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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 침공 드라마, 실제 뉴스로 착각한 이유는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연기가 난다는 라디오 방송을 듣고 거리로 달려가다 넘어져서 팔이 부러진 여성의 사진, 방송 직후 발생한 사건은 의도하지도 예상하지도 않았다고 해명하는 오슨 웰즈의 사진, 화성에서 온 기계를 연상시키는 사진 등을 게재한 1938년 10월 31일자 데일리뉴스.


지금으로부터 꼭 78년 전인 1938년 10월 30일,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한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 교통 혼잡과 전화 혼선이 발생했다. 외계인이 지구를 공격하고 있다는 라디오 방송을 직·간접적으로 접한 수천 명의 미국인들이 자동차를 몰고 나오거나 경찰서로 전화했기 때문이다. 그 라디오 방송은 CBS가 할로윈데이 특집으로 허버트 조지 웰스의 1898년 소설 ‘세계들의 전쟁’을 각색한 드라마였다. 1시간짜리 드라마 가운데 처음 3분의 2는 임시속보뉴스 형식이었다. 중간 광고 없이 방송되다 보니, 도입 부분을 놓치고 도중에 청취한 청취자들 다수는 드라마 속의 외계인 침공을 실제 상황으로 받아들였다.


 

1 1938년 10월 31일 CBS 스튜디오에서 내레이션을 하는 오손 웰즈.


당시 미국 사회는 나치 독일의 도발적 행동 때문에 세계대전의 발발을 우려하던 시절이었다. 따라서 누가 침공했다는 말을 듣게 되면 사실로 믿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TV 방송이 아직 보편화되지 않은 시절이라 라디오 청취자는 방송 내용을 각자의 상상대로 받아들이기가 쉬웠다. ‘세계들의 전쟁’의 감독, 각본, 내레이션을 모두 맡았던 조지 오손 웰즈는 관심을 끌기 위해 실제 상황인 것처럼 편집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방송 다음날 웰즈는 그렇게 의도하지도 않았고 또 그런 소동을 예상하지도 못했다고 해명했다. 의도가 있었든 없었든 23세의 웰즈는 이 사건으로 유명 드라마 제작자라는 명성을 얻었고 후속 작품을 연이어 흥행시켰다. ‘세계들의 전쟁’의 청취자가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혼란이 발생한 것은 수수께끼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청취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픽션(fiction)이 팩트(fact)로 둔갑해서 전파되는 것이 가능했다.


 

2 ‘세계들의 전쟁’을 소개한 ‘페이머스 판타스틱 미스터리즈’ 1951년 7월호 표지.


[픽션 가미 안된 팩트 전달 잘 안 돼]팩트와 픽션은 서로 섞여 있을 때 효과적이다. 먼저, 픽션이 가미되지 않은 팩트는 잘 전달되지 않는다. 사실과 논리에만 의존하여 설명하다 보면 무미건조해지기 십상이다. 대중은 모든 문장이 엄격하고 정확히 서술된 기계적인 글이나 말보다, 인간 감성에 충실한 자연스러운 글이나 말을 더 잘 읽고 더 잘 듣는다. 역사교과서의 한 페이지보다 사극의 한 장면을 더 잘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야생동물 관찰 등 팩트에 근거해야 하는 다큐멘터리가 감흥을 주기 위해 드라마적 상황을 인위적으로 설정하여 종종 논란이 되기도 한다.


팩트가 아닌 게 너무 분명한 픽션도 파급력이 낮다. 내용과 표현이 새로운 순수 픽션의 작품보다 역사적 사건이나 현재 상황을 소재로 하는 픽션 작품이 사람들을 더 움직인다. 또 사람들은 팩트에 철저하게 근거한 애니메이션보다, 인간 배우가 출연한 픽션 드라마를 훨씬 더 현실적인 내용으로 받아들인다. TV 리얼리티 프로그램도 팩트처럼 구성되기 때문에 시청률이 높다. 그렇지만 그런 프로그램은 출연자들에게 캐릭터 특히 악역을 인위적으로 배정하여 진행한다는 점에서 대부분 픽션이다. 이처럼 픽션은 팩트처럼 서술하고, 팩트는 픽션처럼 설명해야 호응을 얻는다.


