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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후회할 도핑 하느니 차라리 우승 포기하겠다”

투르 드 프랑스에서 세 차례 우승한 크리스 프룸 선수가 4일 ‘투르 드 프랑스 레탑 코리아’ 대회 주관사인 왁티 압구정동 사옥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는 예상 외로 호리호리한 체격이었다. 김성룡 기자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는 1903년 시작된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도로 사이클 대회다. 참가 선수들은 매년 7월에 약 3주 동안 알프스 몽블랑을 넘고, 노르망디 해변을 지나 3500km 이상을 달려야 한다. 동력(動力)은 오로지 인간의 두 다리에서만 나온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투르 드 프랑스=랜스 암스트롱(45·미국)’이라는 공식이 있었다. 암스트롱은 고환암을 극복하고 투르 드 프랑스 7연속 우승(1999~2005년)의 금자탑을 쌓았다. 그러나 그는 금지약물 복용 사실이 드러나 1998년 이후 모든 수상 실적과 기록을 박탈당하고 사이클계에서 영구제명됐다. 도핑 전문가들이 “최근의 도핑 적발 테크닉과 시스템은 거의 암스트롱 때문에 생겼다고 보면 된다”고 말할 정도로 암스트롱은 다양한 약물을 복용했고, 갖은 방법을 써서 도핑 검사를 피하려고 했다.



[2016 스포츠 오디세이] ‘투르 드 프랑스’ 영웅 크리스 프룸

 

5일 오전 7시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투르 드 프랑스 레탑 코리아’에 출전한 국내 사이클 동호인들이 크리스 프룸(노란색 저지)과 함께 힘차게 출발점을 나서고 있다. [사진 레탑 코리아]



[“암스트롱은 너무 오래 사람들 속여”]투르 드 프랑스는 암스트롱이 끼얹은 먹물을 씻어내고 지금도 달리고 있다. 암스트롱을 지운 선수가 영국의 크리스 프룸(31)이다. 아프리카 케냐에서 자란 그는 2013년 투르 드 프랑스 개인 종합우승을 달성했고, 지난해와 올해도 연속 옐로 저지(투르 드 프랑스 우승자에게 주는 노란색 상의)를 입었다. 특히 올해 대회 몽방투 구간에서는 충돌 사고로 고장난 자전거를 버리고 맨몸으로 달리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크리스 프룸이 서울에 왔다. ‘투르 드 프랑스 레탑 코리아’라는 대회에 초청을 받았다. 이 대회는 아마추어 사이클리스트들에게 투르 드 프랑스의 실제 코스를 달리는 듯한 경험을 주기 위해 만든 것이다. ‘레탑’은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첫 아시아 대회를 서울에서 열었다. 올림픽공원을 출발해 팔당대교~양평 중미산을 돌아오는 코스의 길이도 130km로 맞췄다. 토요일인 5일, 1500여명의 아마추어 라이더들은 투르 드 프랑스 챔피언과 함께 만추의 강변과 산악을 달렸다. 선두그룹에서 출발한 프룸은 중간 쉼터에서 내려 후미 그룹들에게 물병을 건네주며 완주를 기원했다.



대회 전날인 11월 4일 오후에 프룸과 인터뷰를 했다. 장소는 이번 대회 국내 주관사인 왁티(WAGTI·대표 강정훈)의 압구정동 사옥이었다.



-한국 방문은 처음이라는데 레탑 코리아 출전을 수락한 계기는.“이번 대회는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한 이벤트라고 들었다. 투르 드 프랑스 우승자로서 레탑 시리즈에 참여할 수 있는 건 특권이다. 스포츠에서 세계 최고 대회 우승자와 함께 어울리는 건 흔치 않다. F1 그랑프리(세계 최고 자동차 경주) 우승자인 루이스 해밀턴과 같은 차에 탄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 않나. 그런데 투르 드 프랑스 우승자와 같이 경기를 할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올해 투르 드 프랑스 몽방투 구간에서 일어난 일을 설명해 달라.“선두그룹 앞에는 촬영용 모터바이크(오토바이)가 달린다. 몽방투는 오르막이 이어지는 가장 어려운 구간인데 관중이 너무 많이 몰렸다. 모터바이크가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 없어 급정거하는 바람에 선두그룹이 뒤에서 추돌했다. 뒤따라 오던 모터바이크도 내 사이클을 치는 바람에 넘어졌고, 내 사이클이 망가졌다. 본능적으로 빨리 일어나 가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결승점까지 1km 정도 남았는데 비상용 바이크를 실은 지원차량은 한참 뒤에 있었다. 그래서 뛰었다.”



-손해본 시간(1분40초)을 심판들이 구제해 준 덕분에 기록이 번복돼 1위를 지킬 수 있었다. 잠깐이나마 1위에 올랐던 애덤 예이츠(24·영국)가 “심판 판정을 존중한다. 그런 식으로 옐로 저지를 입을 마음은 없었다”며 깨끗하게 승복했는데.“예이츠는 판정을 존중함으로써 스포츠의 정신을 잘 보여줬다. 그건 사이클뿐만 아니라 스포츠 자체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구식이라고 얘기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스포츠맨십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좋다.”



