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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 위한 ‘정원’, 미쳤다 했는데…이젠 역사가 됐네요

| 40주년 맞은 삼원가든 창업주 박수남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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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원가든에서 만난 박수남 회장은 “1981년 현재 자리(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확장 개업했을때 당시 TV뉴스는 ‘사치스럽다’고 보도했지만 손님은 오히려 더 몰렸다”고 돌아봤다.


“수백개나 되는 장식용 외등과 내등의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룬 이 갈비집의 모습은 흡사 숲속의 아방궁 같다. … ‘이곳에서만은 소비가 미덕’이라고 뽐내고 있는 듯싶다.” 1982년 11월11일 한 일간지가 보도한 ‘강남 새 풍속도-초대형 전원 갈비집’ 기사의 일부다. 여기서 묘사한 공원식 갈비집은 삼원가든(서울 강남구 신사동)이다. 81년 11월 지금의 자리에 4000㎡(약 1200평) 규모로 개업한 이래 전국에 ‘~가든’이라는 상호를 유행시켰다. 개업 당시엔 ‘식도락 향락문화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들었지만,  남북 고위급회담 오찬(1990년), 이산가족 상봉 환영 만찬(2000년) 등 굵직한 역사적 행사를 치러내면서 하인스 워드(미 미식축구선수)·패리스 힐튼(호텔그룹 힐튼가 상속녀) 등 유명인사가 방한 때마다 즐겨 찾는 세계적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 등 유력 정치인과 현대·LG·두산 등 재계 총수 일가, 이영애·전지현·차승원·추성훈 등 톱스타들의 단골 맛집이기도 하다. 삼원가든의 모태는 76년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 문 열었던 대중식당 ‘삼원정’이다. 창립 40주년을 맞아 업주 박수남(72·호적상 생년은 1947년) 회장을 만났다. 박 회장은 둘째 딸 박지은(전 프로골퍼·현 KLPGA 해설위원)을 바라지하느라 수년 간 미국에 장기 체류한 데다 최근엔 건강이 좋지 않아 대외활동을 삼가왔다. 지난달 5일 삼원가든에서 만났을 때 그는 “언론 인터뷰는 근 20년 만”이라고 입을 뗐다.



70년대 말부터 발렛 파킹하고 유니폼도 착용
‘사치풍조 조장’ 뉴스 나온 후 오히려 대박
40년간 정직·청결 강조 “신라호텔서 견학 와”


이명박·전지현 등 단골…패리스 힐튼도 방문
딸 박지은, 가게 옆에서 엄마 따라 골프 시작
‘숯불 알바’ 했던 막내, 이젠 외식기업 이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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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본관 모습.



-먼저 묻자. 40년을 끌고 온 비결이 뭔가.

“정직·성실·맛이다. 고객에 정성을 다하고 식당을 늘 청결히 유지하며 최상의 식자재를 쓰는 것이다. 이 세 가지를 어기면 누구든 그날로 파면시켰다. 내가 엄하다. 룰 어기는 걸 용서 안 한다. 우리 회사에선 술이나 고스톱(화투) 치다 걸리면 삼진아웃이다. 한번은 25년 일한 주방장이랑 전기공, 운전기사 3명이 푼돈 놓고 고스톱을 쳤다. 몇 번 경고한 뒤에 딱 걸려서 그 자리에서 셋 다 파면했다. 외식업은 사람 관리하는 장사라서 엄하게 하지 않으면 틀이 안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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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신축 당시 삼원가든 전경. [사진 삼원가든]


-처음 강남 개업 땐 말이 많았다.

“개업 몇 달 뒤엔가 ‘9시 뉴스’에 났다. 사치풍조 조장이라는 내용이었다. 고객들 고급 차를 비추고 대리석 테이블 상판을 수입산이라고 비난했는데, 그 테이블 상판은 내가 지방 채석장에 의뢰해서 직접 만든 거였다. 당시 대형 공원식 식당이 한창 유행이었다. 논현동의 늘봄·서라벌, 신사동의 한강, 서초동의 초성공원·신라정 같은 것들이었다. 다 삼원가든을 따서 정원식으로 꾸미고 상류층 고객을 타깃으로 했다. 뉴스가 난 뒤로 삼원가든은 오히려 ‘대박’이 나서 지방에서도 손님들이 일부러 찾아왔다.”

