현재 16점이 전해진다. 나전칠기는 칠공예(漆工藝)와 나전 기술이 합쳐진, 이른바 기술의 융합에 의해 생산된 명품이다. 나전 기술은 원래 중국 당(唐)나라에서 건너왔다. 이와 달리 목재제품 등에 옻칠을 입히는 칠공예 기술은 이른 시기부터 우리나라에서 축적돼왔다. 또한 고려의 나전기술은 중국과 달랐다. 당나라의 나전은 자단(紫檀·동남아 등지에서 식생한 나무)과 같이 단단하고 무늬가 아름다운 나무에 바로 나전을 새겨 넣었다. 그래서 목지나전(木地螺鈿)이라 한다. 반면에 고려의 경우 경전·염주 등을 담는 나무상자에 굵은 삼베를 바르고 옻칠을 한다. 그 위에 잘게 썬 나전을 새겨 넣은 후 다시 옻칠을 덧입힌다. 그런 후 나전 무늬에 덮인 칠을 벗겨내고 광 내기 과정을 거쳐 제품이 생산됐다. 이렇게 나전 기술과 칠공예 기술이 결합돼 나전칠기라고 했다. ? ??

나전대모국화당초문 염주합 세부도.


국화꽃의 붉은색 꽃술과 잎은 채색한 대모, 흰빛 잎과 넝쿨은 나전을 각각 새겨 넣은 것이다. 꽃 주변 테두리는 은과 구리선을 가늘게 꼬아 넣은 것이다. 약 900년 전 만들어진 나전칠기의 아름답고 화려한 무늬는 아직도 선명하게 살아 있다. [사진 일본 당마사(當麻寺)]


나전칠기의 수요가 많아져 대모를 조달하기 힘들어지자 대모 장식은 점차 사라진다. 무늬 주변에 금속 선(線)을 넣는 기법은 고려 공예예술을 상징하는 기법이다. 금속공예에선 금속 표면에 무늬를 깊게 파낸 다음 가느다란 금실이나 은실을 메워 넣는 금(金) 입사(入絲), 은(銀) 입사 기법으로 나타난다. 고려의 나전칠기는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칠공예 기술에다 조개를 잘게 썰어 아름다운 문양을 새겨 넣는 정교한 나전 기술의 결합을 통해 탄생한 명품이다. ? ??

나전국화문경함. [사진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나전칠기는 이같이 칠공예 기술과 나전 기술이 함께 발달해야 생산될 수 있다. 어느 한쪽 기술만 발달하면 명품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제작된 제품이 송·거란·원나라 등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것은 당시 공예 기술이 높은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술은 다른 분야에도 영향을 끼쳐 상감청자·고려지(高麗紙)·대장경을 명품의 반열에 올려놓게 했다. 이 점에서 고려왕조는 진정한 문화·기술의 강국이었다. 이외에도 고려선(高麗船)·금속활자·불화(佛畵) 등 수준 높은 명품 문화재를 낳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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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기, 「고려사의 재발견」,


제335호 2013년 8월 11일


제336호 2013년 8월 18일


제340호 2013년 9월 15일


?http://sunday.joins.com/archives/32385


http://sunday.joins.com/archives/32386


http://sunday.joins.com/archives/32397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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