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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송곳니 가진 검치호랑이 사냥꾼 아닌 청소부였을까

1 화가들은 스밀로돈에게 호랑이와 같은 피부색을 입히고 싶어하지만, 실제로는 그랬을 리가 없다. 스밀로돈은 따뜻한 곳에 사는 현생 고양잇과 동물처럼 갈색 털을 가졌을 것이다.


2만 년 전 빙하시대. 어느 날 인간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 찬 디에고는 동료들과 함께 마을을 습격한다. 그들의 목표는 아기인 로산. 하지만 로산의 엄마는 필사적으로 도망쳐서 폭포 아래로 뛰어내린다. 아기를 살린 엄마는 지나가던 매니와 시드에게 로산을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디에고는 매니와 시드에게 접근하여 매니를 죽이고 로산을 빼앗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쓴다. 하지만 매니와 시드는 로산과 깊은 정이 들었다. 몇 차례 모험을 겪은 끝에 디에고 역시 로산을 엄마에게 돌려주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디에고의 배신을 알아차린 동료들은 이제 디에고를 죽이려고 한다. 시드와 매니 그리고 디에고는 힘을 합쳐 디에고의 동료들을 물리친다.


2002년 개봉한 영화 ‘아이스 에이지’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여기서 디에고는 검치호랑이, 매니와 시드는 각각 매머드와 나무늘보다. 영화에 공룡과 인간이 함께 등장하면 이상해 보이겠지만 검치호랑이, 매머드는 사람과 같이 등장해도 된다. 함께 살았기 때문이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검치호랑이(Smilodon fatalis). 뒤쪽에 보이는 골격은 검치호랑이의 먹잇감이었던 새끼 매머드다.


[타르 못의 화석 중 포식자가 90% 넘어]미국 로스엔젤레스 시내 핸콕 공원에는 란초 라 브레아(Rancho La Brea)라고 하는 타르(아스팔트) 못이 있다. 신생대 제3기 지층에서 유래한 타르 물질이 플라이스토세 지층을 뚫고 지면으로 스며나와서 웅덩이를 이룬 것이다. 이 현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플라이스토세 당시 타르 웅덩이는 물과 모래 그리고 나뭇잎으로 덮여 있어 쉽게 알아보지 못했다. 매머드와 코끼리, 버팔로와 땅늘보 같은 동물들이 끈적끈적한 타르 못에 빠지면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칠수록 몸은 더 깊이 빠져들었고 피곤과 배고픔에 지쳐버리고 말았다. 타르 못에 빠진 동물들은 괴로움에 울부짖었다.


란초 라 브레아 타르 못에 빠진 동물들은 거의 완전한 형태로 수만 년 동안 화석으로 보존되었다. 이 못에서 발견된 화석은 3만 8000~1만 2000년 전의 것으로 모두 100만 점이 넘는데 231종 1만 개체에서 유래한 것이다. 9000년 전 호모사피엔스 여성의 두개골도 한 점 포함되어 있다.


보통 포식자 개체의 비율은 생태계에서 5%를 넘지 않는다. 그런데 타르 못에서는 포식자의 비율이 90%가 넘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답은 항상 환경에 있다.


지금으로부터 250만 년 전 신생대 제4기 플라이스토세가 시작될 무렵 지구의 풍경은 확 바뀌었다. 울창한 숲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넓은 초원지대가 열렸다. 급작스러운 환경 변화는 초식동물과 포식자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그나마 초식동물은 형편이 나았다. 먹이 종류를 바꾸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포식자들은 훨씬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넓은 초원 지대에서는 이전까지 가지고 있던 사냥 기술로는 더 이상 사냥하기 어려웠다. 초식동물들은 포식자를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때 타르 못에 빠진 동물들이 울부짖는 소리와 냄새는 포식자를 유혹했다. 타르 늪에 빠진 동물들은 포식자와 맹금류들에게 좋은 먹이로 보였다. 능숙한 사냥꾼이라고 해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먹잇감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초원지대에서 겨우 살아남은 포식자들에게 꼼짝 못하고 있는 초식동물들이 좋은 먹잇감으로 보였다. 그러나 타르 못으로 뛰어든 포식자와 맹금류 역시 먹잇감과 같은 운명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란초 라 브레아 타르 못에서 발견된 포식자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동물은 120마리에 이르는 스밀로돈(Smilodon)이다. 스밀로돈은 아메리카 대륙에만 살았던 검치호랑이의 일종이다.