-왜 그렇게 인기를 끌었을까.

“그 전에 없던 거니까. 허허벌판에 현대·한양아파트만 있던 시절인데, 빽빽한 형태를 보니 꼭 새장 같더라. 새장에 살면 고향이 그리울 테니까 정원을 꾸미면 좋겠다 생각했다. 기와 올리고 폭포 만들고 물레방아 놓는 디자인도 내 아이디어다. 그땐 영어 상호명이 허가가 안 나서 사업자 등록은 ‘삼원정원’이라고 하고 간판만 ‘삼원가든’으로 달았다.”

-시작했을 때 성공할 거란 확신이 있었나.

“맨 처음(76년) 시흥에서 ‘삼원정’이라는 고깃집을 인수해 시작했을 땐 평범한 음식점이었다. 열심히 돈 모아서 79년 길동(당시엔 강남구, 현재 강동구)에 ‘삼원회관’을 열었는데, 그 시절에 벌써 주차장 발렛도 하고 직원들 유니폼도 입혔다. 기왕이면 부자동네에 가서 하고 싶었다. 제대로 하면 (돈) 있는 사람 1%가 전국에서 모여들 거라고 봤다. 외식업에는 대출이 안될 때라 주변에서 조금씩 빌리고 사채까지 당겨 썼다. 그러니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80년대 초 우리 1인당 GDP는 2000달러가 안됐고 짜장면이 300원, 500원 했다. 그때 갈비 한 대를 1800원에 팔았으니. 다른 식당보다도 배 정도 비쌌는데도 올 사람은 계속 찾아왔다.”

-맛도 남달랐나보다.

“맛은 수백 번 테스트해서 제일 반응 좋았던 것에 고정했다. 처음 주방에서 양념 비율을 개발할 때 금은방에서 쓰는 저울을 사다줬다. 그렇게 계량에 맞춰 균등한 맛을 유지하니까 일하던 사람이 빠져나가도 문제가 없더라. 입맛은 사람마다 다르다. 전라도 사람이 서울 오면 다 맛없다고 한다. 단 거 좋아하는 사람은 단맛 찾고 신 거 좋아하면 신맛 찾아 다닌다. 어떤 식당은 면 팔다 안 되면 밥도 팔고 뭐도 판다. 그러다 망하는 거다. 자기 음식을 고정해야 된다. 전통을 지킨 집은 냉면 하나로도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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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칼집’으로 유명한 삼원가든의 양념갈비. [사진 삼원가든]


-이른바 ‘다이아몬드 칼집’이란 걸 일찌감치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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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갈비란 게 지금과 달랐다. 그땐 시골에서 농사짓던 소가 늙으면 잡았다. 그래서 무지 질겼다. 그걸 연하게 하려고 고기 결을 연구했다. 종이든 과일이든 생선이든 고유의 결이 있지 않은가. 당시 육가공부 직원이 15명 있었는데 그 중에 칼질만 전담하는 사람을 두고 그 사람에게 가르쳤다. 이전까지는 가로로 일자 모양을 냈는데, 앞뒤면에 사선으로 칼집을 내니까 고기 씹기도 편해지고 양념도 잘 배어 맛이 좋아졌다.”

※ 박 회장은 이 ‘다이아몬드 칼집’을 최초 도입한 게 삼원가든이라고 주장하지만, 벽제갈비 등 다른 식당에서도 원조를 주장하는 등 이견이 있다.

-좋은 고기를 확보하는 것도 관건이었겠다.

