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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량컵과 엄마 손맛

미식시대가 열렸다. 내 어린 시절만 해도 음식은 끼니를 때우는 쪽에 더 가까웠고 맛있는 것을 먹는 날은 흔치 않았다. 그런데 이제 음식은 배를 채우는 수단 그 이상이다. 사람들은 다양한 맛을 추구하고 스마트폰을 들고 맛집을 찾아 다닌다. 맛집 찾기는 방송에도 자주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 됐다.



덕분에 관련 산업도 번창하고 맛의 지휘자인 요리사(셰프)의 주가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요리하는 법을 알려주는 ‘쿡방’은 물론 먹는 것을 찍어 인터넷으로 방송하는 ‘먹방’까지 인기를 얻고 있으니 말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을 보여주면서 돈을 벌고 주목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누가 했을까 싶다.



특별기고

사실 요리는 상당히 과학적인 부분이 있다. 식재료들의 성분을 알아야 하고 각종 재료들을 섞었을 때 어떤 반응이 나타나는지, 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재료들에 어떤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이해해야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다. 물론 일반인들은 그렇게까지 심오한 과학을 이해하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말이다. 반면 맛은 과학의 수식이나 인과관계로 설명되지 않는 너무나 주관적인 영역이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다고 한마디로 정리하기에도 부족하다. 같은 음식이 지역과 사회에 따라 맛을 다르게 평가받는 것을 보면 분명 사회·문화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고 이미 알려진 맛집을 순례하며 ‘좋아요’ 하나 더 보태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것을 보면 심리적인 요인도 큰 것 같다.



그러나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방법엔 몇 가지 황금률이 있다. 그 기본은 계량컵이다. 처음 식당을 개업할 때 메뉴를 정하고 레시피를 확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인터넷이나 요리책에는 레시피가 넘쳐나지만 그대로 따라 한다고 꼭 원하는 맛을 얻을 수는 없었다. 회비빔밥의 초장 하나 만드는 데도 열 번, 스무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다. 물론 이 때 기준이 되었던 건 정확한 계량과 시간의 측정이었다. 재료와 시간, 만드는 과정을 기록하고 비율을 바꿔가며 최적의 맛을 찾는 일을 반복했다. 메뉴 개발은 맛을 수치화하는 작업 없이는 불가능했다.



맛의 계량화는 동일한 품질로의 무한 복제를 가능하게 한다. 늘 좋은 맛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의미다. 생산과정의 규격화는 산업화의 핵심이고 좋은 품질의 무제한적인 복제는 디지털 경제의 근간이다.



반면 조금 다른 방식으로 계량화를 표현하기도 한다. 좋은 맛을 내기 위해 오랜 시간 숙련의 과정을 견디는 장인정신, 요즘 표현으로 ‘달인’이 바로 그것이다. 오랜 숙련 끝에 한 번에 밥을 쥐면 초밥 만들기에 딱 좋은 양의 밥알 개수를 정확히 쥘 수 있다는 초밥왕의 이야기는 달인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계량화를 통한 레시피 만으로는 ‘아름다운 맛’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 맛의 세계에서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성역이 존재하는데, 바로 엄마 손맛이다. 최고의 명성을 얻은 셰프나 손님들로 줄이 늘어선 맛집도 엄마 손맛이라는 벽은 쉽게 넘을 수 없다. 제 아무리 유명한 요리사의 음식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순 없고, 매일 먹을 수도 없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그립고, 늘 같은 자리에서 허기를 달래주는 엄마 손맛은 혀와 위를 만족시키는 것을 넘어서 마음을 채워준다. 영혼을 치유하는 음식이자 맛이다.



엄마 손맛이 미식의 정점에서 성역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역설적으로 계량화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 세대의 어머니들(젊은 세대에겐 할머니들)에게 조리법을 물어보면 ‘간장 넣고 물 넣고, 찍어 먹어봐서 너무 짜지 않게, 슴슴하게 간 해서’와 같은 답이 돌아오기 일쑤다. 한번도 계량컵을 써본 적이 없는 우리의 어머니들에게 수치화 된 레시피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집에서 엄마가 담그던 김치의 맛은 김치 공장에서 만들어 내고 있지만, 그것은 더 이상 엄마 손맛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엄마 손맛은 마음속에 남아있는 영역인지도 모른다.



우리 식당 인기 메뉴 가운데 하나는 해물라면이다. 점심용으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도록 시중에 판매되는 라면에 새우·게·홍합 등의 해산물을 넣고 끓인 것이다. 해물라면을 먹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시원한 맛에 놀라며 저마다 맛에 대해 평가를 내린다.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특별한 라면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추측과 물이 아닌 비법의 육수로 라면을 끓였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처음엔 시중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라면을 사용했고 해산물만 넣었을 뿐 레시피 그대로 끓였다고 열심히 해설을 해주었지만 요즘엔 애매한 웃음으로 답을 대신한다. 미식가들이 찾아낸 상상의 비법이 계량컵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의 맛을 만드는 ‘조미료’라고 느낀 때문이다. 계량컵으로 잴 수 없는 엄마 손맛의 비법처럼 말이다.



 



이지선㈜미친물고기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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