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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들이 춤추는 그날까지”

‘콘택트’는 가상의 뮤지컬 ‘파우스트’를 만들며 벌어지는 다양한 해프닝을 노래와 춤, 서커스와 마임, 최신 영상기법 등 비주얼 이펙트를 총동원해 무대화한 작품이다. ⓒLaurent Philippe

필립 드쿠플레



‘융복합’ 예술의 개척자(Philippe Decoufle·55)가 온다. 춤·연극·서커스·마임·비디오·영화·건축·패션 등을 뒤섞은 화려한 볼거리를 창조해 ‘공연예술의 미래’로 불렸던 프랑스 문화의 아이콘이다. 기존의 무엇과도 닮지 않은 그만의 스타일은 그 어떤 장르로도 규정할 수 없기에 일찌감치 ‘드쿠플러리’(Decoufleries: 드쿠플레 방식의)란 신조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신작 '콘택트'로 내한하는 '공연예술의 미래' 필립 드쿠플레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올림픽 개막식’으로 꼽히는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개막식을 불과 서른 한살의 나이에 연출했고, 태양의 서커스 ‘아이리스(Iris)’와 ‘파라무어(Paramour)’, 파리 3대 카바레 중 하나인 크레이지 호스의 ‘욕망(Desire)’도 그의 작품이다. 2014년 자신의 초기작들을 갈라 형식으로 엮은 ‘파노라마’로 내한해 전석 매진을 기록했던 그가 이번엔 신작 ‘콘택트(Contact)’(11월11~13일까지 LG아트센터)를 들고 한국을 직접 찾는다. 그가 스물 두 살에 만든 무용단 DCA(Decoufle’s Company for the Arts) 사상 최대 규모의 작품으로 화제다. 끊임없이 새로움과 놀라움을 추구하는 그가 이번엔 또 어떤 충격을 객석에 선사할까. 현재 일본에서 뮤지컬 신작을 제작중이라는 그에게 중앙SUNDAY S매거진이 e메일로 물었다.



 

‘콘택트’는 악마 메피스토텔레스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 박사가 여행을 떠나 만나는 다양한 세계를 그린다.



‘마술의 세계에 들어간 듯한’ ‘만화영화를 보는 듯한’.



필립 드쿠플레의 작품을 수식하는 말들이다. 그런데 ‘콘택트’는 이와는 또 다른 것 같다.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를 모티브로 삼았고, 2009년 작고한 세계적인 안무가 피나 바우쉬에 대한 오마주격의 작품이라니, 의외로 심각한 무대인 걸까. 그런데 관객의 호응은 여전하다. 2014년 프랑스 초연 이래 영국, 벨기에, 독일, 일본 등을 돌며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알고보면 괴테와 피나는 아이디어의 단초일 뿐이다. 기존의 것을 새로운 형태로 제시하는 장기를 가진 그는 ‘파우스트’라는 가상의 뮤지컬을 리허설하며 벌어지는 해프닝으로 골격을 짰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고 다양한 세계를 여행하는 파우스트의 여정을 토대로 악마와의 거래를 특유의 신체언어로 연출하는가 하면, 피나 바우쉬의 대표작인 ‘콘탁트호프(Kontakthof·1978)’의 명장면을 패러디하기도 한다.



“저는 피나 바우쉬를 매우 존경합니다. 그녀는 춤에 대해 매우 구체적이고 인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피나의 작업은 아주 독특하죠. 물론 제 작업과는 전혀 다르지만 저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어요. 제목의 절반도 그녀의 ‘콘탁트호프’에서 따온 게 맞습니다. 제가 처음 본 피나의 작품이고 너무도 멋진 작품이기에 작품명에 사용했습니다.”



그럼 ‘파우스트’와 피나 바우쉬는 무슨 상관인 걸까. 그는 “아무 상관 없다”고 했다. “작품의 내용은 피나와 상관 없습니다. 어떤 특정한 이야기로부터 작품을 출발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단지 ‘파우스트’가 매우 재미있고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생각해서 택한 것이죠. 하지만 원작을 몰라도 되고 이야기를 따라갈 필요도 없어요. 괴테의 소설은 사랑과 욕망과 광기라는 배리에이션을 만들어 작품을 비약시키는 트램폴린으로 이용했을 뿐입니다. 거기서 나오는 다양한 이미지를 자유롭게 느끼면 됩니다.”



