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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국 "비극은 말에서 시작…추상은 말 없어 좋다"






■덕수궁미술관 유영국 탄생 100주년 기념전
1937~1999년 절필작까지 총 150점 공개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 몬드리안이 왜 좋은가.

"말이 없어서 좋다"

1917년 신조형주의 이론을 발표하고 추상 회화의 기치를 내걸었던 몬드리안을 좋아했던 그는 추상을 '말없는 조형의 세계'로 봤다.

1차 세계대전 후의 몬드리안에게서나 제 2차 세계대전중의 일본 화가들과 그 속에 속했던 일본 유학파였던 그, 유영국(1916~2002)은 "인간이 만들어낸 비극들은 말이 만든다"고 믿었다.

제 1차 세계대전의 혼돈을 통과한 '몬드리안의 세대'가, 예술의 통해 도달하고자 했던 것은 완벽한 정신적 평온의 상태였다.

유영국도 그랬다. 1916년에 태어나 식민지 해방 전쟁 전후 혼란기를 모두 겪었다. 잠시 그림을 접고, 어부, 양조장 사장으로 살기도 했다.

나이 마흔에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울진에서 잘나가는 양조장 사업을 접으면서 그가 말했다. "금산도, 금밭도 싫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겠다." 이후 서울로 올라온 그는 진짜, 평생 전업작가로 살았다. 덕분에 부인이 애를 썼다. (지인들에 의하면)'선녀'같은 인상의 부인이 그림만 그리는 남편 대신 택시에서 버스운행을 하며 생계를 책임졌다.

'돈도 안되는 그림', '팔리지도 않는 그림' 형상도 없는 추상미술을 했다. 작품이 팔리기 시작한 건 그의 나이 만 59세였다.

시대를 앞서갔던 그는 지금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그때도 했었다.

3일 유영국의 작품이 전시된 덕수궁미술관에서 만난 장남 유진(66·카이스트 신소재 공학과) 교수는 어린시절 아버지의 말을 기억해냈다.

국민학교때 아버지 직업조사를 하는 날이었다. 선생님이 "아버지가 뭐하시냐" 물었다. "화가에요." 그러자 선생님이 또 물었다. "뭐를 그리냐" 아들은 아버지가 알려준대로 말했다. "모던아트를 해요." 반친구들은 꺄르르 웃어제쳤다. 아버지에게 '모던아트'를 모른다고 하자, 아버지는 또 다른말로 알려줬다. "아방가르드를 한다고 해라." 그때는 50년대 후반이었다.

유영국의 생애는 작품처럼 '추상의 세계'였다. 지금도 낯선 '추상'미술을 하며, 21세기 유행하는 '혼밥' 하듯 '혼작'(혼자 작업)했다. 당시 미술인들의 로망인 대학교수를 오래 하지도 않았고, 화단정치에 현혹되지않았다. 전업작가로 혼자 매일매일 침실과 아틀리에 사이를 정시 출퇴근하며 작품에만 매달렸다.

아들 유진 교수는 아버지의 마직막 유언같은 말씀도 떠올렸다. 2002년 죽음이 임박한 때였다. 1977년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실뻔했다 살아났다. 오랫동안 병원입원을 오갔고, 2002년에는 8개월동안 병실에 누워있었다. 아버지에게 아들이 물었다.

"남기실 말씀 없으세요?"

"없다."

유영국 아들 유진 교수는 당시 큰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때문에 깜짝 놀랐고 당황했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과묵했어요. 그런데 목소리가 컸어요." 아버지가 원하는대로 공학과를 갔고, 공대 교수가 된 아들은 "좋은 그림은. 네가 좋으면 좋은 거다"라는 아버지 말씀을 새기고 있다.

'단순함의 극치'였던 유영국.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다. 한국의 자연을 아름다운 색채와 대담한 형태로 빚어낸 최고의 조형감각을 지닌 화가로 꼽힌다. 그는 이중섭 김환기 문학수와 같이 활동했지만, 동시대 인물같지 않다. 행적은 더욱 신기하다. 19세기 코스모폴리탄이다.

1931년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지만 돌연 자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35년 4월 도쿄 문화학원에 입학했다. 이 학교는 일본 사립학교중 하나로 건축자이자 교육사업가가 설립한 문예 전문학교였다. 이곳에서 인생의 향방이 결졍됐다. 샤토 쿠니오(1897~1945), 무라이 마사나리(1905~1999), 하세가와 사부로(1897~1957)등 세명의 일본인 화가를 만나면서다. 샤토 큐니오는 유영국의 경성 제2공등보통하교 재학시절 미술교사로,야수파적인 색채를 유지하면 우수에 찬 조선인의 모습을 화폭에 담곤했다. 유영국이 도쿄에 정착하게 한 사제지간으로 알려졌다.

