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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종연횡 앞두고 손학규·안철수 주도권 잡기 신경전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20일 정계 복귀를 선언했다. 그는 최근 펴낸 저서에서 “(지난 8월 안철수 전 대표와 만나) 힘을 합쳐 10년 이상 갈 수 있는 정권 교체를 하자”고 제안했다고 소개했다. 박종근 기자


또다시 ‘시베리아’로 나왔다. 2년2개월 동안의 전남 강진 칩거를 끝내고 20일 정계 복귀를 선언하며 더불어민주당을 전격 탈당한 손학규 전 민주당 상임고문 얘기다. 2007년 17대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을 탈당,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당적을 옮기며 손 전 고문은 “시베리아로 나가겠다”고 표현했다. 그처럼 비장한 승부수를 띄웠지만 17, 18대 대선 당내 경선에서 연거푸 고배를 들었고 2014년 재·보선 패배를 끝으로 정치무대에서 사라졌다. 그런 그가 20일 정계 복귀 선언과 함께 “당적을 버리겠다”며 제2의 시베리아행을 택한 것이다. 대선을 앞둔 한국 정치지형에서 손 전 고문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중앙SUNDAY가 짚어 봤다. 


 


20일 정계 복귀 선언문에서 손 전 고문이 힘을 준 부분은 두 곳이다. 개헌이 그중 하나다. 그는 “1987년 헌법체계가 만든 제6공화국은 명운을 다했다. 30년 동안 조금씩 수렁에 빠진 리더십은 이제 완전히 실종돼 누가 대통령이 돼도 더 이상 나라를 끌고 갈 수 없다”고 말했다. “명운이 다한 제6공화국의 대통령이 되는 건 제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며 “제7공화국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하나의 강조점은 ‘새판 짜기’다. “정치와 경제의 새판 짜기에 저의 모든 것을 바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당적도 버리겠다”고 했다.


이를 두고 손 전 고문이 ‘제3지대’행을 공식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와 정의화 전 국회의장 등이 “개헌에 뜻을 같이하는 인사들이 기존 3당의 틀 밖에서 헤쳐 모여야 한다”며 제3지대론을 주장해 온 것과 맥이 닿기 때문이다.


실제로 측근들에 따르면 손 전 고문은 정계 복귀 직전 김 전 대표, 정 전 의장과 수시로 연락하며 향후 계획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 전 고문의 한 측근은 “손 전 고문이 지난달에도 김 전 대표를 만났다고 들었다”며 “미리 알고 있던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전격적으로 탈당 결정을 한 것도 이런 교감을 통해 내린 결론으로 안다”고 전했다.


[틀 갖춘 제3지대 거대 세력으로 부상할까]


손 전 고문이 함께하면서 ‘제3지대’는 기본적 틀을 갖추게 됐다. 그간 김 전 대표와 정 전 의장 등이 적극적으로 제3지대를 띄워 왔지만 자타 공인 대선 후보감이 합류한 건 새로운 전기로 볼 수 있다. 중국에서 유방의 한나라에 한신이 합류하고, 유비 진영에 제갈량이 들어온 것에 비유할 만하다. 손 전 고문의 결정에 따라 향후 정운찬 전 총리의 합류 여부도 주목받고 있다.


손 전 고문이 국민의당의 품에 안길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가 최근 출간한 저서 『나의 목민심서-강진일기』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강진을 찾아온 안철수 전 대표와 만나 “우리 둘이 힘을 합쳐 10년 이상 갈 수 있는 정권 교체를 하자”고 제안했고, 안 전 대표는 그에게 국민의당으로 오라면서 “새로운 당명을 포함해 모든 당 운영에 대해 손 전 고문에게 열어 놓겠다”고 화답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도 21일 “당적을 버린 손 전 고문에게 국민의당과 함께하자고 거듭 제안을 했다”며 영입의사를 재확인했다.


그러나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22일 “개헌 이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많은 일이 있다”며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고 말했다.


안 전 대표는 또 “총선 때 민의가 국민의당을 제3의 길의 주인으로 세워 주신 것”이라며 “불과 반년 전으로 그 민의를 무시할 수 없다”고도 했다. 정계 개편의 주도권을 국민의당을 중심으로 자신이 쥐고 가겠다는 의미다. 안 전 대표는 손 전 고문이 저서에서 안 전 대표에게 “우리 둘이 힘을 합쳐 10년 이상 갈 수 있는 정권 교체를 합시다”고 한 부분에 대해서는 “10년, 20년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풀어 나가야만 겨우 풀 수 있는 문제가 산적했기 때문에 그런 뜻에서 공감을 했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손 전 고문이 우선 기존 정당 밖 제3지대에서 세력을 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손 전 고문과 정 전 의장 양쪽 모두와 가까운 한 인사는 중앙SUNDAY와 통화에서 “두 분과 김 전 대표를 중심으로 개헌에 동의하는 인사들이 모여 하나의 축을 형성한 뒤 국민의당과 ‘일대일 합당’하는 방식을 우선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두 달 전만 하더라도 제3지대론은 소설에 가까운 얘기였지만 결국 조금씩 현실화되고 있다”며 국민의당과 합당 시나리오의 현실화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국민의당 안에서도 여기에 호응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안 전 대표의 측근으로 통하는 이태규 의원은 “국민의당도 여러 구성원의 하나로 참여하는 다른 어떤 운동장을 만들어 거기서 경쟁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친문 주류 민주당에 원심력 생길까]


야권에서 국민의당을 포함해 하나의 거대한 세력이 형성된다면 그 대척점엔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있다. 손 전 고문이 정계 복귀 D데이를 앞당긴 것을 두고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회고록 파문으로 문 전 대표가 곤경에 빠진 현시점을 놓치지 않으려 한 것”이란 해석이 나올 정도로 문 전 대표는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경쟁 상대다.


