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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 살인에 황폐화된 그녀 감정 조절 실패하자 결국 …

하인리히 뵐


우리는 왜 타인을 필연적으로 오해하는 걸까. 타인의 의도를 명확히 이해하고 내 의사를 분명히 전달하는 일은 왜 이토록 어려운 것일까. 우리는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 완전한 객관성이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얼마 전 나는 한 선배와 한 유명인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가, 같은 사람을 두고 그토록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 적이 있다. 그 선배와 나는 원래 정치적·문화적 성향이 매우 비슷했기에 더욱 의아했다. 선배는 그 사람을 아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 사람을 매우 우호적으로 평가했다. 선배는 언론에 나타난 그의 모습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했고, 나는 그 사람의 책을 읽고 나서 그를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나는 나름대로 옹호하기 위해 그를 직접 만났던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받은 인상을 자세히 설명했는데, 선배가 대뜸 나를 비난했다. “여자들은 왜 자기한테 잘해 주는 사람들은 다 좋게 이야기하는지 모르겠어. 결국 그 사람이 너한테 친절하게 대해 주니까 좋은 사람이라는 거잖아?”


이처럼 다분히 남녀차별적인 발언에 발끈하고는 선배에게 불쾌감을 표시했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혹시나 내가 그런 감정적 실수를 한 것이 아닌가 하고 진심으로 되돌아보았다. 결국 우리는 모두 ‘감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선배는 유명인에 대한 익숙한 환멸 때문에, 나는 글 잘 쓰는 사람에 대한 동경 때문에, 우리는 같은 사람을 전혀 다르게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감정을 벗어나 완전히 객관적인 판단이란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최근에 심리학자 권혜경의 『감정조절』이라는 책을 읽다가 나는 ‘치우친 감정이 내리는 판단’의 위험성을 더욱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우리 뇌에는 뉴로셉션(neuroception)이라는 장치가 있는데, 이것은 위험을 감지하는 장치로서 우리 몸에 신호를 보내 위험에 대처하도록 한다. 나와 정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팔짱을 끼고 그 사람을 삐딱한 시선으로 본다든지, 부부싸움을 하다가 화가 나면 물건을 던지거나 “우리 그냥 이혼해!”라는 식으로 으름장을 놓도록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바로 이 뉴로셉션이다.


그런데 이 뉴로셉션은 결코 객관적이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타인은 틀리다’는 흑백논리를 작동하게 하고, 내 감정에 맞게 주변 상황을 조작하는 감정적 합리화(emotional reasoning)의 작업을 거쳐, 타인이 조금만 나에게 불리한 행동을 해도 ‘저 사람은 원래부터 나쁜 사람이야’라는 식으로 극단적인 판단을 하게 만든다. 감정조절이 가능한 상황에서는 ‘저 사람이 이러저러한 결점이 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좋은 사람이야’라고 판단할 수 있지만, 감정조절이 안 될 때는 ‘저 사람은 나에게 해를 끼치니까, 보나 마나 나쁜 사람이야’라는 식으로 극단적인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이다.


[위험신호 보내는 뉴로셉션, 객관적이지 않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의 『카타리나 블룸의 명예』는 바로 이런 ‘감정조절의 실패’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극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이다. 1974년 2월 24일 일요일, 독일의 신문기자가 27세의 여인 카타리나 블룸에게 죽임을 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그녀는 경찰을 찾아가 자신이 그 기자를 총으로 쏘아 죽였다고 순순히 자백한다. 사람들은 그 태연함에 더욱 놀란다. 소설은 그토록 평범한 여성이 어떻게 그렇게 끔찍한 살인자가 되었는지를 추적한다. 무엇이 그녀의 감정조절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을까.


가정부이자 관리인으로 성실하게 일하고 있었던 카타리나는 주변의 평판도 좋았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이었으며, 인생에서 한 번도 심각한 잘못을 저질러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소설은 경찰의 조서와 검사나 변호사로부터 들은 정보, 그리고 여러 참고인의 진술을 바탕으로 그녀가 살인을 저지르기까지 닷새간의 행적을 면밀히 파헤친다. 이 소설은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증거들을 수집하여 사실을 재구성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들이 속속 밝혀진다.


