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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튬폴리머 전지의 강자 코캄의 홍지준 회장] “우리가 솔라임펄스2(지구 한 바퀴 돈 태양광 비행기) 비행의 숨은 공로자죠”

지난 7월 26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의 공항에 비행기 한 대가 내려앉았다. 양 날개의 길이가 72m에 이르는 이 비행기의 이름은 솔라임펄스2. 기름 한 방울 쓰지 않고 오로지 태양광 에너지로만 나는 비행기다. 스위스에서 만든 이 비행기는 지난해 3월 아부다비를 떠난 지 1년 4개월 만에 출발지로 돌아왔다. 태양에너지로만 지구 한 바퀴 도는 세계 최초의 여행이었다. 솔라임펄스2는 그간 아부다비를 출발해 동쪽으로 오만과 인도, 중국, 미국 하와이, 피닉스, 뉴욕, 유럽을 거쳐 다시 아부다비에 돌아왔다. 총 비행거리는 3만8000km. 물론 한 번도 땅에 착륙하지 않고 지구 한 바퀴를 돈 건 아니다. 전체 여정을 17개 구간으로 나눠 짧게는 하루, 길게는 3~4일 밤낮을 날았다.
 
대용량 에너지저장장치 경쟁력 세계 4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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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솔라임펄스2가 긴 여정을 마치고 아부다비 공항에 내려앉는 순간, 지구 반대편 한국 땅에서 감격과 안도의 한숨을 내쉰 사람이 있었다. 그는 경기도 수원의 중소기업 코캄의 홍지준(60) 회장이었다. 이유가 뭘까. 솔라임펄스2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배터리가 바로 코캄의 리튬폴리머 2차전지였기 때문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태양광 비행기에 태양전지만 있다면 빛이 없는 밤에는 날 수 없다. 태양전지가 생산한 전기를 모아두는 배터리가 있어야 빛이 없는 밤에도 하늘을 날 수 있다.

세계 주요 외신들은 솔라임펄스와 두 명의 조종사들의 지구 일주 성공을 일제히 보도했다. 하지만 정작 태양광 비행기가 어떻게 밤을 지새워 날았는지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지난 10월 20일 경기도 수원의 코캄 본사에서 만난 홍 회장은 그날의 기분을 이렇게 기억했다. “솔라임펄스2의 성공은 우리 배터리의 성공인 만큼 너무도 자랑스러웠어요. 하지만 아무도 우리 배터리 얘기를 하지 않아 한편으론 섭섭하기도 했어요.”

연 매출 800억원에 불과한 한국의 중소기업이 만든 배터리가 어떻게 세계 최초로 지구 한바퀴를 돈 스위스 태양광 비행기에 장착될 수 있었을까. 시장조사기관 B3가 밝힌 지난해 3분기 보고서에 나온 전기차 배터리 시장 ‘톱10’(시장점유율 기준)에 한국 기업이라고는 LG화학(2위)과 삼성SDI(5위) 뿐이었다. 다만, 또 다른 시장조사업체 내비건트리서치가 지난해 6월 내놓은 대용량 에너지저장장치(ESS) 분야 경쟁력 보고서를 보면 살짝 힌트가 보인다. 1위 LG화학에 이어 삼성SDI-비야디(중국) 다음으로 ‘코캄’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여기서 경쟁력이란 시장 진출 전략과 생산전략·기술력·판매력·마케팅·유통·품질·신뢰도·가격 등 12개 항목을 평가한 결과다. 마케팅과 전략 등에 열세일 수밖에 없는 한국 중소기업 코캄이 글로벌 대기업들과 종합적인 평가에서 경쟁해 4위에 올랐다는 건, 전체 항목의 평균을 끌어올릴 수 있는 강력한 무언가가 있다는 증거다.

홍 회장에게 그게 뭔가를 물었다. 그는 한마디로 “기술력”이라고 자신했다. 사실 코캄은 리튬폴리머 전지의 원조 격이다. 단순 리튬이온 배터리가 대부분이던 1998년 미래 차세대 2차 전지인 리튬폴리머 전지를 독자 기술로 개발하고 특허까지 받았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액체 상태의 전해액을 단단한 금속 재질로 감싼 형태다. 때문에 전해액이 흐르거나 폭발할 위험이 있다. 리튬폴리머 배터리는 리튬이온과 원리는 같지만 전해질을 젤 형태의 고분자로 바꾸고, 단단한 금속 대신 과자봉지 같은 파우치를 쓴다. 덕분에 리튬이온보다 안전하고, 에너지 효율도 더 높다. 다양한 형태와 크기로 제조가 가능하고 무게도 더 가볍다. 단점이라면 리튬이온보다 가격이 다소 비싸다는 것이다.

