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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복 1001벌, 사제총 든 '외로운 늑대'와 맨몸으로 맞설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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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 접속한 뒤 ‘making gun’이라고 치면 3590만 개의 동영상이 나온다. 동영상에는 사제 권총·소총을 만드는 방법과 사용법이 자세히 담겨 있다. [사진 프리랜서 공정식]


지난 19일 저녁 서울 강북구 오패산터널 인근에선 외국에서나 볼 법한 총격전이 벌어졌다. 성병대(46)가 미리 준비한 총을 10여 발 쏘면서 번동파출소 김창호(54) 경감이 순직했고 시민 이모(71)씨가 다쳤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공포탄 1발과 실탄 3발로 대응 사격을 했고 시민들의 도움을 받아 성씨를 검거했다. 성씨가 범행에 사용한 건 쇠파이프와 나무토막을 테이프로 감은 불법 사제총이었다. 경찰은 그의 차량과 가방 등에서 사제총 17정, 사제 폭발물 1개를 찾아서 압수했다.
이 사건은 한국이 더 이상 ‘총기 청정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성씨는 21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전에 “유튜브를 통해 폭약 원리를 배웠고 청계천·을지로에서 재료를 사서 (총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성씨 말처럼 사제 폭탄이나 총기를 만드는 법은 인터넷에 상세히 올라와 있어 누구나 응용할 수 있다. 실제로 기자가 유튜브에서 ‘총 제작’을 검색했더니 동영상 8만3000여 개가 올라왔다. 3D 프린터의 보급도 사제총 제작을 용이하게 만든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250여 건의 불법무기 적발이 이뤄졌다. 인터넷에 총기 등을 판매한다는 글을 올린 경우가 106건으로 가장 많았다. 불법 총기 관련 사고는 2013~2014년엔 한 건도 없었지만 지난해 2건, 올해 3건으로 증가세다. 경찰청 관계자는 “총기 제조법 등이 올라온 인터넷 사이트는 대부분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어 국내에서 수사하기 어렵다. 현재 국내에서 유통 중인 사제총·폭탄이 얼마나 되는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엽총 쏘는데 테이저건만 갖고 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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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으로부터 총기가 유입될 수 있는 구멍도 크다. 외국 선원·화물의 출입이 잦은 부산항을 중심으로 총기가 밀거래된다는 이야기는 공공연하게 나온다. 지난 7월엔 일본 야쿠자 조직원이 권총과 실탄을 화물선에 숨긴 뒤 부산항을 통해 들여온 사실이 경찰에 뒤늦게 적발되기도 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전국 공항과 항만, 국제우편물 등을 통해 밀반입하려다 적발된 총기류는 2013년 103건(140정)에서 지난해 128건(180정)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컨테이너 전수조사가 사실상 불가능한 데다 통관 인력의 한계가 있어 단속이 쉽지 않다.

경찰에 공식 등록된 총기도 언제든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국내 총기 소지 건수는 사냥에 쓰는 엽총과 공기총 등을 중심으로 14만3643정(지난해 기준)에 달한다. 특히 문제가 되는 건 허가가 취소됐지만 수거되지 않은 총기들이다.

김정우(군포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국감 자료에 따르면 소지자 사망, 도난·분실에 따른 총기 미수거 사례가 780건(8월 기준)이나 된다. 김 의원은 “총기 미수거는 경찰의 총기 관리에 허점이 드러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총기 사고는 해마다 끊이지 않고 있다. 2012~2015년에 46건이 발생해 25명이 숨지고 30명이 다쳤다. 특히 전체의 43%(20건)는 ‘고의’로 인한 사고로 나타났다. 지난해 2월 경기도 화성시에서 전모(75)씨가 재산분할 갈등을 겪던 형과 형수, 현장에 출동한 이강석 남양파출소장을 엽총으로 살해하고 자살한 게 대표적이다.

총기를 내세운 ‘외로운 늑대’가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외로운 늑대는 특정 단체와 관계없이 사회에 분노를 느끼는 개인이 벌이는 테러를 뜻한다. 혼자서 움직이는 데다 테러 모의가 드러나는 경우가 적어 사법기관이 사전 징후를 포착하기 어렵다.

성씨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적어도 2~3명의 경찰을 죽이겠다”고 올리고 범행 두 달 전부터 총기를 독자 제작하는 등 외로운 늑대와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이만종 호원대 법경찰학과 교수는 “앞으로 불법 사제총을 이용한 모방범죄 등이 추가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외로운 늑대가 스스로 총기를 제작하거나 밀반입해 벌이는 범죄에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총기 사용 위험은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정부의 인식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경찰조차 기초적인 장비부터 미흡하다. 범죄자와 맞닥뜨리는 경찰들이 언제든지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상태다. 현재 경찰이 전국적으로 보유한 방탄복은 1001벌에 불과하다. 그나마 있는 방탄복도 오래된 데다 무게가 10㎏ 정도로 착용하기 불편하다. 상반신에만 착용하는 방탄조끼는 정확한 보급량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열악한 장비 상황은 오패산터널 총격 사건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숨진 김창호 경감이 근무했던 번동파출소(직원 36명)에는 방탄복이 한 벌도 없었고 구매한 지 14년 지난 방탄조끼만 하나 있었다. 성씨는 총격 당시 오토바이용 헬멧을 쓰고 서바이벌 게임용 방탄복까지 입는 등 치밀한 준비를 했다. 경찰이 쏜 실탄을 배에 맞았지만 방탄복 덕분에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 반면 맨몸으로 출동한 김 경감은 왼쪽 어깨 아래에 관통상을 입고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지방 경찰은 장비·여건 더 열악해
지난해 화성에서 발생한 엽총사고도 장비 문제로 인명 피해를 키웠다. 당시 현장에 출동한 이강석 소장은 방탄복을 착용하지 않은 데다 실탄이 든 권총 대신 테이저건(전기충격기)만 들고 갔다 변을 당했다. 그는 무방비 상태로 엽총을 든 범인과 대화를 시도하려 했지만 어깨에 총알을 맞고 순직했다.

경찰청은 미국 수준으로 성능을 업그레이드한 새 방탄복을 도입할 계획이다. 하지만 예산 문제로 일선 순찰차와 파출소까지 전부 보급하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충남에서 근무하는 김모(53) 경감은 “지방은 서울보다 각종 장비 수급 사정이 열악한 편이다. 그나마 있는 방탄복들도 너무 무거워서 입고 출동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총기 사용 범죄자에 대응하는 매뉴얼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현행 대통령령에 따르면 경찰의 총기 발사 조건에 대한 규정만 나와 있다. 권총을 발사하기 전 구두 경고나 공포탄 사격을 할 수 있으며 경찰관이 급습을 받거나 시민의 생명이 위험할 경우 처음부터 실탄을 쓸 수 있다는 식이다. 그 외에 총기를 든 범죄자가 나타나면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지침은 전혀 없는 상태다. 지난해 국정감사에 나왔던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은 “총기 사건에 대한 별도의 매뉴얼은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무허가 총기 제조·소지 시 형량을 강화하는 쪽으로 관련 법을 개정하겠다고 21일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지금이 총기 관리 시스템을 강화할 적기라고 입을 모은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일선 경찰들의 총기 교육·훈련을 강화하고 위급상황 시 총기 사용을 더 적극적으로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만종 교수는 “외국에서 밀반입될 수 있는 총기류를 미리 걸러낼 필요가 있다. 최첨단 검색 장비와 인원을 보강하고 외국 정보기관과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종훈·윤정민·김나한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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