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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는 척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다

나라가 하도 어수선해 무슨 글을 써야하나 싶다. ‘하늘이 파랗다, 단풍이 곱다’ 할 수도 없고, 욕심 부리지 말고 마음을 비우라 말하기도 좀 그렇다. 어째 모든 것이 다 버스 놓치고 손 흔드는 느낌이랄까. 문득 관우(關羽)란 인물이 떠오른다.



며칠 전, 도반들이 모이는 날이라 간만에 장도 보고 구경도 할 겸 경동시장에 갔다가 아직도 장사하는 이들 사이에선 재신인 관제(關帝=관우)를 모시는 이가 있다는 얘길 들었다. 관우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에서도 재신(財神)으로 통한다. 그는 의협심 많고 돈에 담백한 인물이기에, 그의 정신으로 장사를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삶과 믿음

『삼국지』는 조조가 관우를 잡은 후 마음을 돌리기 위해 거금을 주고 환대하며 공을 들였는데, 정작 관우는 돈에는 손도 안 대고 함께 잡혀온 유비의 아내만을 데리고 탈출했다고 전한다. 이런 관우의 재물을 대하는 태도가 훗날 장사하는 이들에겐 본받아야 할 정신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런 관우의 정신을 왜곡해 먹칠한 이가 있었다.



조선 고종 시기에 스스로를 관우의 딸이라 주장하며 나라를 쥐고 흔든 이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진령군(眞靈君)으로 불린 무당이다. 당시 한때 쫓겨난 명성황후가 환궁을 앞두고 이 무당의 예언을 들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예언이 맞아 떨어졌다. 그것을 계기로 명성황후는 무당 말만 믿고 의지하게 됐다. 그러자 머지않아 진령군의 위세가 나라를 흔들기 시작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던지 이 무당에게 붙어야 출세할 수 있었다고 한다. 늘 자신을 관우와 연관시켰으나, 사실 그녀는 상도(常道)도 의협심도 대범함도 갖추지 않았다. 그런 한낱 점쟁이가 어려운 시기의 나라를 좌지우지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다.



‘지나간 과거는 고칠 수 없지만, 다가올 미래는 고칠 수 있음을 알게 됐다(悟已往之不諫,知?者之可追)’는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가 생각난다. 세상에 과오 없는 인간이란 없다. 출가자인 나도 반성할 만한 어리석음이 시시각각 돋아난다. 그러나 사람이 매 끼니를 원 없이 먹고, 갖고 싶은 물건을 다 소유한다 해도 백년을 못 산다. 물건도 마찬가지다. 다함 없는 재산도 물건도 없다. 어디 그뿐인가. 마음 나눌 벗도, 곱던 사랑도 영원하지 않다. 다 떠나고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암담한 순간을 누구나 일생에 한 번은 겪는다. 그것이 비루한 인간의 삶 아니겠는가.



‘자는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자는 척 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다’고 했다. 듣고 있으면서 못 들은 척하는 사람과는 대화할 수 없는 법이다. 자는 척하지 말고, 못 들은 척하지 말고, 두렵더라도 이제는 눈을 떠야 한다. 현실을 봐야 한다. 그래도 괜찮다. 무상함을 알기에, 사람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자비롭다.



 



원영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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