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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를 말해주세요 거절


최 대리는 내가 회사에 들어오고 불과 일주일 만에 퇴사했다. 최 대리가 퇴사한 것이 나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입사한 것이 최 대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회사에서 광고 업무를 담당하던 유일한 직원인 최 대리가 갑자기 대기업으로 직장을 옮기기로 하면서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덩달아 내 입사도 결정된 것 같았다.


최 대리와 나는 고작 일주일을 함께 근무했다. 그나마 하루는 그가 연차를 냈고 또 사무실에 있을 때도 자리를 비우는 적이 많아 제대로 업무와 관련한 인수인계를 받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한다고 해서 별명이 ‘기우’인 나는 그야말로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런 내 조바심과는 달리 그는 느긋했다. 달리 인수인계를 할 게 없다는 투였다. 하도 내가 한숨을 쉬니까 최 대리는 몇 가지 서류와 파일을 내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사실 이런 건 아무 소용이 없어요. 김 대리님은 딱 하나만 알면 됩니다. 나는 눈이 똥그래졌다. 그게 뭡니까? 그게 뭐냐 하면 말이죠. 참 김 대리님 술 마실 줄 알죠?


퇴근하자마자 우리는 회사 앞에 있는 맥주 가게에 갔다. 그는 단골인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친해 보였다. 인사를 나누고 몇 마디 농담도 주고 받았다. 500cc 생맥주를 두 잔이나 비울 동안 그는 ‘딱 하나’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나는 오줌 마려운 강아지 눈빛으로 최 대리의 입만 바라보았다. 맥주를 두 잔이나 마셨더니 정말 오줌이 마렵기도 했지만.


김 대리님 거절 잘 못하시죠? 그는 내 대답은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만일 말이죠. 동료 중 누군가 대리님 책상 위에 음료수를 놓아준다고 해봐요. 나는 웃었다. 그럼 “감사합니다” 하고 마시면 되잖아요. 그게 한 번이 아니라 매일 1년 365일 계속 그렇게 한다고 생각해 봐요. 부담이 되겠네요. 그렇죠. 거절을 해야겠지요. 그런데 내게 호의를 베푼 사람인데 자칫하면 마음의 상처를 줄 수도 있고. 김 대리님, 어떻게 하겠어요?


어릴 때부터 질문을 받으면 바로 대답을 못하고 생각만 한다고 해서 별명이 ‘장고’인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래도 생각은 계속 하고 있다는 느낌을 상대에게 주기 위해.


최 대리가 입을 벙긋했다. 우리 일은 거절하는 일이에요. 앞으로 대행사나 매체사, 기획사 등으로부터 제안을 많이 받을 겁니다. 하루에도 수십 통 메일이 들어오고 또 그 숫자만큼 전화를 받을 거고, 사전 연락 없이 무작정 찾아오는 광고 영업하는 분들의 방문도 받을 거에요.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이 광고가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며, 그럴듯한 이유를 논리적으로 감정적으로 인간적으로 설득하고 호소하고 부탁할 겁니다. 때로는 은근하게 협박도 하고요. 물론 정말 우리에게 필요하고 또 좋은 조건의 제안이라면 받아들이면 되겠지요. 그러나 대부분은 거절해야 하는 것들이지요.


일단 검토해보겠다 라고 말할 수 있겠죠. 거절은 아닙니다. 그저 잠시 결정을 미루고 시간을 버는 것에 지나지 않죠. 진짜 거절은 어렵습니다. 많이 한다고 해서 절대 익숙해지지 않아요. 저도 벌써 3년이지만 할 때마다 매번 힘들어요. 특히 직접 얼굴 보고 하는 거절은 더 어렵습니다. 그 사람이 낸 제안 하나를 거절하는 건데 마치 그의 존재 전체를 거절하는 것 같은 심리적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사람들은 제가 옮기는 곳이 대기업이라서 이직하는 걸로 알지만 그게 아닙니다. 거절을 잘하려면 성실해야 하는데 저는 그러지 못해서요. 힘들었습니다. 그냥 싫다, 그냥 아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늘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떻게든 거절의 이유를 최대한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마지막 날 오후 최 대리가 메신저로 말을 걸어왔다. 오늘 다른 약속이 없다면 마치고 소주 한잔 하실래요? 그날 나는 술 생각이 없었지만 최 대리가 근무하는 마지막 날이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전화를 받고 찾아온 사람을 만나고 업무를 처리하고 그러다 퇴근 무렵에 떠나는 최 대리를 배웅하고 자리에 돌아와 보니 그의 메일이 와 있었다. 거기 이런 문장이 있었다. 가장 나쁜 거절은 너무 오래 고민하다가 타이밍을 놓치고 결국 아무런 답도 주지 않는 것입니다. ●


 


 


김상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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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