“말도 마라. 도대체 먹을 걸 믿을 수 없던 시절이었다. 고춧가루에 톱밥을 넣어 팔지 않나, 커피가루에 담배꽁초를 섞어서 내놓지 않나. 소에 물을 먹여 근수를 속이는 것도 허다했다. 물 먹인 소고기는 양념을 안 빨아들여 음식이 형편없어진다. 그래서 전국의 정육점 괜찮은 곳을 직접 다 다녔다. 싣고 오는 것도 위생적으로 하려고 냉장탑차까지 뒀다. 대신에 정직하게 (납품)하는 사람은 한번도 잘라본 적 없다. 당시 우리 식당 유니폼 대주던 곳이 지금 기업 급으로 컸다. SG다인힐 부사장을 맡고 있는 아들한테도 늘 말한다. ‘정직하게 하는 사람은 절대 자르지 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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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원가든은 초창기부터 직원이 유니폼을 입었고 발렛 파킹 서비스를 했다. [사진 삼원가든]


-삼원가든 갈비 맛은 전혀 안 변한 건가.

“30년까지는 그대로 갔고, 10년 전쯤에 단맛을 좀 줄였다. 옛날엔 갈비 많이 안 먹었으니 설탕을 넉넉하게 넣어도 됐지만 요즘은 다들 단 것이 나쁘다고들 하니. 그런데 설탕이 나쁜 게 아니라 많이 먹어서 그런 거다. 설탕과 간장 비율이 중요하다. 이 친구(아들 박영식 부사장)가 오면서 ‘요즘 기준에 좀 단 것 같다’고 해서 설탕을 덜어냈다.”

※2녀1남 중 막내인 박영식(36) 부사장은 박 회장이 2007년 창립한 외식전문기업 SG다인힐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다. SG다인힐은 ‘블루밍가든’을 시작으로 ‘붓처스컷’ ‘투뿔등심’ 등 8개 브랜드(29개 업장)로 확장해 연 매출 420억원(2015년 기준) 규모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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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남(오른쪽) 회장과 그의 2녀1남 중 막내이자 SG다인힐을 이끄는 박영식 부사장.


-아들이 외식업 뛰어들었을 때 뭐라고 조언해줬었나.

“네가 혼을 다해야 하고, 네가 다 알아야 한다고 했다. 외식업은 직원 이직률이 높다. 주방장이 옮기면 스태프들, 거래하던 관계가 다 빠져나갈 수 있다. 아들은 대학 때 삼원가든에서 숯불 지피는 아르바이트부터 했다. 내가 선호하는 고기를 어깨 너머로 마스터했다. 외식업이 힘들어서 안 시키려고 했는데, 본인이 하겠다는데 어쩌나. 처음엔 식당 두 개를 말아먹더니, 그 뒤로는 이론으로 배운 것과 현장에서 사람 다루는 것을 접목시켜서 잘 한다.”

-딸(박지은)은 2004년 메이저대회 크래프트나비스코챔피언십을 우승하는 등 LPGA 통산 6회를 제패해 골프선수로서 최고 자리에 올랐다.

“처음부터 골프 시킬 생각은 아니었다. 삼원가든 옆에 골프장이 있었는데, 학교 끝나고 엄마 찾아 왔다가 엄마 옆에서 따라 배웠다. 운동 하면서도 공부 빼먹지 못하게 엄하게 시켰다. 미국 가서도 고등학교 운동선수 중에 우등상 받을 정도였다. LPGA 있을 때도 내가 늘 말했다. ‘정직해야 한다. 밝아야 한다. 서비스해야 한다.’ 사람 대하는 일의 본질은 외식업과 다를 게 없다.”

-한국 음식업 중앙회장(89~94년), 국민식생활개선 중앙협의회 회장(89~95년) 등 대외 활동을 많이 했다.