 

3 허버트 웰스의 소설 ‘세계들의 전쟁’에서 화성의 전투기계를 상대로 싸우는 장면을 묘사한 엔히크 알빔 코레아의 1906년 삽화.


팩트와 픽션을 구분해서 기억할 거라는 기대와 달리, 실제 사람들은 잘 구분하지 않고 같은 곳에 저장해 뒷날 구분하지 못한다는 연구도 있다. 소설이나 영화가 픽션뿐 아니라 약간의 팩트도 전달하기 때문에 픽션은 팩트와 함께 기억된다. 픽션물의 시작과 끝에서 픽션임을 강조했다 하더라도 픽션을 기억에서 끄집어 낼 때에는 팩트와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오히려 픽션이 팩트보다 더 사실로 받아들여질 때도 있다. 팩트는 검증하면서 받아들이는 반면에, 픽션에 대해선 애초부터 검증 장치를 해제하고 접한다. 그래서 픽션에 몰입한 관객이나 독자는 픽션 내용의 모순과 허위를 아예 보지 못한다. 따라서 팩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픽션에 의도가 가미되면 그 파급력은 클 수밖에 없다.


진정성과 진실이 늘 같은 것은 아니다.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픽션도 있고, 진정성을 느낄 수 없는 팩트도 있다. 구슬을 꿰어야 보배이듯이, 팩트도 잘 꿰어야 진정성을 전달할 수 있다. 팩트를 꿰는 대표적인 방식은 스토리다. 팩트를 일종의 스토리로 엮은 것이 히스토리(역사)이다. 어떤 면에서 남성 중심의 히스토리(his story)나 정사보다 여성 중심의 허스토리(her story)나 야사가 더 공감을 받는 것은 구성이 더 스토리적이기 때문이다. 픽션 역시 팩트보다 훨씬 더 스토리로 구성되기 때문에 강하게 공감되어 전달되는 것이다.


 

검은 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신제품을 설명하는 스티브 잡스.


‘이야기하는 인간’으로 번역할 수 있는 ‘호모 나랜스’는 스토리텔링이 인간의 진화된 본성임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스토리는 상품 마케팅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두 개의 사과(애플)를 그 예로 들 수 있는데, 애플사와 합격사과이다. 2000년대 초 애플사의 스티브 잡스는 청바지에 검은 셔츠 차림으로 신제품 출시를 발표했는데,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행한 스토리텔링 마케팅으로 기억되고 있다. 또 1991년 일본 아오모리현에서 태풍으로 수많은 사과가 떨어지자, 떨어지지 않은 나머지 사과에 ‘합격사과’라는 이름의 스토리를 입혔고 소비자들은 비싼 가격임에도 크게 호응했다. 스토리라고 해서 반드시 말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내용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스토리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면 구체적인 인물과 구체적인 상황으로 구성되어야 하고 기승전결과 같은 전개가 있어야 한다. 관객은 알지만 등장인물 일부가 모르는 상황의 설정은 흥미를 끄는 요소이다. 등장인물과 관객 모두가 모르면 서프라이즈가 되지만, 관객은 알기 때문에 서스펜스가 되어 몰입도를 높인다. 스토리 앞부분의 내용을 알기 때문에 뒷부분의 내용이 더 궁금한 것이다. 재미있는 영화를 중간부터 보면 그 재미가 반감되기도 한다. 세상의 팩트는 기승전결과 같은 스토리식으로 전개되지 않기 때문에 재미가 없을 때도 많다. 시간적 발생순서와 관계없이 스토리식으로 전개하면 감흥을 더 준다. 왕에게 죽임을 당할 여인이 매일 밤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살아남았다는 천일야화도 스토리라서 왕은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고 또 픽션이라서 1001일 동안의 이야기 거리가 가능했다.


