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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10년 예상했던 성곽 공사를 2년 9개월 만에 끝낸 비결은

 
정조의 꿈과 이상을 말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도시가 있습니다. 바로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수원 화성입니다. 들판 위 작은 고을에 불과했던 이곳에 정조는 조선 최대 규모의 계획도시를 만들었습니다. 화성 축성 220주년을 맞은 올해는 ‘수원 화성 방문의 해’이기도 합니다. 지난 15일 AK플라자가 후원하고 문화유산국민신탁이 함께하는 역사 꿈나무 탐험단(이하 탐험단)과 함께 수원 화성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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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대에서 화성을 한눈에 담다
화성 행궁에서 집결한 탐험단은 첫 번째 행선지 팔달산의 정상 서장대로 향했습니다. 완만한 언덕을 오르다 보니 금세 도착했죠. 서장대에 올라 주변을 보자 막힌 곳 없는 시야에 가슴마저 트이는 듯했습니다. 정조의 화성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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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성곽 축조 과정이 기록되어 있는 `화성성역의궤`.

“화성의 도시 계획과 수도 한양의 도시 계획을 비교해보면 재미있어요. 한양은 앞에는 강이 흐르고 등과 옆쪽은 산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에 건설된 도시인데 반해 화성은 들판 위에 세워졌거든요.” 김진형 문화유산국민신탁 연구원의 설명에 이현서(용인 심곡초 5) 탐험단원이 손을 듭니다. “왜 수원 화성은 한양같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세워지지 않았어요?” 남순희 문화관광해설사는 “조선 후기에는 상공업이 크게 발달하기 시작합니다. 정조는 이런 시대적 흐름을 읽고 화성을 새 시대를 담는 상공업 중심도시로 키우고자 했죠. 상공업 도시는 교통이 편리한 지역에서 발전할 수 있거든요”라고 알려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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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대. 장대는 장수가 군대를 지휘하는 곳이란 뜻으로, 이곳에서 정조가 직접 훈련을 지휘하기도 했다.

차분히 수원 시내와 화성 성곽 안팎을 살펴보니 정조가 수원에 화성을 건설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탁 트인 시야 가득히 도시의 핏줄 같은 도로가 훤하게 보였거든요. 말 그대로 사통팔달로 길이 뚫린 교통의 요지임을 알 수 있었어요. 탐험단 친구들은 다시 한번 한눈에 펼쳐지는 수원 시내를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김 연구원이 이어서 설명했어요.

“한양은 외적 침임을 막아내는데 유리했지만 도로 건설에 불리했죠. 조선 건국 당시에는 외적을 막아내는 것이 우선이었거든요. 반면 화성은 도로 건설에 유리했지만 외적의 침입에 취약했어요. 이는 도시와 백성을 보호하기 위한 화성 성곽을 쌓는 이유가 돼요.”
 
정조의 탕평책이 반영된 계획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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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중기 설계도

경기도 수원 화성은 정조의 명령으로 세워진 계획도시인 만큼 아낌없는 지원을 받아 두 번째 도읍이라 불릴 정도로 성장합니다. 1789년엔 왕이 지방에 갈 때 머무는 행궁도 갖추죠. 교통의 요지에 세워져 사방이 뚫려있는 도시의 방어에 대해 고민한 정조는 1792년 정약용에게 화성 성곽 설계를 맡깁니다. 정약용은 중국·일본뿐 아니라 서양의 성까지 연구해 설계도 『성설』을 만들죠. 정조는 채제공과 정약용에게 화성 건축을 명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정조가 설치한 연구기관인 규장각 출신 남인이에요.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노론에 밀려 변변한 관직조차 얻기 힘들었던 남인에게 화성 건축이라는 중요한 일을 맡긴 건 할아버지 영조가 도입한 탕평책(각 당파에서 고르게 인재를 등용하던 정책)을 계승한 것입니다. 신도시를 짓는 큰 공사를 하다 보면 많은 돈과 사람을 부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권력이 주어지기 마련이거든요. 게다가 세상에 능력을 보여 줄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죠. 당쟁을 다스리는 정조의 지혜가 참 놀랍죠?

숭례문보다 더 큰 규모의 장안문
서장대에서 내려와 수원의 서쪽 문인 화서문으로 향했습니다. 화서문은 보수공사 중이라 안타깝게도 제대로 볼 수 없었어요. 가림막 사이로 보이는 화서문을 뒤로 하고 남 해설사가 설명했어요. “당초 10년을 예상한 성곽 공사는 시작한지 2년 9개월 만인 1796년 완공됐어요. 정약용이 서양과 중국의 기술을 활용해 발전시킨 거중기·녹로·유형거와 같은 건설장비 덕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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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흡 문화관광해설사가 탐험단에게 성곽의 군사적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약 6㎞에 달하는 성벽과 40여 개의 시설을 건설하는데 3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는 얘기에 탐험단은 입을 쩍 벌렸답니다. 공사 기간을 단축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어요. 화성이 상업도시여서 벽돌·목재 등 자재 조달이 쉬웠다는 거죠. 남 해설사는 “기술자들에게 일한 만큼 품삯을 줬다는 점도 건설기간 단축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어요. 다른 공사에는 부역이라는 이름으로 백성들이 대가를 받지 않고 동원되곤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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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의 정문 장안문.

