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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가 동경했던 밀레의 감수성

마리 바시키르체프(1858~1884)의 ‘모임’(1858~1884·부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장 프랑수아 밀레와 빈센트 반 고흐 등 프랑스 국립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된 19세기 화가들의 작품이 예술의전당에서 전시(10월 29일~2017년 3월 5일)를 시작했다. 19세기라는 백 년은 유럽이 본격적으로 근대의 장을 열었던, 변화의 요소가 사방에 편재했던 시기다. 예술계에서는 캔버스를 500년 동안 지배해오던 원근법에서 벗어나는 조형적인 혁신이 일어났으며, 새로운 화풍이 이전의 미적 규범과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예술이 진정 예술다우려면 사회의 도덕적 가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방향으로 발전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확산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다소 전통적인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인물상, 즉 인간에 대한 재현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화가별 개성과 화풍의 특색을 비교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1 장 레옹 제롬(1824~1904)의 ‘닭싸움을 시키는 젊은 그리스인들’(1864·부분)

2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의 ‘호랑이 사냥’(1854·부분)

3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의 ‘양치는 소녀와 양 떼’(1857·부분)



인물 그림으로 본 오르세 미술관展

인물화는 누군가를 그린 것이다. 과거에는 군주의 실물초상이라든가 신화의 캐릭터를 덧씌운 미인이나 영웅 이미지가 주가 되었지만, 19세기에 들어오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일반인들을 주인공으로 삼게 된 것이다. 인물상은 앞에 서있는 모델의 모습을 화면에 옮겨 놓은 것이기도 하지만, 화가의 해석이 담겨있기도 하다. 그것은 모델의 사회적 상황 그리고 화가의 정서와 붓질이 다함께 만들어낸 합성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장 레옹 제롬이 그린 ‘닭싸움을 시키는 젊은 그리스인들’(그림 1)을 보면, 두 인물은 섬세한 표정과 우아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리석처럼 매끄러운 살갗에는 솜털 하나 나지 않은 것 같다. 현실 속의 사람이 과연 이렇게 흠잡을 곳 없이 말끔할 수 있을까 싶어서 관람자들은 그림 속 인물에 쉽사리 동질감을 느끼지 못한다. 게다가 시공간적 배경도 현재의 프랑스가 아니라 고대의 그리스이니, 감정적으로 개입되기란 더욱 어렵다.



이상적인 미의 고전(古典)에 맞추어 그리려면, 화가의 해석이 최소화되는 경향이 있다. 제롬처럼 아카데미에서 훈련을 받은 화가들의 화풍이 그랬다. 붓질은 화가 자신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는 행위 또는 손맛이 깃든 것이어서 화가의 표현력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데, 제롬은 붓 터치의 기운을 화면에 거의 남기지 않는다.



제롬 작품의 매끈한 마무리와 대조를 이루는 것은 낭만주의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호랑이 사냥’(그림 2)이다. 과감한 붓 터치가 눈에 띈다. 제롬이 닭의 깃털이 가지는 재질감을 똑같이 묘사하는데 집중했다면, 들라크루아는 호랑이가 달려드는 광포한 본성을 포착하는데 주력했다. 제롬이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면, 들라크루아는 목숨을 걸고 호랑이와 맞싸우는 극한에 달한 인간상을 통해 인간이 도달하기 어려운 선까지 감정의 폭을 확장시킨다.



낭만주의의 격하고 숨 가쁜 호흡을 고르게 해 주는 그림은 자연주의 화가인 장 프랑수아 밀레의 ‘양치는 소녀와 양 떼’(그림 3)다. 고요함이 자욱한 가운데 소녀는 종교화 속 숭배의 대상처럼 경건하다. 동시에 무언가 형언할 수 없이 슬픈 존재로 부각되어 있다. 밀레의 감수성으로 흠씬 젖은 소녀의 모습은 중립적이지가 않다. 낯선 자연 속에 적응하면서 근근이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운명과 삶이라는 고독에 대해 밀레가 느낀 감정이 인물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밀레를 동경했다. 인간의 진정한 감정을 표현하고자 끊임없이 탐구했던 고흐에게 밀레의 그림은 잔잔한 가르침을 주곤 했다. 우리는 고흐의 작품이라고 하면 선뜻 ‘해바라기’나 ‘별이 빛나는 밤’을 떠올리곤 하지만, 고흐 그림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인간에 대한 연민이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그는 종종 이렇게 되뇐다. “아, 인간이 모든 것의 근본이라는 생각이 들어….”

4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정오의 휴식(1889~1890·부분)

5 카미유 피사로(1830~1903)의 ‘빨래를 너는 여인’(1887·부분)

6 모리스 드니(1870~1943)의 ‘닫힌 정원 안의 여인’(1894·부분)



고흐가 그린 ‘정오의 휴식’(그림 4)은 밀레의 원작을 고흐가 자신의 방식으로 그린 것이다. 두 인물은 평화롭게 쉬고 있지만 우리는 이들을, 고흐의 시선에 동조하듯, 조금은 연민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게 된다. 현실적으로 목가적인 풍경이란 그 전후의 힘겨운 작업의 과정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결국 그림 속 농부의 짧은 휴식은 끝없이 길게 펼쳐진 노동의 시간들을 더불어 말해주는 것만 같다.



고흐와는 다른 방식으로 밀레에게서 영향을 받은 화가는 후기인상주의자인 카미유 피사로다. 그는 밀레의 그림이 주는 슬픈 기운을 떨쳐내고자 애썼다. 밀레의 그림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동료 화가를 보고는 ‘들라크루아나 보고 울 것이지’라고 하면서 자신은 농부를 그린 그림에서 비극적인 그림자를 걷어내겠다는 생각을 했다. 피사로가 그린 ‘빨래를 너는 여인’(그림 5)을 보면, 표면은 수많은 복합적인 색들로 이루어져 있고 빛은 그런 개개의 색들 속에 균일하게 퍼져 있다. 심지어 그림자 속에서도 빛의 입자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밝고 따스한 색의 점들로 화면 위에 남겨져 있다. 밀레가 남긴 갈색조의 슬픈 그림자를 피사로는 환한 햇빛으로 증발시키고 원색의 점들로 분해해 냈다.



‘보는 것이 곧 그리는 것’이라는 등식은 19세기 후반부로 가면서 깨어졌고, 그 주축을 이룬 것은 상징주의였다. 상징주의자들의 그림은 관찰보다는 기억에 더 의존한다. 눈으로 보면서 직접 옮겨 그리는 인상주의자들의 방식과 달리 상징주의자들은 본 것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상상한 것을 머릿속에서 종합하여 화면 위에 재구성한다. 예를 들어 피에르 퓌비 드 샤반이 그린 ‘희망’(그림 6)에서 나뭇가지를 들고 있는 나체는 어느 특정한 모델의 몸에서 그치지 않는다. 본 것을 옮겼다기보다는 희망이라는 관념이 의인화된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인물상은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다. 매혹적인 근대도시의 구경거리 속에, 또는 농촌의 평화로운 풍경 속에 인간의 모습은 무심한 이미지로 위장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만, 인간에게서 풍겨 나오는 살아있음의 흔적만큼은 숨겨지지 못하고 곳곳에 드러난다. 인물상들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예술이 삶의 은유라는 좁다란 지평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예술이 진정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하는 19세기적인 생각을 다시금 해보게 된다. ●



 



 



글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myjoolee@konkuk.ac.kr, 사진 예술의전당 ⓒRMN-Grand Palais/Musee d’Orsay - GNC media,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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