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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 옆 느낌표 같은 설치물 책꽂이로 변신한 헌 장롱 문짝 예술, 일상 속으로

알바루 시자가 설계한 ‘안양 파빌리온’ 내부에는 건설현장 거푸집을 이용한 최정화 작가의 ‘무문관’이 거대한 모습으로 설치돼 있다. 크리스티나 김 작가가 천연 재료로 염색한 유기농 면직물 쿠션과 베개 ‘돌베개 정원’(2016)에서 관람객들이 휴식을 취하는 모습.


공공예술(Public Art). 말 그대로 모든 사람들이 즐기는, 모든 사람을 위한 예술이다. 그런데 이 말은 우리에게 그리 익숙지 않다.


자고로 예술이란, 소수의 사람만을 위한 아주 고급스런 그 무엇으로 인식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예술은 어때야 할까. 예술이 높은 곳에만 있지 말고, 사람들의 삶과 일상 속으로 좀 더 내려오면, 좀 더 들어오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일상이 예술이 되면, 우리 모두 예술 속에서 살아가면, 그런 세상을 만들면 조금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안양시가 그런 목표를 세우고 2005년 시작한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nyang Public Art Project·APAP)가 올해로 다섯 번째를 맞았다.


 

새 둥지를 만들어 안양 시내 곳곳에 설치한 아르헨티나 작가 아드리안 비샤르 로하스의 ‘벽돌 농장’(2016).

박찬경 감독이 만든 APAP 공식 트레일러


APAP는 3년마다 열리는 국내 유일의 공공예술 트리엔날레다. 이 행사에 참가하는 작가들은 안양의 문화와 역사, 지형과 공간 등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을 제작했다. 지금까지 네 번에 걸친 행사를 통해 안양예술공원 일대, 평촌 등 도심 곳곳에 설치된 작품은 140점이 넘는다.


여기서 ‘작품’이라는 말에 혹여 부담이 생긴다면 이렇게 풀어서 설명할 수 있다. 주민용 시설물을 평범한 ‘업자’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개성 있고 생각 많은 ‘작가’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예를 들어 안양 사람들이 책을 읽거나 작은 모임을 갖거나 공연을 볼 수 있는 공간인 ‘안양 파빌리온’은 1회 APAP를 찾은 포르투갈의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루 시자가 아시아에서 처음 설계한 것이다. 구불구불한 모양의 ‘안양 전망대’ 역시 1회 때 네덜란드 건축가 그룹 MVRDV(비니 마스)가 인근 삼성산의 등고선(等高線)을 본떠 만든 것으로 이제 누구나 찾는 명소다(비니 마스는 서울역 고가 보행길 프로젝트도 설계했다).


‘작가’들이 만든 ‘작품’은 평범하지 않다. 평범하지 않으니 작품이다. 그런 것을 접하면서 “이게 작가의 작품이었어?”라는 궁금증이 생겼다면, 축하의 말씀을 드린다. 이제 당신은 예술의 세계로 한걸음 들어온 것이기 때문이다.


[방석만 깔았을 뿐인데 … 저절로 명상이]


지난 14일 오전 안양 예술공원로 김중업건축박물관. 이곳은 원래 유유제약의 공장이었고 천년 전에는 안양사(安養寺)가 있던 절터였다. 불교에서 안양은 극락을 뜻한다. 서울 토박이들에게 이 일대는 ‘안양 유원지’로 더 잘 알려졌던 곳이다. 무허가 건물의 난립과 낙후된 시설로 점점 쇠락해가던 이곳에 작가들의 작품이 하나 둘 설치되면서 도심 속 갤러리, 안양예술공원으로 거듭났다.


예술감독을 맡은 주은지 재미 큐레이터는 프레스 투어에 앞서 “국내외 22개 팀의 작가들과 함께 왜 안양은 공공예술에 투자하는가, 공공예술은 누가 보는가, 안양 시민이 원하고 안양시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에 집중했다”고 기획의도를 들려주었다. 또 “조형물 설치는 물론 미디어, 글쓰기, 영화, 퍼포먼스 등으로 영역을 확대했다”고 덧붙였다.


건물 1층에 설치된 10분짜리 영상물은 믹스라이스(조지은+양철모)의 ‘21세기 공장의 불빛’(2016). 김민기의 민중극 ‘공장의 불빛’(1978)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작가들이 마석가구단지 이주 노동자들의 삶을 연극으로 풀어낸 경험을 토대로 했다. 마침 날아든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선정 소식은 작품에 대한 주목도를 높였다.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 수상자인 임흥순 감독이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신작 ‘려행’의 경우 12월 15일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평촌 롯데시네마에서 무료로 상영된다.


