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커버스토리] 혜경궁홍씨 인터뷰하고 채제공 조사하며 엿본 영·정조 시대

지난 15일, 역사 꿈나무 탐험단(이하 탐험단)은 4개 조로 나누어 경기도 수원 화성을 탐방했어요. 사도세자의 일생을 다룬 ‘사도’ 등의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접했던 영·정조 시대의 유산을 눈으로 확인하는 기회였죠. 하지만 영화·드라마로만 알던 내용은 역사적 진실과 조금 다를 수 있답니다. 그래서 탐험단은 탐방을 마치고 ‘각자 집에서 부족한 부분을 공부해오자’라는 약속을 했어요.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지난 22일, 탐험단은 수원 AK몰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기사 이미지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 있는 정조와 부인 효의왕후 김씨를 합장한 무덤이다. 사도세자 묘소인 융건릉 곁에 있다.

탐험단의 수원 화성 2차 프로젝트는 조별로 맡은 미션에 대해 조사하고 보고 느낀 이야기를 정리하고 서로 나누는 워크숍으로 진행됐습니다. 대학생 멘토들과 함께 준비해 온 자료를 정리하고, 그 자리에서 PPT까지 만들어 발표했죠. 1차 답사 시간에 4개 조에게 주어진 미션은 모두 달랐습니다. 김진형 문화유산신탁 연구원은 정조를 비롯해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 어머니인 혜경궁홍씨, 정약용 등 4명의 역사 인물을 각각 조사해오라고 주문했죠. 이주형(인천 갈월초 6) 단원은 “제가 좋아하는 주제, 특히 정조 임금님에 대해 더 많이 조사하고 싶었다”며 이 4명을 모두 다룬 PPT를 만들어 오기도 했답니다.

조별 토론과 발표 준비는 2시간 동안 이뤄졌어요. 답사에 함께했던 대학생 멘토들도 도왔죠. 탐험단의 눈은 열정으로 빛났습니다. 발표 구성부터 대본까지 하나하나 꼼꼼히 신경 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5분 남았습니다!” 준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외치는 김 연구원의 목소리에 4개 조 모두 분주해졌습니다. 마침내 발표를 시작할 시간이 되었지만 그 순서를 정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어요. 먼저 하겠다고 나서는 친구들이 많았거든요. 가위바위보를 통해 어렵게 1등을 차지한 행운의 조는 사도세자와 정조의 이야기를 준비한 C조였어요.

뒤주에 갇혀 죽은 비운의 사도세자
“훌륭한 왕이었던 정조 임금에게는 누구나 아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바로 아버지인 사도세자에 관한 이야기죠.”

이주형군의 입에선 역적이라는 이유로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의 이야기가 술술 풀려나왔습니다. ‘사도’라는 이름은 ‘생각할 사(思)’, ‘슬퍼할 도(悼)’라는 한자를 썼는데 사도세자가 운명을 달리한 뒤 아버지 영조가 지어줬다고 해요. 일주일 전 화성 답사 당시 C조는 화성 행궁을 돌아보았는데요. 행궁에서 직접 뒤주에 들어가는 체험을 해볼 수 있었죠. 이준서(성남 장안초 5)군은 “막상 들어가 보니 사형보다 더 큰 형벌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정말 끔찍했을 것 같아요”라며 뒤주에 갇혔던 소감을 말하기도 했죠.
기사 이미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에게 올린 옥인.

영조에게는 ‘아들을 죽인 비정한 아버지’라는 낙인이 찍혔지만, 사실 영조 역시 아들 사도세자의 죽음을 몹시 슬퍼했다고 해요. 임성민(성남 장안초 5)양은 “사도세자의 아들로 왕이 되기까지 정조 임금도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고 말했어요. 실제로 정조는 왕위 계승을 반대하는 세력으로부터 갖가지 방해 공작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정조 이야기 들으니 부모님께 죄송
다음 순서는 열의가 남달랐던 B조였어요. B조는 14명의 조원 전원이 무대에 나와 발표를 했어요. 심지어 대학생 멘토까지도요. B조는 멘토를 제외한 모든 조원이 여자였답니다. 변재우(고려대 1) 멘토를 시작으로 14명이 차례로 발표를 이어갔어요. B조가 맡은 주제는 정조. 4개 조 모두 탐냈던 주제죠. 그만큼 정조 임금에 대한 탐험단원들의 사랑은 대단했어요. 신민주(서울 신암초 5)양은 정조에 대한 자료를 만화 형식으로 제작해 오기도 했죠.
기사 이미지

구민석(왼쪽·한양대 1) 멘토에게 혜경궁홍씨에 대해 설명하는 장우진(용인 신곡초 4)군.

기사 이미지

정조와 사도세자에 대해 발표한 신민주(서울 신암초 5)양.

기사 이미지

D조는 ‘혜경궁홍씨와 기자와의 대화’라는 설정으로 발표했다.

노유나(수원 율전초 5)양은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조선 최고의 명당으로 무덤도 옮겨주고 어머니 혜경궁홍씨의 온돌방 온도와 식사 메뉴까지 살필 정도로 살뜰히 챙긴 정조의 효심에 감동했다”며 “정조의 이야기를 들으니 갑자기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는 엄마 말도 잘 듣고 아빠에게 힘든 일도 조금만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라고 솔직한 마음을 내비쳤죠.
기사 이미지

정조의 화성 행차를 기록한 병풍 ‘화성행행도’의 한 장면. 1795년 어머니 혜경궁홍씨의 회갑을 기념해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가 있는 수원을 찾아 성대한 잔치를 연 모습을 담았다.