그는 또 “‘콘택트’는 연기자들 사이, 그리고 연기자들과 관객 사이의 ‘관계’를 의미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차에 시동 거는 걸 불어로 ‘콘택트’라고 하는데 무언가 발사하고 약진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현대사회에 콘택트가 부족한 것 같아 붙여본 것이죠.” 그러니 ‘콘탁트호프’의 컨셉트와도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다. 피나가 ‘콘탁트호프’를 통해 관계에서 비롯되는 사랑과 두려움, 그리움과 외로움, 좌절과 공포 등의 이야기를 ‘탄츠테아터’라는 자신만의 미학적인 방식으로 풀어놓았듯, 드쿠플레도 같은 이야기에 ‘드쿠플러리’라는 자신만의 방식을 가동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 ‘드쿠플러리’란 어떤 것일까. 무대 위 출연자들의 퍼포먼스와 영상이 서로 맞물려 2차원과 3차원을 오가며 빚어내는 시각적 스펙터클로 대변되는 ‘드쿠플러리’는 “일상으로부터의 시적 탈출과 스릴 넘치는 낯선 세계”를 향하고 있다. “열여섯명의 댄서와 배우, 가수와 마술사들이 뮤지컬을 만들어가는 스토리에요. 인간의 열정에 관한 비논리적인 이야기죠. 그들은 예술과 사랑, 지식과 신성, 탐욕에 대해 이야기하고, 선과 악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자유가 지배하고 열정과 분노가 합창하는 상상력과 순수한 즐거움에 대한 호소이기도 하구요.”



[“이야기는 이미지를 비약시키는 트램폴린일 뿐”]



‘새로운 아이디어’의 대명사인 그에게 ‘콘택트’만의 새로운 것이 있느냐고 물으니 ‘노래’라고 답했다. 뮤지컬에 관한 작품인 만큼 음악의 비중이 큰데, 모두 오리지널로 작곡된 곡들이 기타·첼로·피아노·퍼커션 등 다양한 악기로 무대 위에서 라이브로 연주된다. 특히 록과 팝을 아우르는 뮤지션 노스펠(Nosfell)이 천사와 악마의 목소리를 넘나드는 기교도 이 무대에서 놓칠 수 없는 관전포인트다.



“콘택트는 뮤지컬을 만들려는 시도입니다. 요즘 내 관심사가 뮤지컬이기도 하고, 일본에서 뮤지컬을 제작 중이기도 하죠. 콘택트만의 새로움이라면 춤·연기·라이브 음악·비디오에 더해 모든 등장인물이 노래를 한다는 점입니다. 그건 우리 단원 모두에게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목소리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악기처럼 사용된다고 보면 됩니다. 그렇다고 노래가 주인공은 아니예요. 고난도의 신체 표현을 하는 퍼포머가 재미로 노래도 부르고 코믹 연기도 하는 거죠. 어디까지나 주인공은 배우의 신체로 표현되는 경이로운 움직임들입니다.”



사실 드쿠플레는 어린 시절 만화가를 꿈꿨다고 한다. 특히 ‘벅스버니’의 작가 텍스 에이버리에게 단단히 빠져 있었다. “그의 모든 만화를 좋아했습니다. 지금도 그의 스타일을 사랑하구요.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와 불가능한 움직임이 가득하거든요.”



만화영화의 ‘불가능한 움직임’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15살에 정규 학교를 자퇴하고 프랑스 국립 서커스 학교와 팬터마임의 대가 마르셀 마르소의 마임 학교에서 움직임을 본격적으로 배웠다. 그러다 각 장르의 한계를 깨닫고 미국으로 건너가 현대무용 거장 머스 커닝햄과 얼윈 니콜라이에게 무용은 물론 조명·음향 등 무대연출기법까지 전수받았다. 남들은 보통 머리 쓰는 걸 배워야 한다고 여기는 학창 시절에 그는 왜 온통 몸 쓰는 것만 배운 걸까.