 


[현생 고양잇과 송곳니와 완전히 달라]고양잇과 동물은 다른 포식자와 구분되는 명확한 특징이 있다. 얼굴 부분이 짧고 눈은 얼굴 앞쪽에 자리 잡고 있다. 어금니는 다른 포식자에 비해 개수가 적은 대신 더 날카로워서 살을 베기에 좋다. 또 발꿈치를 들고 발가락 끝으로 걸으며 발 안쪽으로 발톱을 말아 넣어서 숨길 수 있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와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에 살고 있는 사자의 골격은 크기만 다를 뿐 나머지는 똑같다. 이런 점에서 보면 검치호랑이는 고양잇과 동물이다.


 

2 사냥하는 검치호랑이. 호모테리움과 달리 스밀로돈은 매복 공격자였다. 숲이 초원으로 변하자 단독생활을 버리고 집단생활을 해야 했다.


하지만 검치호랑이라는 이름은 적절하지 않다. 현생 호랑이(Panthera tigris)는 사자·퓨마·재규어 같은 대형 고양잇과 동물과 함께 ‘판테라’라고 하는 독립적인 속(屬)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검치호랑이는 전혀 다른 계통으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치호랑이보다는 검치고양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지만 이미 굳어버린 이름이다. 하긴 검치호랑이처럼 위엄 있는 동물을 발견했는데 누가 거기에 호랑이 대신 고양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었겠는가.


그런데 검치호랑이는 현생 고양잇과 동물과도 많이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이빨이다. 현생 고양잇과 동물의 위쪽 송곳니는 짧고 둥글며 아래쪽 송곳니는 위쪽과 거의 같은 크기다. 턱을 다물어도 앞니 끝이 맞닿을 뿐 서로 맞물리지 않는다. 검치호랑이의 가장 큰 특징은 칼(劍)처럼 길게 자란 송곳니(齒)다. 현생 고양잇과 동물의 송곳니와는 완전히 다르다. 위쪽 송곳니인 검치는 아주 길고 납작하며 이빨 테두리에 스테이크 칼 같은 톱날이 달려 있다. 또 턱을 다물면 앞니가 서로 맞물려 먹잇감의 살을 효과적으로 움켜잡을 수 있다.


검치호랑이가 긴 송곳니를 어떻게 썼을지에 대해서는 과학자들마다 견해가 다르다. 긴 송곳니가 사냥하는 데 쓸모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긴 송곳니를 갈고리처럼 사용해서 나무에 오르는 데 쓰거나 암컷에게 선택받기 위해 자기를 과시하고 다른 수컷을 위협하는 용도였다는 것이다. 이들은 검치호랑이가 사냥꾼이 아니라 시체청소부라고 생각한다. (터무니없는 주장이 아니다. 대표적인 육식공룡인 티라노사우루스도 사냥꾼이 아니라 시체청소부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다.) 어떤 과학자들은 긴 송곳니로 글립토돈의 등딱지를 갈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글립토돈은 머리에서 꼬리에 이르기까지 등쪽이 단단한 껍질로 덮여 있는 포유류인데 현생 아르마딜로를 떠올리면 된다.