장안문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어요. 통상 남문이 궁궐의 정문이지만, 장안문은 한양에서 출발한 정조가 화성으로 들어가는 문이었기 때문에 북문임에도 정문이 되었다는 등의 이야기였죠. 지난 답사에서도 배웠던 내용이랍니다. 권나현(용인 심곡초 5)양은 “화성의 정문답게 정조의 모습을 가장 많이 닮아있는 것 같다”며 발표를 마무리했어요. 탐험단이 답사한 수원 화성 건설의 주인공인 정조를 다룬 만큼 주어진 발표 시간 10분을 3분이나 초과했답니다.

10세부터 81세까지, 궁궐의 여인 혜경궁홍씨
“혜경궁 마마님 안녕하세요!”
“응. 그래, 로사 기자야!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니?”
뒤이은 D조의 발표는 혜경궁홍씨와 역사 탐험단 기자의 대화로 색다르게 시작되었어요. 이로사(수원 상촌초 4)양은 기자 역할을 맡았고, 이민지(수원 상촌초 4)양은 정조의 어머니이자 사도세자의 아내인 혜경궁홍씨 역할을 맡았죠. 로사 기자는 “능행차 하실 때 기분은 어떠셨나요?”라며 정조의 능행차에 관한 질문부터 던졌죠.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홍씨는 10세에 세자빈으로 궁에 들어와 81세의 나이까지 왕실의 여인으로 살았어요. 1795년 정조는 혜경궁홍씨의 환갑 겸 즉위 20주년을 맞아 대규모 능행차를 했어요. 효심이 깊었던 정조는 1789년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옮긴 후 수시로 능을 찾았는데, 어머니의 환갑이라는 특별한 날을 맞아 대규모 행렬을 계획한 것이죠. 이를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의 그림을 분석해보니 사람 1505명, 말은 516필이나 되었대요. 그림에서 생략된 인원까지 헤아리면 1800여 명과 말 800필 가량이 된다니 어마어마한 규모죠.

이태규(성남 장안초 6)군은 “평소 혜경궁홍씨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발표 준비 이외에도 여러 자료를 찾아봤어요. 남편을 비극적으로 잃고, 자식도 먼저 세상을 떠나 보내는 등 오래 사셨지만 그만큼 힘든 일도 많았던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했죠.

화성 설계를 맡은 정약용과 공사 책임자 채제공
마지막 순서인 A조의 주제는 화성, 그리고 정약용이었어요. A조는 화성의 성곽을 더욱 꼼꼼히 살펴보았다고 해요. 김현우(용인 상하초 3)군은 “수원 화성을 돌아보니 다시금 정조와 정약용에 대한 존경심이 들었어요. 세종에 버금갈 만큼 뛰어났던 왕을 역사적 장소와 사건을 통해 만나 볼 수 있어서 좋았죠”라고 말했습니다. 답사 때 배웠듯 정약용은 화성 성곽의 설계를 했는데요. 공사 책임자는 당시 영의정이었던 채제공이었습니다. 젊고 유능하다고 이름난 실학자들을 후원한 채제공은 18세기를 대표하는 정승이에요. 세종에게 황희가 있었다면 정조에겐 채제공이 있었다고 볼 수 있죠.
기사 이미지

채제공

기사 이미지

화성행궁 전경.

기사 이미지

정조가 어사대가 있는 화성행궁 득중정에서 활을 쏘고 혜경궁홍씨와 불꽃놀이를 즐기는 ‘득중정어사도’.

A조의 발표를 통해 정약용과 함께 화성 건축을 진행한 채제공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채제공은 ‘서두르지 말 것, 화려하게 하지 말 것, 기초를 단단히 다질 것’이라는 원칙으로 화성을 지었다고 해요. 정약용이 고안한 거중기 등 첨단 기계를 사용한 것은 물론, 원칙을 지켰기 때문에 예상보다 빠르고 안전하게 공사를 마칠 수 있었죠. 유시아(용인 심곡초 5)양은 “서두르다간 성의 기초가 흐트러지고 백성들도 다칠 수 있었는데 이를 모두 생각하신 것 같아 대단하다”고 말했어요.

 
역사 꿈나무 탐험단 워크숍 후기
기사 이미지

왼쪽부터 이주형·이태규 학생.

이주형(인천 갈월초 6) 정조에 대해 공부할수록 ‘정말 백성을 사랑한 임금이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조는 다방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지녔지만 특히 정치적인 능력이 가장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영조의 탕평책을 계승하여 꾸준히 노력한 끝에 붕당정치의 폐해를 없앨 수 있었어요. 인내심과 근성이 정말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태규(성남 장안초 6) 학교에서 이론으로만 배웠던 내용들을 직접 화성을 오르내리며 탐방해보니 색다른 기분이 들었어요. 수원 화성의 구체적인 지형 등은 책만 봐서는 파악하기 어려웠거든요. 화성은 멋있고 자랑스러웠지만, 사도세자가 돌아가셨던 뒤주를 보며 가슴이 아프기도 했어요. 역사의 자랑스러운 부분, 어두운 부분을 동시에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글=이다진 인턴기자 sojoong@joongang.co.kr,
진행=황인철 인턴기자 hwang.inchul@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 woo.sangjo@joongang.co.kr·국립고궁박물관,
진행=김진형 문화유산국민신탁 연구원·이동희(서울대 1)·변재우(고려대 1)·이정필(홍익대 4)·구민석(한양대 1) 멘토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