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정치가 최고 권력에 의해 사물화, 공적 기율 사라져


 

 
중앙SUNDAY 지령 503호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중요한 행사의 하나가 후보자들 간의 TV 토론이다.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미국의 국민을 상대로 하는 것이지만, 미국 밖에서도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것은 미국 정치의 어떤 면을 살펴 볼수 있는 기회도 되고 자기 나라를 포함하여 일반적으로 정치 공간에 대한 여러 생각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기사 이미지

일러스트=강일구


이번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토론에 대한 논평의 하나는 이번 토론이 근래 있었던 그러한 토의 가운데 ‘최악의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토론이 공공 정책의 대결이 아니라 추문과 인신 공격으로 추락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러 관점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지 않을 수 없는 정치 공간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개인사의 추문과 인신 공격이 정치 투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드문일이 아니다. 그것이 그렇게 크게 부상하게 된다는 것은 미국 정치에 내재하는 문제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한국을 포함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는 오늘의 정치 상황의 문제점들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정책대결 아니라 인신공격으로 추락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중요한 고비가 되는 이 TV 토론회는 ‘대통령후보토론위원회’에 의해 운영된다. 이것을 대부분의 주요 TV 매체들이 방영한다. 토론위원회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공동으로 조직한 단체고 운영비는 기부금으로 충당된다. 양대 정당에 의해 조직되었다고 하더라도 위원회는 최대의 공정성과 개방성을 유지한다는 것을 표방한다. 그렇기는 하나 토론에 초청되는 것은 여론 조사에서 일정한 비율 이상(대체로 15% 이상) 얻은 후보자들이고, 이번에 초청된 후보는 공화·민주 양당의 후보자들에 한정됐다. 이런 조건이 다른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한다는 항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합법성·공정성·독점금지법 등에 위반된다는 소송도 있었으나, 승소하지는 못했다. 여론 조사에서, 가령 녹색당은 2% 정도의 지지율을 기록했고 토론회에서 제외됐다. 여성운동 그룹도 그 토론 독점에 대해 비판을 계속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위원회는 처음 초청 대상으로 공화·민주 양당 외에, 녹색당·공동체주의당·헌법당·개혁당·사회주의당·자유당 등을 명단에 올렸다. 이들은 대부분 실격했지만, 토론 후보자의 폭을 넓히는 것은 유권자로 하여금 다양한 정치적 선택의 가능성을 의식할 수 있게 하고 그것을 현재나 미래의 정치 과제가 되게 하는 데에 중요한 계기가 된다고 할 수는 있다.
독점과 개방의 문제가 어찌됐던, 공화당과 민주당의 후보의 토론이 현실적 의미를 갖는 것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이번 토론과 관련해, 그것이 참으로 미국이 가야 할-미국의 국제적인 세력으로 볼 때, 앞으로의 세계가 가야 할- 길을 밝혀주는 것이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어 놓을 사람은 별로 없는 것으로 보인다.

선거전 중 심각한 정책 문제들의 토의를 기대할 수 없다는 일반적인 견해도 있다. 선거에 참여하는 국민들도, 정책의 사실성과 타당성을 검토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여러 논의에서 대중의 마음에 남는 것은 정책보다는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그것도 대체로는 부정적인 감정의 열정을 불러 일으키는-구호적인 말들이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정치를 담당할 인물의 품격이다. 물론 그것도 심각한 의미에서의 사람됨이 아니라 무대에 연출되는 인상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인물됨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특히 그 무대가 더 넓은 의미에서의 공적 공간이 될 때에 그렇다. 공적 공간은 그 자체로 사람의 인격을 높은 차원으로 끌어 올리는 기능을 갖는다. 지도자는 공적인 수사(修辭) 속에서 산다. 그것은 그의 삶 자체를 형성한다. 지도자의 카리스마란 이렇게 형성되는 높은 인격의 힘을 포함한다. 물론 이것은 그런 분위기가 공적 공간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트럼프-힐러리 토론에서, 그리고 그와 관련해 드러난 사실들은, 이런 면에서 긍정적인 사람됨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트럼프와 관계해서 화제가 된 것은 여성과 성(性)에 대한 그의 태도이다. 성 유희는 오래 전부터 그의 삶의 취미가 됐던 것으로 보인다. 10여년 전에 녹음 촬영된 비디오에 기록된 조잡(粗雜)한 성에 대한 발언과 여성 희생자들의 고백이 그것을 두드러져 보이게 했다. 그 언어가 조잡한 것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언어 사용에서의 자기 절제는 상호 교류의 공간을 바르게 유지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러한 공간을 존중한다는 증표가 된다. 물론 더 직접적으로는 그것은 인격에 대한 증언이 된다.

성 문제는 토론에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되었다기보다는 토론에 따라 부각된 부대 현상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성 문제를 포함해 그의 과거사의 여러 일들이다. 크게 문제가 된 것은 사사로운 생활보다도 납세 기록을 제출하기를 거부한 일과 같은 것이다. 드러난 사실의 하나는 오랫동안 그가 거둬 들인 막대한 수익에도 불구하고 세금을 납부한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법적으로 모든 면책 수단을 강구하면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일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최고 정치지도로서의 자격에, 그리고 그의 인간됨에 손상을 가져오는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자기 절제 언어 사용, 인격에 대한 증언
클린턴 후보의 경우,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문란한 성적 행각이 트럼프에 의하여 거론됐다. 그러나, 그것은 힐러리 클린턴 후보 자신과는 직접적으로는 연결되지 않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의 공직자로서의 행적이다. 오바마 정부의 국무장관으로서의 업적에도 문제가 있다고 하겠지만, 크게 이야기된 것은 인터넷을 공공 영역과 사적 영역을 가리지 않고 혼동해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국가 기밀을 보호하는 규칙을 지키지 않는 행위다.