화서문을 지나 15여 분 정도 성곽을 따라 걸은 탐험단은 화성의 북쪽 문, 정문 장안문에 도착했습니다. ‘와~’, ‘이야~’ 짧고 긴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죠. 장안문의 웅장한 모습 때문입니다. 켜켜이 쌓은 돌 축대 위에 다시 벽돌을 올려 2층 누각을 세우고 그 위로 화려하기 그지없는 우진각 지붕을 얹은 데다 문 주변을 다시 옹성이 둘러싼 구조입니다. 김 연구원이 “규모 면에서 한양의 정문 숭례문보다도 큽니다”라고 말하자 아이들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죠. 그때 남 해설사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북쪽 문이 정문이라니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조선시대 성의 정문은 유교경전 『주례』에 따라 남쪽 문이 차지해야 하거든요.”

끄덕거리던 탐험단의 머리가 멈추더니 좌우로 갸우뚱거리기 시작했죠. 남 해설사는 “수원 화성의 정문이 북쪽인 이유는 바로 한양에서 출발한 정조가 도착하는 문이기 때문”이라고 궁금증을 풀어줬습니다. 장안이라는 문 이름의 유래도 덧붙였죠. “중국 수나라·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의 이름을 따서 지었어요. 그처럼 번성한 도시로 만들겠다는 정조의 뜻이 담겨있어요.”

화성의 꽃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탐험단은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화성 답사의 마지막 코스이자 수원 화성의 꽃, 화홍문(북수문)과 방화수류정(동북각루)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화홍문에 도착하자 또다시 탄성이 터져 나왔죠. 수원천 위를 가로질러 놓인 화홍문은 마치 용궁 같은 위용을 뽐내고 있었거든요. 전승흡 문화관광해설사가 설명을 이어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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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서포루를 살펴보고 있는 탐험단. 화서문과 장안문 사이에 있는 군사시설로 화성의 5개 포루 중 하나다.

“화홍문에는 일곱 개의 무지개가 뜬다고 해요. 일곱 개의 수문이 마치 무지개 모양 같다 해서 생긴 말입니다. 화창한 날에 오면 수문 아래로 쏟아지는 물보라를 통해 진짜 무지개를 볼 수 있는 행운도 만날 수 있어요.”

화홍문의 바로 옆에 위치한 마지막 목적지, 방화수류정으로 향했습니다. 방화수류정은 ‘꽃이 흐드러지고 버드나무를 좇는 정자’라는 뜻입니다. 화성 최고의 절경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명성이 자자하죠. 성을 지나치게 아름답게 짓는다고 비판한 신하에게 정조는 ‘아름다움이 적을 이긴다’라고 말했다고 해요. 화성에서 가장 유명한 포토존이기도 하고요. 탐험단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일정을 마무리했답니다.
 
역사 꿈나무 탐험단 답사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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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김예진·이준서·최지안 학생.

김예진(수원 상촌초 4) 성을 이렇게 예쁘게 만들 수 있다니 신기하고 많이 놀랐다.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은 또 오고 싶다. 화창한 날에는 무지개도 볼 수 있다니 여름에 꼭 다시 찾을 계획이다.

이준서(서울 장안초 5) 평소 정약용 선생님을 존경했다. 거중기·녹로 같은 당시 최신의 건설장비로 농민들의 힘을 덜어주셨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장비들을 보고 그것을 활용해 만든 화성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오랫동안 잊지 못할 소중한 기억이 될 것 같다.

최지안(수원 선행초 5) 수원 화성을 실제로 돌아보니 감동받았다. 특히 장안문을 보았을 때 말할 수 없는 어떤 느낌이 밀려왔다. 웅장함이 한양의 정문 숭례문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뛰어났다. 220년 전 조선의 백성들과 정조가 보았던 화성과 현재 우리가 보는 화성의 모습이 똑같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정말로 뜻깊은 하루였던 것 같다.

글=황인철 인턴기자 hwang.inchul@joongang.co.kr,
동행취재=이다진 인턴기자 sojoong@joong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중앙포토

해설=남순희·전승흡 문화관광해설사, 진행=김진형 문화유산국민신탁 연구원, 이동희(서울대 1)·변재우(고려대 1)·구민석(한양대 1) 멘토, 참고도서=『우리아이 첫 수원화성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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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