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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하면 성공하는 나라, 그 믿음이 깨졌다

최순실씨 국정 농단 파문 이후 첫 주말인 29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촛불집회가 열렸다.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까지 진출한 시위대가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10대부터 60대까지, 29일 저녁 청계광장에서 촛불을 든 시민에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다. 모여든 이들은 한목소리로 “박근혜 대통령 비켜”라고 외쳤다.


이날 집회는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시민 촛불’을 내건 민중총궐기투쟁본부가 앞장섰다. 그러나 ‘투쟁본부’의 지휘 아래 청계광장에 모인 이들은 3000명 안팎에 불과했고, 2만여 명의 시민 다수는 자유 의지로 시위 현장을 찾았다. 이날 집회엔 특히 생전 처음 촛불을 들었다는 이들이 많았다. 이들이 광장을 찾은 이유는 분노와 상실감 때문이었다. 박 대통령의 측근인 최순실(60)씨의 전횡은 50~60대를 분노케 했다.


주부 이모(57)씨는 “60년 가까이 살면서 이런 데는 처음 나왔다”며 “내 인생 자체가 속은 듯한 느낌에다 우리 애들이 커가야 하는 나라를 바꾸기 위해 머릿수라도 채우려고 했다”고 말했다. 김용진(65)씨도 “기존 미디어가 아닌, 인터넷을 통해 이날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거리로 나왔다”며 “나이가 들어 조금 힘들지만 촛불 하나라도 보태야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씨의 딸 정유라(20)씨를 둘러싼 금수저 논란은 10대와 20, 30대를 광장에 모이게 했다. 친구 2명과 청계광장을 찾은 정윤석(18)군은 “나이 문제가 아니고, 진보나 보수의 문제도 아니다”며 “교과서에서 배운 민주주의는 지금의 정치와 하나도 닮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기도 파주에 사는 주부 이지량(35)씨는 다섯 살 아이를 품에 안고 청계광장을 찾았다. 이씨는 “광우병 때도 촛불집회에 나오지 않았는데, 아침드라마보다 황당한 모습에 아연실색했다”며 “내 아이가 살아갈, 그릇된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시민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나섰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시위가 ‘민주화’를 한목소리로 외쳤던 1987년 6월 항쟁과 닮았다고 분석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1987년 개헌 요구 시위의 폭발성이 높았던 이유는 신분과 배경에 상관없이 ‘민주화’라는 대중의 공통적인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번 촛불집회 역시 정치에 대한 불신, 금수저 논란 등 대중에 퍼진 불만이 함께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도 “이번 사건은 모두가 농락당했다는 측면에서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다”며 “최순실 검거와 처벌, 국정 농단 심판 등 일치한 목소리가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조진형·김나한 기자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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