코캄의 리튬폴리머는 외국의 군(軍)에서 먼저 찾아 쓴 배터리다. 성능 하나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을 인정받는다는 얘기다. 2008년 이미 미국과 영국, 독일 등의 해군이 잠수함 등 무기체계 추진체용으로 쓰기 시작했다. 한국군도 이내 따라왔다. 2008년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장거리 대잠어뢰 ‘홍상어’를 개발할 때 얘기다. ADD는 막판에 배터리 문제에 봉착했다. 당시 국내 대기업이 만든 배터리를 어뢰 추진체로 쓰고 있었는데,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배터리의 성능이 뚝 떨어졌다. 어느 날 ADD 연구원이 소문을 듣고 코캄을 찾아왔다. 홍 회장은 “수원까지 네 번이나 찾아와 도와달라고 부탁을 하기에 ‘1주일 안에 해결해주겠다’고 공언을 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이미 미 해군 잠수함에서 코캄 배터리를 쓰고 있던 시절이었기에 홍 회장은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었다. 홍상어에 맞는 배터리를 만들어 실험했더니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어뢰에 리튬폴리머 배터리를 쓴 건 그때가 세계 최초였다. 2012년에는 영화 [타이타닉]의 감독 제임스 캐머런이 1인 잠수정 ‘딥시 챌린저’에 코캄 배터리를 탑재해 깊이 1만863m의 마리아나 해구 바닥까지 내려갔다. 이쯤 되니 왜 스위스의 태양광 비행기 솔라임펄스2가 코캄 배터리를 썼는지 이해가 됐다.

홍지준 회장이 대체 어떤 경력의 인물이기에 이런 배터리를 개발할 수 있었을까. 홍 회장은 1979년 서울대 화학교육학과를 졸업했다. 첫 직장은 ㈜효성의 모태 기업인 동양나일론. 대학 시절 전공이 화학인지라, 입사 하자마자 회사가 울산에 건설하고 있던 폴리에스터 합성 공장에 배치됐다. 동양나이론이 79년부터 생산하기 시작한 페트병이 당시 홍 대리의 손에서 나왔다. 이후 현대전자의 미국 실리콘밸리 지사를 거쳐, 리커만코리아라는 독일계 무역회사에서 기계 엔지니어링 영업을 했다. 기술을 바탕으로 한 영업은 요즘 말로 ‘대박’이었다. 리커만코리아 연간 판매량의 65%를 혼자 해치웠다. 홍 회장은 “그때 내가 세일즈에 자질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며 “그때 내 연봉이 지금 대치동 은마아파트 10채 값은 됐다”고 말했다. 10년 직장생활을 끝으로 89년 창업에 나선 계기였다. 그는 산업용 기계를 수입·수출하는 무역회사 코캄엔지니어링을 설립했다. 코캄(Kokam)은 ‘한국(Korea)’과 ‘전투’를 뜻하는 독일어 ‘Kampf’를 합성해 지은 이름이다. ‘전투하듯 영업하는 한국 기업’이란 뜻이란다.
 
영화 [타이타닉] 촬영용 1인 잠수정도 코캄 배터리 탑재
1998년, 남들은 외환위기로 고초를 겪느라 정신이 없을 때, 그는 리튬폴리머 배터리를 생각해냈다. 리륨폴리머 배터리가 개념으로만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개발은 쉽지 않았다. 그는 “7년 간 악전고투를 했다”고 표현했다. 시작은 리모트콘트롤(RC) 비행기용 배터리였다. 비행기마다 모양이 다르고 무게도 다른데다, 강력한 힘이 필요하니 리튬폴리머 배터리가 제격이었다. 성공은 뜻하지 않은 우연에서 찾아왔다. 2004년 RC 비행기용 배터리가 기체 본체와 잘 맞지 않는 바람에 리튬폴리머 파우치를 비정상적으로 얇게 만들었다. 미국의 여러 대학에 영업용 배터리 샘플을 뿌릴 때였는데, 얇은 파우치의 배터리를 쓴 RC비행기가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얇은 파우치에서 기존 배터리보다 40배나 많은 힘이 뿜어져 나온 덕분이었다.

당시 RC비행기는 대부분 엔진을 쓰던 때였다. 매니어들 사이에 코캄 배터리 소문이 쫙 퍼졌다. 이후 3년 만에 RC비행기 시장에서 엔진이 사라지고 코캄 배터리가 그 자리를 모두 차지했다. 코캄 성공 신화의 시작이었다. 외국 RC비행기 매니어 중에는 관련 산업의 전문 엔지니어가 많았다. 이들이 소문을 내기 시작하니 세계 곳곳에서 대리점을 내겠다는 이들이 코캄을 찾아왔다. 코캄은 전체 매출의 80%를 해외에서 올리고 있다. 지난해에는 800억원 매출에 38억원의 당기순익을 올렸다. 글로벌 대기업인 LG화학과 삼성SDI가 배터리 부문에서 아직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과 대조되는 실적이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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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