“지금은 외식업을 장관 부인이나 교수 출신도 하지만 그때만 해도 저소득층이 많았다. 단체가 지금 같지도 않았고 불화가 많았다. 내가 음식업중앙회장 연임하면서 입에 달았던 소리가 ‘밥 장사 소리 안 듣게 처신하라’였다. 중앙회 임원들이 회의 할 때 양복에 넥타이 안 하면 입장을 안 시켰다. 때와 장소에 따라 처신하자는 거였다. 나는 모든 기준을 사회지도층에 맞췄다. 그때는 식당에 청결·위생 관념도 없었다. 가족이 호구지책으로 하니까 손님 끌 정도의 맛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음식업중앙회장하면서 위생 관념 바꾸려고 조합원 수백 명씩 데려와 삼원가든 견학을 시켰다. 삼원가든은 어찌나 깔끔을 떨었는지 신라호텔에서 견학 왔을 정도다. 지금도 어디 식당 많은 상가에 한 시간만 있어봐라. 주방 직원들이 위생복 입은 채 화장실 와서 손도 안 씻고 가는 게 수두룩하다. ‘알면 못 먹는다’는 소리가 아직도 나오는 게 말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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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남북고위급(총리)회담 오찬에 앞서 대기중인 직원들. [사진 삼원가든]


-정계 입문 유혹은 없었나.

“우리 집에 3대째 오는 정치인·기업인 참 많다. 또 내가 중앙회장을 하면서 각 부처 자문위원을 많이 했으니 그런 제안이 수도 없었다. 내 사업과 국내 외식업 발전에만 몰두하고 있을 때라 다 고사했다. 그리고 정치인들 가까이서 보니까… 그 얘긴 그만하자.”

-요즘 한국 외식업은 어떻게 평가하나.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지만 아쉽게도 대도시, 특히 서울 위주다. 평창올림픽이 내후년인데 외국인들이 그 지역에 갔을 때 무난히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손에 꼽힐 정도다. 음식뿐 아니라 시설, 청결, 서비스 마인드 등이 골고루 발전돼야 한다. 제일 시급한 게 사업주들과 종사자들의 인식 전환이다. 외식업의 본질을 확실히 이해하고 진심을 다해 운영을 해야만 발전할 수 있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한다면.

“돈만 벌려고 이 업에 뛰어들면 100전 100패다. 외식업 본질은 양심·서비스·맛이다. 어느 하나 완벽하지 않으면 ‘반짝’할 순 있어도 절대 오래갈 수 없다. 그리고 오너가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외식업은 토탈 경영이다. 인사·구매·총무·영업·제조 등 모든 게 한 장소에서 이루어진다. 오너가 이런 모든 것을 습득하고 알아야만 제대로 운영할 수 있다. 끝으로 위기대처 능력이 중요하다. 언제든 사업이 기울 수 있다.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준비해 두고 위기가 닥쳤을 시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요즘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으로 많은 식당들이 힘들어한다는데.

“부정부패 방지법이란 차원에서는 너무 공감하고 찬성한다. 나라가 똑바로 서야 모든 게 맑아지고 구성원들도 발전을 할 수 있다. 다만 너무 빡빡하게 굴러가는 측면이 있다. 나만 해도 친한 사람들한테조차 매장에서 (인당 3만원 이상) 밥도 못 사게 되니까. 다행히 삼원가든은 관광객 이나 단체고객을 대상으로 선제적 마케팅을 해서 큰 영향이 없다. 하지만 SG다인힐은 광화문 같은 시내 매장의 경우 작게는 10%부터 많게는 40%까지 매출 감소가 있다. 어쩔 수 없는 진통이라고 생각한다. 한번은 겪어야 할 일이니까.”

박 회장은 “먹는 문화부터 깨끗하고 투명해지면 사회도 더 발전할 것”이라며 이렇게 말을 맺었다.

“갈비탕 한그릇도 우리 것만 고집하는 단골이 많아요. 음식이란 게 정직해서 한번은 속여도 두번은 못 속이거든요. 40년은 짧아요. 아들과 함께 100년 가는 식당을 만들고 싶습니다.”



글=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사진=김현동 기자 kim.hd@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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