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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실력 대신 학력을 묻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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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근
하와이대 사회학과 교수

한국에서는 곧잘 학위 논란이 터지곤 한다. 이번에는 저명한 문학평론가인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 얘기다. 관련 기사들에 따르면 도정일 교수는 하와이대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은 것은 맞지만, 학위를 받은 적이 없으면서도 이 사실을 숨기고 그동안 박사로 행세해 왔다는 것이다. 도정일 교수는 최근에 와서 박사 학위를 공식적으로 받지 못한 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학력을 ‘박사 수료’로 정정했다고 했다. 본인이 정정했다고 하니 어쩌면 이 문제는 해결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번 일을 보면서 깊은 씁쓸함을 느낀다. 지난해 가을, 하와이대의 원로 동료 교수인 만프레드 헤닝슨(Manfred Henningsen)이 나를 찾아왔다. 도 교수의 박사논문 심사위원 5명 중 하와이대에 남아 있는 유일한 사람인 그에게 어떤 한국인이 도 교수의 학위 건을 e메일로 문의해 왔다는 것이다. 헤닝슨 교수는 자기가 도정일의 심사위원이었고, 논문은 최종심사(디펜스)를 통과해 심사위원 5명 전원이 승인 사인을 했노라고 확인해 주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이 사람은 몇 차례나 메일을 보내 계속 무슨 꼬투리를 잡으려고 해서, 마침내 “당신은 비겁하게 자기 이름과 소속도 밝히지 않으면서 왜 이런 마녀사냥을 하느냐”고 야단을 치고 다시는 답변하지 않겠다고 써 보냈다고 했다. “왜 한국인들은 이런 문제를 가지고 이 야단들이냐. 너무 유치하지 않으냐?”고 묻는 미국 동료 교수 앞에서 창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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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현직 하와이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만큼 사실을 정확히 알려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미국 대학 박사과정의 마지막 단계는 완성된 논문에 대해 주임교수가 승낙하면 논문구두심사회(oral defense)를 개최한다. 논문 제출자는 심사위원들과 다른 참관인들 앞에서 발표를 하고 질의에 응답하는데, 여기에서 통과되면 실질적으로 박사 학위를 받는 것이나 다름없다. 도정일 교수는 이 단계를 통과했다. 그의 경우 남은 일은 각주와 참고문헌 정도를 보완해 최종본을 제출하는 일이었다. 요즘처럼 인터넷과 전자색인이 발달한 세상에서는 2~3일이면 끝났을 테지만, 1984년 논문 통과 후 귀국해 바쁘게 강의를 하고 있던 상황에서는 그리 용이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최종본이 제출되지 못했고, 서류상으로는 학위를 취득하지 못한 것으로 남게 되었다. 이런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 데 대해 도 교수는 “내가 게으르고 바보 같아서 발생한 일”이라고 고백했다 하는데, 정말 그렇지 않은가? 몇 년간 그 고생을 하며 논문을 써서 통과하고도 그 작은 일 하나를 끝내지 못해 지금 이런 수난을 당하다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간 이어진 보도들을 접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지만 두 가지만 지적하고 싶다. 첫째, 한국에서 도덕적 흠집 내기가 너무 유행하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한 개인의 도덕적인 결함이 조금이라도 나타나면 그 약점을 꼬투리 잡아 계속 모멸감을 주고 상처 입히며 통쾌해하고, 또 많은 사람이 그것을 즐기는 풍조는 없는지 의심스럽다. 물론 도덕성은 중요하다. 그러나 도덕적 흠집 내기가 유행인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한 개인의 약점을 가지고 그 사람의 정치적 성향뿐만 아니라 그와 비슷한 이데올로기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 전체를 공박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도 도가 지나친 행위다. 불행하게도 현재 한국 사회는 그동안의 눈부신 경제발전과 상관없이 불만과 좌절감이 팽배하고 이념적으로 양분화된 사회로 비쳐진다. 그럴수록 문제의 근원을 정확히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터인데, 이렇게 개인적 차원에서의 흠집 내기에 열중한다는 것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둘째, 학위에 대한 집착증이다. 어느 매체의 필자에 의하면 “도 교수가 한국 사회에서 갖고 있는 명예, 위치, 신분 등은 그가 대표이력에 즐겨 명시해 온 대로 ‘박사’이기 때문에 보장받은 것이다”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도정일 교수가 출판한 많은 책과 학술적 활동은 아무 가치가 없다는 말인가? 학위만 있으면 학문적 자질과 상관없이 대우를 받아도 좋은 것인가? 박사 학위를 소지하고서 그 학위를 이용해 이기적인 활동만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들에겐 아무 하자가 없는 것인가? 사실 내가 보기에 한국 사회는 일류대를 나오거나 박사 학위를 소유한 사람들에게 너무나 많은 우월권을 주고 있다. 그리고 이 고급 문화자본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그것을 이용해 자기 이익 챙기는 일에 열중하거나 그것을 배경으로 남을 깔보고 배척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 모습이 보인다. 성숙한 사회라면 한 사람의 진가를 정확히 따지고 그가 과연 지식인으로서 정말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물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식인 자신들의 책임 있는 자세가 절대적으로 요구되지만 언론의 역할도 막중하다. 지엽적이거나 비생산적인 문제를 확대 재생하기보다 좀 더 중요하고 건설적인 문제들에 시선을 집중해 공론화하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구해근 하와이대 사회학과 교수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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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