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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권형 대통령제는 총리 주도의 내각제나 마찬가지

27일 서울 여의도에서 ‘국가운영체제와 개헌’을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선 최근 최순실씨 국정개입 파문을 개헌 추진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줄을 이었다. 행사에 참석한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왼쪽)와 김덕룡 전 의원이 악수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박종근 기자


지난 24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꺼낸 개헌론은 그날 저녁 JTBC의 최순실씨 특종 보도가 터져나오면서 한나절 만에 사그라들고 말았다. 그 이후 ‘최순실 사태’가 다른 모든 이슈를 압도하면서 정치권에서 개헌 얘기를 다시 꺼내긴 쉽지 않은 분위기가 됐다.


그러나 여야 개헌론자들은 오히려 지금이 개헌 논의의 적기라고 주장한다. 지난 27일 ‘국가운영체제와 개헌’ 토론회에서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는 “최근 발생한 엄청난 사태는 과연 제왕적 대통령 책임제가 아니면 가능했겠느냐”며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으로 나라가 어떤 상황으로 빠질 수 있다는 게 극명히 드러났다”고 말했다. 같은 날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도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사건은 개헌의 걸림돌이 아니라 기폭제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다음날은 전국의 지방분권 활동가와 시민 등 500명이 수원에서 모여 “중앙·지방이 공평하게 권한을 나누는 분권 개헌을 하자”는 내용의 ‘수원선언문’을 발표했다. 여의도에선 개헌론이 잠시 뒤로 물러났을 뿐 머잖아 정치의 전면에 재등장할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개헌론의 쟁점은 권력구조 개편 방안이다. 현 5년 대통령 단임제의 대안으로 4년 중임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분권형 대통령제) 등이 거론된다. 4년 중임제는 현행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 임기를 5년에서 1년 줄이는 대신 출마 기회를 한 번 더 주는 제도다. 5년 단임제에선 임기 초 1년은 적응하느라, 임기 말 1년은 레임덕에 시달리느라 국정 운영이 어려워 사실상 3년 임기에 불과하다는 단점을 보완하는 측면이 있다. 미국이 채택하고 있는 4년 중임제는 첫 임기 4년을 마친 후 중간평가를 통해 정책의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재선에 성공하면 8년 동안 권력이 집중되는데 잘못 뽑았을 경우에 장기 집권을 허용하는 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일본과 영국이 채택하고 있는 의원내각제는 총리와 장관 등 내각을 국회에서 뽑는 방식이다. 의회가 총리를 뽑고 총리가 내각의 수장으로 활동한다. 총리는 통상 선거에서 국회 의석 다수를 차지한 정당 대표가 선출된다. 내각제의 요체는 의회와 정부 사이의 권력 균형이다. 의회는 내각의 불신임권을 갖고 있고, 내각은 의회해산권을 갖고 있어 서로를 견제한다. 의석 과반을 넘는 다수당이 없을 경우 정당 간에 연립정권 수립도 가능하지만 이 때문에 소수당이 총리를 쉽게 흔드는 단점도 있다. 정당정치의 발달과 성숙한 정치문화가 필수적이어서 우리 현실에선 내각제가 시기상조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프랑스·오스트리아 등이 도입한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절충형이다. 대통령이 외교·통일·국방 등 외치(外治)를 맡고, 총리가 경제·복지·교육 등 내치(內治)를 맡는 방식이다. 하지만 구체적 방식은 나라마다 크게 다르다. 프랑스 대통령은 법률안 거부권, 의회 해산권, 국민투표 부의권, 비상대권 등을 갖고 있어 권한이 막강하다. 이 때문에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는 사실상 대통령제의 변형으로도 볼 수 있다. 반면 오스트리아에선 의회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커 대통령은 사실상 상징적인 존재에 가깝다. 그래서 최근 국내 정치권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오스트리아식 분권형 대통령제는 내각제나 마찬가지란 평가가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국민들에게 내각제는 ‘의원들끼리 다 해먹는 것’이란 부정적 이미지가 있으니까, 이를 비켜가기 위해 의원들이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조어를 만들어 내각제를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과 총리가 권한을 나눠 갖는 것이 갈등을 부추긴다는 시각도 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권력은 어정쩡하게 나눠 있을 때가 제일 위험하다”며 “개성공단 문제만 해도 총리는 경제 문제(내치)로, 대통령은 대북 문제(외치)로 보고 입장이 다르다면 갈등이 더 심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개헌 방향을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두 갈래로 나눈다면 대선주자 가운데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이 대통령제(4년 중임제)를 선호하는 방향이다. 반면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내각제(분권형 대통령제)를 지지하는 대표적 인사다. 안희정 충남지사, 김부겸 민주당 의원 등은 ‘지방분권형 개헌’이란 슬로건을 들고 나오는데 아직 구체적인 개념은 애매하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개헌보단 선거구제 개편이 먼저”라는 입장이다. 임지봉 서강대 교수(헌법학)는 “정치인들은 본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부 형태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며 “국민에게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 치열한 토론을 거친 후 국민이 원하는 정부 형태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정치권에선 개헌론이 내년 대선 정국에서 정계개편의 촉매제가 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내각제를 주장하는 김종인 전 대표는 “여야를 떠나 분권형 개헌을 위해 대통령 임기를 단축하겠다는 후보들이 모이자”며 ‘비(非)패권지대 개헌연대’ 카드를 던져놓은 상태다.


새누리당에서도 홍문종·김태흠 의원 등 친박계를 중심으로 분권형 개헌 주장이 나오는 것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정치권에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대통령으로 밀고 친박 인사가 총리를 맡겠다는 계산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외에도 최근 정계에 복귀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개헌은 제7공화국을 열기 위한 필요조건 중 하나”라며 개헌 논의에 적극 뛰어들 조짐이다. 또 정세균 국회의장, 정진석 원내대표, 원혜영 민주당 의원 등 여야의 중진들이 내각제 혹은 분권형 개헌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아직은 시나리오 수준이긴 하지만 벌써부터 여권에선 비박계, 야권에선 비문재인계 등이 탈당해 개헌을 명분으로 ‘제3지대’를 창출하는 그림이 거론되고 있다. 일각에선 최근 최순실 사태로 국정 동력을 상실한 박근혜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개헌에 올인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에 대해 임 교수는 “개헌론이 권력게임으로 전락하면 성공할 수 없다”며 “개헌은 국민과 시민사회 주도로 논의가 이뤄져야 하며 정치권은 어떻게 하면 ‘일하는 정부, 책임지는 국회’를 만들 수 있을지 초당적으로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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