"유영국이 가장 존경하는 화가로 꼽았던 인물은 사헤가와다. 동경제국대학 문학부 미학과 출신으로 미술평론가이자 예술가였던 그는 유럽여행을 자유자재로 할수 있는 재력이 있었다. 유럽 최신미술동향을 소개하며 당대 미술계 최고의 시직인으로 활약했다. 자유미술가협회의 초창기 리더였던 그는 조선인 예술가들에게 특히 우호적인 편이었다. 1938년 유영국이 협회상으로 받을때에도 그의 작품에 대한 호평을 비노쿠니에 실었으며, 유영국은 사진을 공부했던 그의 친구 주현(변명 이범승과) 함께 하세가와 사부로의 집에 드나들었던 것 같다. 하세가와 사부로의 강한 리더십, 타협하지 않는 생활태도, 추상미술에의 경도, 사진에 대한 관심 등은 유영국과 여러 지점에 일맥상통하는 면을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 '예술'을 통해 일종의 유토피아적 '삶'을 실천하고자 했던 하세가와 사부로의 철저한 신념은 유영국의 생애 전체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으리라 짐작된다." (김인혜 학예연구사)

유영국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국립현대미술관은 '유영국, 절대와 자유'전을 4일부터 덕수궁미술관에서 개최한다. 한국의 근대미술 거장 시리즈(변월룡, 이중섭, 유영국)의 마지막 전시다.

유영국의 작품에서는 점, 선, 면, 형, 색 등 기본적인 조형요소가 주인이 되어 등장한다. 이들은 서로 긴장하며 대결하기도 하고, 모종의 균형감각을 유지하기도 함으로써, 그 자체로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고향 울진의 깊은 바다, 장엄한 산맥, 맑은 계곡, 붉은 태양 등을 연상시키는 그의 작품은, 추상화된 조형의 힘으로 소리없이 강한 울림을 선사한다.

"내 그림은 주로 '산'이라는 제목이 많은데, 그것은 산이 너무 많은 고장에서 자란 탓일게다. '숲'이라는 그림도 내가 어렸을때 마을 앞에 놀러 다니던 숲이 생각나서 그린 것이다. ...항상 나는 내가 잘 알고, 또 언제든지 달려갈수 있는 곳에서 느낀 것을 소재로 하여 즐겨 그림을 그린다."(고 유영국 화백)

김인혜 학예연구사는 "60년대 작품은 지금봐도 '마크로스크'는 저리가라 할 정도"라며 "한국의 근대 미술사에서 유영국이라는 작가가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자부심이 될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정도 작품은 보여줘야" 한다며 만 48세였던 1964년 첫 개인전에 선보인 대형 작품부터 유영국의 전 생애 작품 100여점과 자료 50여점이 총망라됐다. 1937년 유학시기부터 1999년 절필작등 개인소장자들에게 대여해 선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작가 생존시 개인전(15회)과 사후의 전시를 통틀어 최대 규모의 것으로, 유영국의 진면모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최초의 전시라는 데에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구글 컬처럴 인스티튜티'가 지난 5월 공개한 로봇카메라 아트 카메라로 온라인으로도 전시한다. 10억필셀 이상의 이미지를 통해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든 유화의 갈라짐, 붓 터지등을 덕수궁미술관 전시실에 설치된 키오스크와 구글 아트 앤컬처 뮤료 모바일앱을 통해 정밀하게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아트 카메라'가 필요없을 정도다.

색과 색이 만나 부서지지 않고, 점선면이 상생해 '산'을, '해'를 '호수'를 만들어낸 '그림'은 '그냥 좋다'고 느껴진다. 10억픽셀로도 담을수 없는 감성이 교감한다.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유영국 화백의 말이 전해진다.

나라가 시끄럽다. 상처받고, 답답한 마음 풀고 싶다면 이번 전시가 딱이다. '말 없는 추상', 그 불가능한 일을 해낸 유영국의 '절대와 자유'가 따뜻한 위로를 선사한다. 전시는 2017년 3월 1일까지.

hyun@newsis.com

<저작권자ⓒ '한국언론 뉴스허브'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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