스토리를 말하는 자와 듣는 자는 서로 유사한 뇌파를 갖는다는 연구가 있다. 또 직접 경험한 작은 트라우마보다 픽션에서 간접 경험한 큰 트라우마를 더 심각하게 기억한다는 연구도 있다. 남이 하는 행동을 보기만 해도 직접 행할 때와 동일하게 뇌가 반응한다는 관찰에서 거울 뉴런이 존재한다고 주장된 적도 있다.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과 같은 장비가 개발된 후에는 소설을 읽는 독자나 영화를 보는 관객의 뇌 반응이 그 소설·영화 속 주인공의 상황에서 관찰되는 뇌 반응과 동일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정조 14년(1790년) 임경업 장군 이야기에 몰입한 관객이 그 전기수(이야기꾼)를 살해한 사건도 그런 감정이입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런 공감은 대체로 옥시토신 호르몬의 분비를 동반한다.


 


[스토리 화자·청취자 뇌파 서로 유사]픽션을 즐기는 사람일수록 사회성 혹은 공감능력 점수가 높다는 주장도 있다. 그래서 픽션을 사회적 시뮬레이터로 부르기도 한다. 스토리로 공감이 증대되면 집단 정체성 또한 증대되는 것이다. 픽션 중에서도 역설과 반전의 기법을 활용하는 희극보다, 비극이 더 큰 공감을 가져다준다.


일찍이 아돌프 히틀러와 요제프 괴벨스는 픽션의 사회적 파급을 인지하고 실천했다. 픽션을 중시하면서도 경계한 나치가 금서로 지정하여 불태운 분서(焚書) 목록에는 픽션 도서가 많았다. 그 분서 가운데 하나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희곡 ‘알만조르’에 등장하는 “책을 태운 곳에서는 결국 인간도 태울 것이다”는 대사 그대로, 나치는 사람들을 가스로 죽이는 갱유(坑儒)와 같은 픽션적 행동을 실천하여 결국 팩트로 만들었다.


이처럼 픽션은 사회에 부정적 효과를 내기도 한다. 나치와 같은 전체주의 사회뿐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발생하는 음모론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음모론자에게 우연은 없다. 모든 게 시나리오에 의해 의도적으로 이뤄진다고 본다. 각각의 행위와 전환점이 필연적이었음을 보여주지 않아도 일련의 스토리로 구성되면 공감을 얻을 수도 있다. 대체로 주인공이 다른 등장인물과 적대적이거나 경쟁적인 관계를 갖는 스토리가 인기를 얻듯이, 악당을 설정해서 마녀사냥으로 전개되는 스토리가 훨씬 잘 전달된다. 팩트를 도외시한 채 픽션에만 기초한 스토리는 사회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는 것이다.


팩트와 픽션을 결합한 신조어 팩션(faction)이 등장한 지 이미 오래이다. 이 용어는 ‘실화픽션(기법)’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파벌싸움’이라는 뜻도 있음은 우연이 아니다. 실화픽션과 파벌싸움은 서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뿐 아니라 오늘날 사안에 대해서도 밝혀진 내용보다 상상만 할 수 있는 내용이 훨씬 많은데, 어떤 부분을 드러내느냐에 따라 독자나 시청자에게 전혀 다른 뉘앙스를 전달한다. 자신의 파벌 입맛에 맞는 내용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실화픽션은 파벌싸움에서 사용하는 주요 수단 가운데 하나이다. 상대 진영 주장에 대해 완벽한 일관성과 철저한 증거를 요구하면서 막상 자신은 아무런 근거 없는 내용을 주장한다면 이는 갈등 해결에 도움 되지 않는다.


지금 한국 사회는 픽션과 같은 팩트로 들끓고 있다. 막장 드라마와 같은 사건이 실제로 발생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음모론이 흥행한다. 음모론의 빈도와 강도는 외국에 비해 결코 작지 않다. 생산적 공감을 가져다줄 스토리가 아쉬운 시절이다.


 


김재한한림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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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