다수설은 긴 송곳니가 사냥에 쓰이는 주요한 무기였다는 것이다. 여기에도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턱을 다문 상태에서 먹잇감의 살 속에 송곳니를 박아 넣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검치호랑이의 송곳니는 턱을 다물어도 턱뼈 아래로 튀어나올 정도로 길었다. 이런 상태로 턱을 먹잇감의 살 속에 찔러 넣어 죽였을 수도 있다. 물론 입을 크게 벌려서 송곳니로 물었을 것이라는 이론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사냥 방법은 검치호랑이마다 다 달랐을 것이다.


 


[1만년 전까지 살았던 호모테리움]검치호랑이는 남극과 오스트레일리아를 제외한 전 세계 모든 지역에서 화석으로 발견된다. 그만큼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검치의 모양과 크기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단검형 검치호랑이이고 다른 하나는 군도형 검치호랑이다.


유라시아에서는 2만 8000년 전에 멸종했지만 아메리카에서는 1만 년 전까지도 살았던 호모테리움은 현생 사자 정도의 체구로 단검형 검치를 가졌다. 두개골은 폭이 좁고 앞다리는 길지만 뒷다리는 짧아서 엉덩이 높이가 어깨보다 낮았다. 하이에나처럼 뒤쪽으로 기울어진 형태인 것이다.


호모테리움은 초기에는 단독생활을 했다. 먹잇감을 좇아 먼 거리를 다니면서 기회를 노리다가 수풀 속에서 낮은 포복으로 몸을 숨기고 먹잇감에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서 복부를 공격해 치명상을 입혔다. 그리고는 먹잇감의 반격을 피해 멀리 떨어져 과다출혈로 죽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숲이 초원으로 바뀌면서 사냥 환경이 열악해지자 집단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먹잇감이 죽기를 기다리다 보면 동굴사자나 대형 하이에나 같은 경쟁자들에게 먹이를 쉽게 빼앗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집단 생활하는 호모테리움은 한두 마리가 강한 발톱으로 먹잇감을 쓰러뜨리고 단단히 제압하는 동안 나머지 무리가 목과 배를 앞니와 긴 송곳니로 물어서 치명상을 입혀 과다출혈로 죽게 했을 것이다.


영화 ‘아이스 에이지’에 등장하는 스밀로돈은 군도형 검치호랑이다. 북아메리카 동북부에서 등장하여 남아메리카까지 확산되었지만, 당시 육지로 연결되어 있던 베링해협을 건너서 유라시아로 이동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스밀로돈이 따뜻한 지역에 살았던 동물이라는 뜻이다.


스밀로돈은 현생 사자와 호랑이 정도의 크기였는데 몸통이 육중했고 다리가 짧았다. 수풀 속에서 매복했다가 먹잇감을 덮쳐 사냥해야 하는 신체구조였다. 스밀로돈 가운데는 검치의 길이가 28㎝에 달하는 것도 있었다. 전체의 40% 정도가 위턱에 박혀 있어 눈에 보이는 길이는 18㎝ 정도이지만, 사자와 호랑이의 송곳니 전체 길이가 13㎝에 불과한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길이다. 스밀로돈 검치에도 톱날 구조가 있는데 사춘기만 지나도 마모되어 거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이것은 스밀로돈이 검치를 사냥하는 데만 사용하고 먹이를 먹는 데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스밀로돈은 요추(허리 부분의 등뼈)가 짧고 서로 강하게 결합되어 있다. 이런 구조는 빨리 달리거나 몸을 가볍게 놀리는 데는 적합하지 않지만 격렬하게 저항하는 먹잇감을 제압하는 데는 유리하다. 스밀로돈은 발꿈치뼈가 길다. 이것은 도약 능력이 뛰어났음을 보여준다. 과학자들은 스밀로돈이 호모테리움과는 달리 매복했다가 먹잇감을 덮치는 사냥꾼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영화 ‘아이스 에이지’에서 스밀로돈은 인간에 대한 적개심을 품고 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기원 전 1만 년 전부터 인류가 정착하여 농사를 짓기 시작할 무렵 그들은 지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가 길고양이에게 작은 자선을 베푸는 것은 거기에 대한 반성이 아닐까?


 


이정모서울 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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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