-그래도 관중 때문에 경기가 방해받아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관중이 선수를 매우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게 사이클 경기의 특별한 점이다. 그렇지만 관중이 지나치게 경기에 개입해서 결과에 영향을 미치고, 선수를 밀고 진로를 차단하고, 심지어 선수와 충돌하기도 하는 건 안타까운 점이다. 사이클의 매력을 지키려면 상호 존중이 필요하다.”



-투르 드 프랑스를 말할 때 암스트롱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다고 보나.“그건 암스트롱한테 직접 물어보는 게 낫지 않을까(웃음). 어쨌든 그는 너무 오랫동안 거짓말과 반칙을 했고, 사이클계 안에서 많은 사람들을 괴롭혔다. 그 바람에 우리가 이런 질문에 답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아직도 그런 얘기를 해야 한다는 게 불행이다.”



-투르 드 프랑스 코스가 너무 험난하고 길어서 누구라도 도핑의 유혹을 받게 된다는 말이 있다. 본인은 그런 유혹을 받은 적이 있나. 있다면 어떻게 극복했나.“전혀 유혹을 받은 적이 없다.(그는 ‘never, never’라고 두 차례나 강한 부정을 했다.) 내가 사이클계에 들어왔을 때 그런 건 전혀 수용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누구도 이거 한번 해 보라고 권하는 사람이 없었다. 평생 후회할 일을 하면서 투르 드 프랑스 우승하는 것보다 차라리 우승 안 하는 게 낫다.”



 



[케냐에서 자라 표범·코뿔소와 친구]차범근(축구)·최경주(골프)·오승환(야구) 같은 당대 최고 스타들과 인터뷰를 하면 그들의 카리스마에 살짝 압도당한다. 잘 발달된 근육에 놀라기도 한다. 그런데 프룸은 너무나 평범하고 호리호리했다. 터져나갈 듯한 허벅지 근육을 예상했는데, 키 1m86cm 체중 69kg인 그는 청바지가 헐렁해 보일 정도였다. 아마추어 사이클 선수인 중앙일보 사진부 김성룡 기자에게 물어봤더니 “근육이 많고 체중이 많이 나가면 오르막에서 힘들다”고 했다. 실제로 프룸은 체중을 8kg 정도 줄이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프룸은 내리막과 오르막에서 모두 강하다. 내리막에선 ‘프룸 자세’로 페달을 밟아 시속 90km까지 낸다. 엉덩이를 안장에서 떼고 상체를 앞쪽으로 둥글게 말아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는 자세다. 오르막에선 반대로 안장에 엉덩이를 붙이고 페달을 밟는다. 다른 선수들이 엉덩이를 들고 좌우로 움직이는 ‘댄싱 자세’를 하는 것과 반대다.



프룸은 케냐 나이로비의 대초원을 제집처럼 누비면서 자랐다. 어린 시절에 표범·코뿔소 등과 다정하게 찍은 사진도 인터넷에 올라와 있다. 프룸은 “대자연에서 뛰어놀며 동물들과 어울렸다. 자전거를 타고 자연을 탐색하면서 사이클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고 했다.



프룸은 꽤 긴 무명 시절을 보냈다. 그 기간에 ‘반칙’도 좀 했다. 케냐사이클연맹 이름을 도용해 2006년 월드챔피언십에 출전했고, 2010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모터사이클을 잡고 언덕을 올라가다가 적발돼 실격당하기도 했다.



-내리막에서 프룸 자세가 너무 위험하고, 실제 경기에서 효율적이지 않다는 말도 있는데.“다운힐에서 프룸 자세가 빠르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아니면 내가 우승하지 못했을 것이다. 위험한 건 사실이다. 아마추어에게 권하고 싶지는 않다.”



-무명 시절 저지른 두 차례 반칙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케냐에서 살면서 월드챔피언십에 나가 내 기량을 보여주고 싶다는 갈망이 강했다. 그런데 아프리카와 유럽은 너무 멀었다. 되돌아보면 내가 얼마나 경쟁을 하고 싶었으면 그런 일도 벌였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2010년 대회 때는 선두에 30분 이상 뒤처져 있었고 무릎 부상도 심했다. 이미 탈락했구나 싶어서 언덕만 넘어서 후송 차량을 타야겠다는 생각에 모터사이클을 붙잡았다. 이기고 싶어서 한 건 아니다.”



-자신에게 사이클은 무엇인가.“사이클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자체다. 투르 드 프랑스를 앞두고 6개월간은 먹는 것과 잠자는 시간까지 모든 것을 사이클을 염두에 두고 생활해야 한다. 또한 투르 드 프랑스는 팀이 하는 경기다. 개인의 실력을 겨루는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게 아니다. 시상대에 한 명이 올라가기 위해 팀(9명) 전체가 협력하고 희생해야 한다.(프룸은 팀 스카이 소속이다)”



프룸은 다양한 측면에서 사이클의 가치를 이야기했다. “경쟁을 원하는 사람은 특정 코스에서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노력한다. 취미 활동으로 사람을 사귀는 데도 좋다. 비즈니스로도 경쟁력이 있다. 사이클은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새로운 골프다.”



‘새로운 골프’라는 프룸의 마지막 말에 꽂혔다. 미세먼지와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 버린 요즘, 자전거는 지구를 살릴 친환경 교통수단이다. 건강과 친목을 다지는 레저스포츠로 각광받고 있다. 그런데 아직 국내 자전거 시장은 취약하다. 투르 드 프랑스 입상은커녕 대한민국 선수가 근처에 가 본 적도 없다.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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