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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생산 시대 갔다 설계도 파는 세상 맞춰 노동·교육 개혁해야”

뉴시스·김춘식 기자


서비스를 시작해서 전세계 5000만 명의 이용자를 확보하기까지 인터넷은 3년이 걸렸고, 페이스북도 1년을 기다려야 했다. 최근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던 증강현실(AR) 모바일게임 ‘포켓몬고’는 얼마나 걸렸을까. 단 19일이다. 이처럼 소비자의 기술 채택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인공지능, 로봇기술, 생명과학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이 세계 경제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IGE) 이사장은 “올들어 급물살을 탄 4차 산업혁명은 한국에 위기인 동시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달 28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4차 산업혁명과 한국경제의 미래’ 국제회의에는 국내외 과학기술 분야 ?석학 12명이 참가해 4차 산업혁명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 전략을 모색했다.?


 


[4차 산업혁명 이후 산업구조 재편되나]


참석자들은 먼저 제조업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낮출 것을 주문했다. 기존 제조업이 서비스업처럼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완제품을 만드는 기업은 점차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 경제 싱크탱크 중 하나인 키엘세계경제연구소의 데니스 괴를리흐 박사는 “표준화된 제조가 (제품의) 최종소유자 맞춤형 제조로 변모해가면서 완제품보다는 설계도나 아이디어를 파는 기업들이 많아질 것”이라며 “한국도 선제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서비스업 경시 풍토를 바꿀 필요성을 언급했다. 존 자이스먼 미국 UC버클리(정치학) 교수는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융합으로 결실을 맺고 있는 사례로 프랑스의 타이어 업체 미쉐린과 핀란드의 항만 장비 제조사 카고텍을 꼽았다. 그는 “미쉐린은 타이어를 유지·관리해주는 서비스를 대행하고, 카고텍은 크레인을 더 수월하게 관리하게 하는 정보기술(IT) 장비를 탑재한 크레인을 만들어 팔고 있다”고 전했다. 정보기술(IT) 분야를 연구하는 구시다 겐지 미국 스탠포드대 연구원은 “머지않은 미래에 산업의 완전한 자동화가 이뤄질 것”이라며 테슬라 등이 개발 중인 자율주행자동차를 예로 들었다.


괴를리흐 박사는 이 같은 급격한 기술 변화로 값싼 임금을 찾아 해외로 나갔던 기업이 본국으로 돌아오는 리쇼어링(reshoring)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기계·부품 등을 프린팅하듯 만들어내는 3차원(3D) 프린팅 기술이 리쇼어링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다”며 “유럽 항공기 제조업체 에어버스만 해도 이 기술을 적용해 일부 부품을 공급하고 있어 점차 해외 부품공장 수요는 줄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인공지능(AI) 로봇에 일자리 뺏기나]


“현재 미국 IT 산업 메카인 실리콘밸리는 1990년대 자동차 산업을 이끈 디트로이트 인력의 10%로 움직이고 있다.” 칼 베네딕트 프레이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의 얘기다. 그는 4차 산업혁명으로 10년 내 미국 일자리의 47%가 없어질 것으로 전망한 보고서 ‘일자리의 미래’를 2013년 발표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는 “과거 기술 발전에 의해 광산업이나 농업 노동자들이 많은 일자리를 잃었는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노동력과 자동화 비용을 비교해 자동화가 타당할 경우 일자리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날 프레이 교수는 탈(脫)산업화로 양극화도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의사 결정이나 업무 협상처럼 자동화가 어려운 고소득 업무는 지금보다 늘어나지만 컴퓨터 코드로 대체할 수 있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중간소득 일자리는 크게 줄 것”이라고 말했다.


도미니크 바튼 맥킨지앤컴퍼니 글로벌 회장도 “오늘날 육체활동의 45%가 자동화될 수 있다”며 “빠르게 바뀌는 직업환경의 변화에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양극화 현상이 심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맥킨지앤컴퍼니 서울사무소 대표, 아시아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맥킨지앤컴퍼니 글로벌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30년간 맥킨지에 재직했는데, 최근 18개월 동안의 변화가 지난 28년보다 훨씬 근본적이고 거대하다”고 말했다.


괴를리흐 박사는 “그 누구도 노동시장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른다”고 반박했다. AI의 등장은 기존의 일자리를 없앨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도 있어서다. 물건을 사고 파는 방식, 공간을 이동하는 패턴이 통째로 바뀌기 때문에 그에 따른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수도 있다. 괴를리흐 박사는 “노동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에 어떤 상황에도 빠르게 변화하고 적응할 수 있는 능력(창의성·대인관계 기술)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왜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을 주목해야 하나]


괴를리흐 박사는 “제조업 기반인 한국은 독일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독일이 4차 산업혁명의 선두주자다. 2011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인더스트리(industry) 4.0’을 내세우며 산업 혁명에 나섰다. 인더스트리 4.0의 핵심은 개발부터 생산, 서비스 등 제품의 전 주기를 디지털화해 자동으로 제어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쉽게 얘기하면 제조 공정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적용한 스마트 공장이다. 두 번째 이유는 독일 역시 한국처럼 제조업 비중이 큰 국가이기 때문에 벤치마킹할 전략이 많다. 중국이 한국보다 앞서 독일의 인더스트리 4.0 전략을 따라서 ‘중국제조 2025 플랜’을 지난해 내놨다. 10년 안에 값싼 노동력 중심의 산업에서 대규모 맞춤형 생산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독일이 제조업에 승부수를 둔 것은 2009년 세계 금융위기로 경제가 어려웠을 때다. 바튼 회장은 “지멘스 등 독일 대표기업은 물론 정부?대학이 머리를 맞대고 산·관·학 협동체제를 구축했기 때문에 인더스트리 4.0에 속도가 붙었다”고 말했다. 괴를리흐 박사는 “이때 구축한 인더스트리 4.0 플랫폼은 중소기업이 자신의 특징에 맞는 스마트 공장을 구축할 수 있도록 테스트베드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 덕분일까. 현재 전체 독일기업의 51%가 사물인터넷을 이용하며, 22%는 빅데이터를 분석해 사업에 활용한다.


[IT 강국인 한국이 후발주자가 된 까닭은]


토론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한국이 과거 제조업 성공모델에 발이 묶여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저스틴 우드 세계경제포럼 아시아 총괄 국장은 “외부 환경변화에 인적자원이 신속하고도 효율적으로 재배분되는 노동시장 유연성이 중요한데 한국은 2014년 기준 세계 72위(세계경제포럼 자료)에 머무른다”고 말했다. 안상훈 한국개발연구원 산업·서비스경제연구부장이 “노동시장이 경직돼 있기 때문에 기존 사업의 공급과잉 문제도 해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안 연구위원은 클라우드 컴퓨팅이 규제 받고 있다는 점도 장애요인으로 꼽았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개인 컴퓨터가 아닌 인터넷으로 연결된 다른 컴퓨터에 자료를 올려놓고 처리하는 기술이다. 하지만 국내에선 보안 등의 이유로 공공기관에선 사용하기 어렵다.


교육 체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다. 바튼 회장은 “1881년 비스마르크가 유치원을 설립한 이후 지금까지 교육체제가 바뀌지 않았다”며 “25세 이전까지만 하던 공부 방식을 평생 교육으로 바꿔야 급격한 산업 변화 속에서도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공일 의장은 “먼저 교육부문의 개혁이 중요하고 고용시장의 유연성 확보, 일자리 간 이동성을 보장해야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면서 “무엇보다 정책 입안자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법률·제도를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염지현·이창균·임채연 기자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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