“저는 일단 춤이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모든 인간은 춤춰야 한다고 생각하죠. 춤을 추면 자연스럽게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에요. 춤을 비롯해 모든 움직임은 건강에 좋습니다. 그리고 건강함을 유지하는 것은 분명히 두뇌에도 좋겠죠. 그런데 ‘콘택트’를 하면서 노래도 같은 효과를 가진다는 걸 발견했어요. 노래를 부르면 몸 안에서 멋진 센세이션이 일어납니다.”

2014년 내한공연했던 ‘파노라마’ 중에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 내 일”]



그는 1983년에 DCA를 설립하자마자 그간 경험해 온 다양한 장르를 몽땅 섞어 ‘드쿠플러리’를 구현하기 시작했고, DCA의 첫 작품 ‘묘한 카페(Vague Cafe)’(1983)부터 유서 깊은 바뇰레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단 7분간의 공연으로 ‘진일보한 무용’이라는 평가와 함께 촉망받는 신인 안무가 대열에 들게 된 것이다. 89년 프랑스 대혁명 200주년 기념 퍼레이드 안무로 대중적 주목까지 받게 된 그는 알베르빌 동계 올림픽 개막식으로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지하에서 공중까지 모든 공간을 활용해 독특한 형태의 구조물과 화려한 의상, 무용과 아크로바틱, 서커스 등 온갖 볼거리를 한꺼번에 녹여낸 마술적이고도 예술적인 축제가 전세계에 생방송됐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그의 작업들을 두고 깊이가 없고 지나치게 장난스럽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이에 대해 그는 “내 작업의 대부분은 매우 진지하지 않은 것들, 때론 유치하기까지 한 것들에서 출발한다”면서도 “하지만 그것들을 구현하는 방법들은 매우 진지하고 정확하다”고 잘라 말했다. “저는 제가 보고 싶은 쇼를 만들 뿐입니다. 저는 쇼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가지고 놀기를 좋아하며, 그것들을 결합해 새로운 종류의 엔터테인먼트로 만드는 걸 좋아합니다. 사람들이 TV를 덜 보고 공연장에 왔으면 좋겠어요. 저는 여러 예술 형태가 혼합된 이런 타입의 쇼가 거기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드쿠플레가 다른 안무가와 다른 가장 큰 차별점은 이런 ‘쇼’에 대한 감각이다. 스스로도 “현대무용을 심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일한다”고 할 정도다. “제가 관심있는 건 대중의 즐거움 그 자체입니다. 저는 제 꿈을 충족시키고 구현되도록 만들 뿐이죠. 많은 이들이 제 환상을 공유하게 되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새롭고 기발한 발상을 보여주는 그는 엄청난 다작 작가이기도 하다. 1983년 데뷔 때부터 최근작인 태양의 서커스 ‘파라무어’(2016)까지 거의 매년 1~2개의 신작을 발표해 왔다. 틈틈이 단편영화와 광고, 뮤직비디오 등 영상분야에도 진출해 칸 영화제 폴라로이드광고 은사자상(1989), 제네바 국제 영화제 관객상(1995)을 수상하는 등, 영상 언어에서도 오리지낼리티를 인정받고 있다.



그의 경계없는 상상력은 주변의 모든 것에 영향 받는다. 소리와 냄새·움직임·사람,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파리의 자연사 박물관에서도 영감을 받는단다. 실제로 ‘드쿠플러리’가 제대로 발휘된 피지컬 씨어터 첫 작품인 ‘코덱스’(1986)의 경우는 상상의 생물이 그려진 오래된 도감에서 출발해 기하학과 해부학, 천문학까지 관심을 넓혀 상상의 세계를 펼쳐낸 무대였다. 매번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은 없을까. 그는 “그저 그게 내 직업이고 항상 해 왔던 일”이라며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삶의 모든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이는 곧 춤의 소재가 된다”고 했다.



‘역대 최고로 아름다운 올림픽 개막식’을 연출했던 그에게 평창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막식을 위한 조언을 부탁하니 간결한 대답이 돌아왔다. “당시 저의 컨셉트는 막연히 얼음과 불이었는데, 산 속에서 2월에 개막식을 하게 됐으니 당일에 날씨가 좋기를 빌던 기억만 나네요. 비가 온다면 그런 스펙터클을 보여줄 수 없었을 테니까요. 예술가에게 기회를 주세요. 스포츠의 아름다움에 대한 그만의 관점을 마음껏 보여주고 연출할 수 있도록.”●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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