카타리나는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 루트비히라는 남자를 만났고, 그의 매력에 이끌려 하룻밤을 보냈는데, 그가 공교롭게도 경찰에 쫓기고 있는 수배범이었던 것이다. 경찰은 루트비히를 체포하려는 과정에서 카타리나를 감시하게 되었고, 루트비히가 흔적없이 사라지자 카타리나가 그를 은닉해 주었다는 혐의를 뒤집어쓰게 된 것이다.


그런데 신문기자가 ‘사라진 수배범’의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카타리나를 마치 ‘살인자의 연인’처럼 악의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카타리나의 인생은 하루아침에 돌변해 버리고 만다. 사람들은 카타리나를 범죄자의 연인, 천하의 악녀, 헤픈 여자, 심지어는 골수 공산주의자로 몰아가면서 하루아침에 그녀의 인생 전체를 앗아가 버린다. 기사 하나가 그렇게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쳐 버린다. 카타리나는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아간 기자에 대한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신을 향한 인격 살인을 범한 그 기자를 살해한 것이다.


신문 기사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단 한 번의 기사로 바뀌어 버린 주변 사람들의 냉정한 시선이다. 어떻게 하루아침에 그 선량했던 카타리나가 천하의 악녀로 돌변한 것일까? 알고 보면 카타리나가 변한 것이 아니라 카타리나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생각이 변한 것이다. 평소라면 그저 무심하게 지나쳤을 사소한 것들이 모두 ‘카타리나가 범죄자와 하룻밤을 보냈다’는 단 하나의 위협적인 사실로 인해 완전히 재창조되고 재해석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카타리나는 루트비히라는 수배자를 그날 처음 댄스파티에서 우연히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일부러 숨겨 준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범죄자의 연인’이라는 색안경을 통해 바라본 그녀는 원래부터 지독한 위험인물이라는 식으로 해석되어 버린다. 카타리나는 자신을 향한 세상의 온갖 비난을 맨몸으로 견디면서 ‘그 기자만 아니었다면, 그 기사만 아니었더라면, 내 인생이 이렇게 하루아침에 와르르 무너지지는 않았을 텐데’라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키워 갔을 것이다.

폴커 슐렌도르프와 마가레테 폰 트로타 감독의 영화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의 한 장면


[우리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보다 더 강한 존재]


‘분노조절장애’라는 증상이 심지어 어린 아이들에게도 나타나는 요즘, 갈수록 메말라 가는 현대인에게 ‘감정조절’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어떤 사람이 내 부탁을 잘 들어줄 때는 그 사람이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고, 내 부탁을 거절할 때는 매우 나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대표적인 인식의 오작동이다. 그 사람이 내 부탁은 들어주더라도 다른 곳에서는 악당처럼 행동할 수도 있고,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더라도 그건 부득이한 상황일 뿐 그 사람 자체는 대체로 훌륭한 사람일 수 있다. 카타리나는 운이 나빴을 뿐이다. 그녀가 첫눈에 호감을 느낀 남자가 우연히, 정말 운 나쁘게도 경찰에 쫓기는 신세였을 뿐이다.


『감정조절』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감정조절은 부정적인 감정을 억제하는 것도,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을 마비시키는 것도 아니다. 모든 감정을 느끼되 그에 압도되거나 휩쓸리지 않는 것이다.”


오늘은 또 어떤 분노의 해일이 당신에게 닥쳐올지 모른다. 하지만 그 감정의 격랑에 휩쓸리지 말자. 냉정하게 원인을 분석하고, 아주 천천히 대책을 세우자. 격한 감정이 우리를 제멋대로 휘두르게 내버려두지 말자. 우리 자신은 우리가 느끼는 감정보다 더 강하다. 우리는 우리를 괴롭히는 분노의 원인보다 훨씬 복잡하고, 강인하며, 냉철한 존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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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