바로 옆 건물인 김중업관과 어울마당은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바이런 김이 꾸몄다. 공장을 설계했던 건축가 김중업을 기리는 그림 ‘봉안’을 김중업관 지하에 걸어놓고, 어울마당에는 큼직한 방석 25개를 정사각형으로 놓아 ‘사색의 방’으로 만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라 그냥 조용히 앉아 생각에 잠기면 되는 곳입니다. 벌써부터 주민들이 찾아오고 있어요. 힐링이 많이 된다면서.” 주 감독의 귀띔이다.


안양사 입구를 지나 산속 오솔길을 걸어가다 보면 희한한 돌 무더기가 보인다. 역시 뉴욕을 무대로 작업하는 마이클 주가 만든 ‘중간자’다. 1998년 스웨덴 남부에 만들어 설치했던 ‘중간자’의 안양 버전이다. 지름 9m의 반구(半球) 형태로 땅을 파고 주변에 정육면체 돌덩이를 촘촘히 박아 넣은 뒤 한가운데에는 방아공이 같이 생긴 구리 기둥을 세워 놓았다. 흰 돌무더기 사이에 우뚝 선 모양이 해시계 같기도 하고 우유에 떨어진 물방울 같기도 하다가 우주와 교신하는 위성 접시와 안테나처럼 보이기도 한다. 오솔길 쪽에서 보기엔 경사가 꽤 급해 ‘자칫 떨어지면 어떻게 나오나’ 싶었는데, 반대편에 있던 주 감독이 마치 대꾸라도 하듯 재빨리 나선형의 원을 그리며 아래로 내려가자 주위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쯤 되면 산책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하는 놀이시설에 다름없다. 주 감독은 “구리 기둥은 실제 피뢰침으로도 기능 하도록 땅에 접지돼 있다”고 설명했다.

마이클 주의 ‘중간자(안양)’. 직경이 9m에 이른다.


[거푸집으로 만든 책장 여닫이문 눈길]


냇물을 지나 다리를 건너가면 알바루 시자가 세운 ‘안양 파빌리온’이 보인다. 내부로 들어가니 체육관처럼 텅 빈 공간인데, 오른쪽 벽면에 거대한 설치물이 보인다. 최정화 작가가 시민들과 함께 만든 ‘무문관(無門關)’이다. 앞면에는 건설현장 거푸집에 쓰인 합판을 이어붙여 커다란 여닫이 문을 만들었다. 문을 힘겹게 미니 높다란 여러 층 책꽂이에는 주로 예술 관련 책들이 꽂혀있다. 뒤로 돌아가 보았더니 더 재미있다. 시민들이 기증한 자개장에서 문짝 4짝을 떼어다 이어 붙여 놓았다. 자연스럽게 수납공간이 만들어졌다. 주 감독은 “덕분에 대형 자료실로 쓸 수 있게 됐다”고 신이 났다.


자투리 천을 재활용한 패션 브랜드 도사(DOSA)의 창립자인 크리스티나 김은 공간 바닥에 가로세로 2m 짜리 바닥 쿠션과 수십 개의 작은 쿠션을 만들어 배치했다. 시민들이 와서 책을 읽거나 쉴 때 활용하라는 ‘돌베개 정원’이다. 유기농 무명천에 천연 재료로 염색해 바위 덩어리 느낌을 냈지만 속에는 메밀 껍질과 솜을 적당히 넣어 푹신푹신하다.


정재왈 안양문화예술재단 대표는 “APAP는 일시적으로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 아닌 시민의 자산이 되는 공공예술을 추구해왔다”며 “공공예술이 어떻게 우리의 삶에 즐거움이 되고 있는지 직접들 와서 보고 느끼고 즐겨보시라”고 말했다.


다양한 부대 행사는 12월 15일까지로 예정돼 있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감상 기한이 따로 없다. 특히 평촌중앙공원의 X게임장을 새롭게 꾸며낼 길초실 작가의 프로젝트와 안양예술공원 안에 만들어지고 있는 베트남 작가 얀 보의 어린이놀이터 ‘플레이스케이프’는 내년 봄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놀라움과 기쁨을 줄지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다. 문의 031-687-0933. ●


 


 


안양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안양문화예술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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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