문 전 대표는 손 전 고문의 탈당 선언에 “뜻밖이고, 뭐라고 말씀드릴지 모르겠다”고 짧게 반응했다. 친문재인 성향의 추미애 대표 체제가 들어서며 문 전 대표의 당내 영향력이 더욱 강고해진 상황에서 손 전 고문의 탈당이 정계 개편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이찬열 의원이 손 전 고문을 따라 21일 탈당했고 김병욱·박찬대 의원 등 다른 친손학규 의원들의 추가 탈당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손학규 탈당의 불똥이 어디까지 튈지 모른다”며 “문 전 대표로선 당의 울타리 안에 우군으로 묶어 둘 수 있었던 대상이 경쟁자가 돼 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비문 대선 주자인 박원순 서울시장 측 한 인사도 “친문당으로 고착화된 상황에서 당내 세력화가 어렵다고 손 전 고문이 판단한 것”이라며 “박 시장과 이후 다시 만날 수도 있다고 본다”고 했다. 제3지대에서 ‘재회’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손 전 고문이 내세운 개헌 이슈는 친문이 주류인 민주당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김종인 전 대표는 현재 박영선 의원 등 당내 비문 성향 의원들을 광범위하게 접촉하며 개헌론을 띄우고 있다. 박 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비리를 보면서 국민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더욱 절감하고 있다”며 “앞으로 개헌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미 “제7공화국으로 가야 한다”며 개헌을 주장해 온 김부겸 의원도 당내 친문계의 패권적 행태가 노골화될 경우 개헌을 명분으로 제3지대에 합류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손 전 대표의 탈당으로 민주당 대선 경선 흥행에도 차질이 예상되면서 박병석 전 국회부의장 등 일부 중진이 내세우는 통합경선론도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두 야당 포함, 야권의 모든 대선 주자가 모여 ‘원샷 경선’을 치르자는 주장이다. 통합경선 지지자들은 박 전 부의장 주재로 최근 한 차례 모임을 했고 조만간 구체적인 통합경선 방안을 확정 지을 계획이다.


문 전 대표가 위기의식을 느껴 본격적으로 대응책 마련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있다. 문 전 대표를 지원하는 전문가 그룹에선 최근 “대선 승리까지는 지지율이 부족하다. ‘플러스 알파’ 지지율 확보를 위해 여야를 막론하고 중도 또는 중도보수 성향의 대선 주자급 인사와 손을 잡아야 한다”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대선까지 남은 가장 큰 변수를 꼽는다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행보다. 대다수 정치권 인사가 그의 대선 도전을 상수(常數)로 보고 있지만 당초 친박근혜계 후보가 될 것이란 예측과 다른 가능성들이 제기되고 있다.


가장 부각되는 것이 반 총장과 안 전 대표, 손 전 고문 등이 손을 잡는 제3지대 연대론이다. 분권형 개헌에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진 반 총장과 개헌을 매개로 제3지대에서 함께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김종인 전 대표는 사석에서 “반 총장이 내년 초 귀국해야 대선판이 정리된다”며 “지금은 문 전 대표가 잘나가는 것 같지만 반 총장이 들어오고 나면 어떨지 한번 보라”고 말했다. 또 “반 총장도 (분권형) 개헌에 긍정적일 것”이라며 개헌을 고리로 한 연대 가능성을 주목했다. 이태규 의원은 “반 총장이 중도를 지향하거나 ‘한국 사회 변화를 위해서는 제3지대에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안 전 대표와 같은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종인 “반 총장 귀국해야 대선판 정리”]


한 새누리당 중진 의원은 “제3지대에서 반 총장과 손 전 고문이 경선을 치른다면 여야를 아우르는 이미지가 조성되면서 흥행에 대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며 “그렇게 된다면 새누리당 입장에선 재앙”이라고 했다.


반 총장이 여당, 특히 친박 주류의 지원을 받는 대선 후보로 자리 잡는다면 당내 비박 후보들의 거취에 유동성이 커질 수 있다. 김무성 전 대표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분권형 개헌을 위해선 김종인 전 대표와도 손을 잡을 수 있다”고 했다. 당내 주류가 개헌 불가 입장을 굳힌다면 자신이 최고 가치로 내세운 개헌을 위해 제3지대로 뛰어들 명분이 생기는 것이다.


유승민 의원은 “보수 개혁을 위해 탈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고 있다. 하지만 지난 총선 공천 배제 파동 때 이미 탈당한 전력이 있는 그가 대선 국면에서 또다시 노골적인 불공정 경선에 직면한다면 고민이 깊어질 것이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도 제3지대론자들이 끌어들이고 싶어 하는 여권 ‘잠룡’ 중 한 명이다. 원 지사는 19일 “새누리당과 민주당, 국민의당은 공통점이 많아 ‘대연정 팀워크’ 정치가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창권 한길리서치 대표는 “중도보수 이미지를 가진 손 전 고문이 제3지대에서 파이를 키운다면 새누리당 비박 주자들이 합류하는 데 거리낌도 줄어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충형 기자 ad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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