그리고 대체로 컴퓨터에 보관된 기록들의 공개를 거부한 것도 잘못한 일로 이야기됐다. 일부 알려진 내용이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기업인이나 은행가들을 상대로 힐러리 클린턴이 행했던 연설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 연설에서 국민 일반보다는 이들 상류 부유층을 상대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는 것을 비친 것이다. 그는 중산 계급 출신이었지만, 할아버지는 직조공이었다. 연설에서 그는 자신은 중산계급에 속했으나 이제는 그 계층을 넘어 갔고, 거기에서 이탈한 느낌을 갖는다고 말했다. 이것은, 한 평자에 따르면, 고관대작을 지낸 사실보다는 클린턴 대통령 퇴임 후 부부가 클린턴재단을 만들어 막대한 재산을 모으게 된 사실에 관계될 것이라고 한다.

개인 사정과 정치 그리고 정치 목표의 관계는 착잡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 신분이나 재산 상태로 따진다면, 두 후보는 다 같이 상류 부유층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말해 공화당은 보수주의자와 부유층의 당이고 민주당은 일반 시민의 당이다. 그런데 어떤 분석으로는, 트럼프는 하향하고 있는 백인 중산층과 노동 계층을 대변하고, 클런턴은 상위 중산층 이상을 대변한다. 또는 다른 각도에서 대조 비교하는 어떤 자료를 보면, 대학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과 그 이하의 사람들의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트럼프 대 클린턴의 지지도는, 전자의 경우는 33% 대 58%, 후자의 경우는 48% 대 41%라고 한다.

거칠다고 할 수밖에 없는 여성편력, 또 그에 대한 발언을 보면 트럼프는 반여권주의자(反女權主義者)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다른 정책에 있어서도 그는 개방적이기보다는 남성적 집단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대표하는 것은 남성과 백인 중산계급과 백인이다. 무역이나 국방정책에서도 그는 자유롭고 개방된 연대(連帶)를 옹호하지 않는다. 적어도 일단은 보편주의적 세계관과 국수주의적 편협성의 대립을 여기에서 볼 수도 있다. 오늘의 국가주의 시대에 국가 이익을 정책의 핵심에 놓지 않는 정치도자가 있을 수는 없다. 차이는 사고방식이나 문제 접근의 방식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가 지적 능력의 준비 상태에 관계되어 있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문제는 지적 능력 또는 이성적 보편성에 못지않게 도덕적 신념이다. 말할 것도 없이 사람들은 지도자가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이기를 바란다. 고매하다는 것은 둔세(遁世)하는 은자(隱者)의 고매함이 아니라 세상 속에 움직이면서도, 공사(公事)를 위해 모든 사사로운 것을 버릴 수 있는 도덕적 품성을 말한다. 위에서 말했지만, 공적 공간은 사람을 저절로 공사에 헌신하는 인간이 되게 하는 면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적 공간 그리고 공적 인간의 이상이 사라진 것이 오늘의 세계라고 할 수밖에 없다.
 
나라 정체성에 대한 깊은 우려 자아내
최근 프랑스에서는 올랑드 대통령과의 인터뷰가 출판돼 논란의 대상이 된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보도에 의하면, 그는 인터뷰 내용이 출판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될 만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사회당 대통령인 그가 가난한 사람들을 ‘치아가 없는 사람들’이었다고 하여 문제가 된 일이 있지만, 책에 실린 인터뷰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가 될 말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책의 제목은 『대통령은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이다. 제목의 뜻은 대통령이 할 말이 있고 하지 않을 말이 있다는 것인데, 그 점에 대한 식별은 탁마(琢磨)된 인격에서 나온다 할 것이다. 올랑드 대통령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는 그가 오토바이를 타고 대통령 관저를 떠나 새로 생긴 애인을 찾아간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의 평민적인 성격을 말한다고 할 수도 있으나, 대통령으로서의 위엄을 손상하는 행동임은 분명하다. 유럽의 정치 지도자들의 자유로운 성 행각은 흔히 화제가 된다. 성의 자유가 억압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성을 포함하여 사적인 영역에서의 기율과 자제(自制)는 공적 공간에서의 기율과 자제 그리고 공적 소명(召命)에 대한 헌신의 증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자유로운 성이나 발언의 경박함, 이런 것들은 엄숙성이 사라진 정치 공간의 증상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의 사정은 어떤가. 소위 막말이라는 것이 정치의 관용어가 되었다고 할 수는 있지만, 성 유희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우리의 정치 공간을 손상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권력과 경제의 부패다. 이런 부패에 비해 성이나 경박한 언어는 사사로움에 침범된 정치 공간의 작은 증상에 불과하다고 할 수도 있다.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정치와 사회 경제 문제가 하나로 묶일 때, 정치 공간의 독자성이 사라지게 된다고 말한 일이 있다. 이것이 반드시 맞는 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경제 문제, 그것이 사사로운 이해관계에 연결될 때 정치 공간이 그 독자성을 잃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권력형 부패에 대한 보도는 한이 없다. 그런데 이 며칠 동안 보도되고 있는 기이한 사건들은 정치가 최고 권력에 의해 사물화(私物化)되고 정치 공간에서 공적 기율과 도덕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상태에서도 투명한 공기를 숨쉬는 공적 공간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공공 공간으로서의 정치 공간은 완전히 파열했다는 인상을 준다. 많은 사람들이 나라의 정체성에 대하여 깊은 우려를 버릴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미국문명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 첫 저서 『궁핍한 시대의 시인』 이후 『지상의 척도』 『심미적 이성의 탐구』 『자유와 인간적인 삶』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등을 펴냈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