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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다음 대통령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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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환
고려대 미디어학부 명예교수

20세기 후반 50여 년 동안 우리나라는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세계사적 시대 과제를 해결하고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국권 상실과 전란을 딛고 이룩한 것이어서 더욱 의미 있는 결실이었다. 두 과제를 위해 헌신한 산업화 역군이나 민주화운동가들은 그 시대의 영웅들로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산업화·민주화 세력 협업 실패
시대착오적 정쟁으로 20년 허송
제2, 제3의 최순실 양산할 것
믿고 나라 맡길 만한 사람 안 보여
정보사회는 새 사회체계를 요구
새판 짤 사람이 대통령 돼야


산업화와 민주화를 선도한 공적을 인정한 국민은 21세기 들어 바로 그 두 세력에게 한국 사회의 새로운 당면 과제를 풀어가도록 위임했다. 기회는 균등했다. 첫 10년은 민주화 세력을 대표하는 김대중·노무현 두 정부가 이끌었고, 다음 10년은 산업화 시대의 상징성을 지닌 이명박·박근혜 두 정부가 맡았다.

그럼 지난 20여 년을 어떻게 결산할 수 있을까?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네 대통령이 이끈 정부의 점수를 매겨 비교하는 일은 이 시점에서는 부질없다. 그보다는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함께 펼친 정치역정 전반에 대해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업을 이룬 이후, 산업화 역군이나 민주화운동 세력이 새로운 시대 과제에 제대로 대응했는지에 대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 점에서 비판의 소지가 있다. 첫째, 두 세력은 21세기에 전개되는 새로운 사회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한계를 드러냈다. 21세기 사회는 정보사회다. 벨(Daniel Bell)이 말한 바 있지만, 정보사회는 제조업이나 농업 분야보다 경제의 서비스 분야가 주축이 된다. 공장이나 토지보다는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정보와 지식이 경제활동의 핵심 요소로 작동한다.

따라서 정보사회는 산업사회와는 다른 새로운 사회체계를 요구한다. 토플러(Alvin Toffler)가 『제3의 물결』에서 지적했듯이, 산업시대를 이끌었던 혁명가들이 봉건제도의 틀을 그대로 둘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는 정보사회에 맞는 새로운 사회체계를 갖춰야 한다. 그러나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끈 두 세력은 새 사회체계를 만들어 내기는커녕, 구시대의 낡은 논리에 묶여 시대착오적인 정쟁이나 벌이면서 20여 년을 허송했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경제 침체나 고용 부진, 교육 파행 등은 새로운 사회체계로 발 빠르게 이행하지 못한 과오와 무관하지 않다.

둘째,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은 정치적 협업에 실패했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덕목이다. 따라서 산업화 세력은 민주적 가치를 바탕으로 품격 있는 사회를 구현하게 된 점을 평가해야 하고, 민주화 세력은 산업화가 민주화의 토양을 제공한 점을 인정해야 했다.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협업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열어야 했다.

그러나 두 세력은 협업 대신에 그침도 없고 깊이도 모를 대립과 갈등을 일삼았다. 두 세력은 좌와 우, 진보와 보수를 표방하지만 그럴싸한 이념 틀 하나 제대로 제시한 적이 없다. 그 대신에 패거리를 만들어 패싸움을 벌이는, 싸움꾼이 판을 치는, 그런 세상을 만들었다. 새로운 사회체계를 모색해야 할 국회는 정쟁의 게토(ghetto)가 된 지 오래다. 패싸움 정치의 근저에 지역주의가 깊게 뿌리내린 지 오래지만 정치권은 그걸 바로잡기보다는 그 모순을 지속시키며 기득권을 향유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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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에는 좌우로 갈려 싸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 당내에서 여당은 친박과 비박으로, 야당은 친문과 비문으로 나뉘어 싸운다. 제2야당은 오래지 않아 친안과 비안으로 쪼개질지 모른다. 말이 정당이지 그야말로 붕당에 지나지 않는다. 당내 패권을 장악해 국정 패권을 틀어쥐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 정책은 선거철이 되면 밖에서 책략가를 끌어와 치장하게 한다. 이게 우리의 정치 수준이다.

다음 대통령선거가 1년여 앞으로 다가왔다. 신문은 다투듯이 잠룡들을 인터뷰한다. 얼핏 보면 사람이 많은 것 같지만, 딱 믿고 나라를 맡길 만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진짜 잠룡은 더 깊이 숨어 있는 걸까?

정보사회는 이전의 어느 사회보다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 사회체계 개편도 빨라야 한다. 이런 긴박한 시점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가? 당내 패권을 거머쥔 세력 가운데 어느 하나가 대통령을 배출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다른 당의 패권 세력과 넌더리 나는 갈등을 이어간다면, 이 위중한 시기에 우리는 다시 5년을 잃게 된다. 패권정치는 갈등 말고도 5년마다 제2, 제3의 최순실을 양산할 것이 불을 보듯 빤하다.

다음 대통령은 나라를 그런 수렁으로 밀어 넣지 않을 사람이라야 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새로운 사람을 모아 새로운 판을 짤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대립이 아니라 협업을 통해 정보사회에 맞는 새로운 사회체계를 마련할 사람이라야 한다.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이 보인 20여 년의 정치 실패가, 그리고 최순실 사태가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다.

김민환 고려대 미디어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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