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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과 집중, 실용주의 … 전통 지키기보다 실익 우선시


곧 유·무형의 변화가 시작된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삼성 얘기다. 변화의 진원지는 이재용(48)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이달 27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에서 열리는 삼성전자 임시주주총회에서 그의 등기이사 선임안이 다뤄진다. 부친인 이건희(74) 삼성전자 회장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지 2년 반 만의 일이자, 삼성전자 입사 25년 만의 일이다. 삼성은 이 부회장의 이사회 참여를 “책임경영의 일환”이라고 설명한다. 삼성가(家) 후계자로 삼성의 대표회사인 삼성전자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대해 책임지겠다는 신호라는 것이다. 시장은 좀 다르게 해석한다. 이 부회장이 도전을 택했다는 것이다. 오랜 경영 수업을 끝내고 경영자로서 시장의 평가를 받겠다는 시그널이라는 것이다. 과연 이재용 부회장은 어떤 삼성을 만들어갈 것인가. 세대 교체를 완성해가는 삼성은 어떤 기업으로 바뀔 것인가.


 

일러스트 박용석 기자 parkys@joongang.co.kr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알려진 바는 많지 않다. 공개 석상에서 자신의 생각을 밝힌 적이 드문 탓이다. 이건희 회장의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 드러난 아들 재용의 면모는 이렇다. ‘나는 이따금 아이들과 탁구를 친다. 하루는 아들이 평소 사용하던 펜홀더형 탁구채를 셰이크핸드형으로 바꿨다. 웬일이지 하면서 게임을 했는데 평소 점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점수 차로 지고 말았다. 게임을 끝낸 후 아들과 얘기를 하며 나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를 넘어서기 위해 평소 쓰던 탁구채를 바꿔 연습해서 도전할 정도로 승부욕이 강하다는 뜻이다.”


삼성을 일으킨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사업보국(事業報國)’을 신념으로 삼았다. 전후 헐벗은 나라에서 설탕과 비료 국산화에 도전했다. 전자산업과 반도체, 금융까지 발을 뻗은 그가 1987년 갑작스레 세상을 뜨자 3남이던 이건희 회장이 경영권을 받았다. 이 회장은 회장 취임 후 6년간 삼성 안팎을 살폈고, 93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며 신경영을 선언한다. 남의 것을 가져다 베끼는 데 그치지 않고 품질을 높여 세계 1위의 회사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의 꿈은 이뤄졌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인 D램(92년)을 시작으로 낸드플래시(2002년), TV(2006년), 스마트폰(2011년)까지 세계 1위 자리에 올랐다. 전자산업으로 세계를 제패한 삼성이 위기를 맞은 것은 2014년 5월이었다. 이 회장이 쓰러지면서 70년 넘게 이어져오던 삼성의 경영 스타일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회장실을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던 삼성은 구심점을 잃고 겉돌았다. 삼성 안팎에선 이 부회장이 회장직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는 부친의 와병을 이유로 고사했다.


한 언론사가 전한 수년 전 이 부회장의 말이다. “모든 아들의 롤모델은 아버지다.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고 싶지만 어렵다. 아버지를 흉내 내며 공부하고 있지만 아무리 배워도 큰 틀을 제시하는 경지까지 갈 수 있을지 자신 없다.” 이건희 회장의 큰 그림자 아래에서 고민하던 그가 왜 삼성전자 등기이사 요청안을 수락했을까. 삼성 관계자는 “이 부회장 본인의 의지가 컸다”고 말했다. “삼성을 포함해 소위 한국 재벌로 대표되는 기업들이 경영을 불투명하게 한다는 지탄을 받아왔는데 이 부회장이 여기에서 벗어나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춘 기업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컸다”는 것이다. 지난해 삼성은 지주사 격인 통합 삼성물산을 출범시키면서 행동주의 투자로 유명한 사모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공격을 받았다.


[‘빠른 추격자’에서 ‘시장 개척자’로]


시장의 관심은 이 부회장이 어떤 리더십을 보일지에 쏠려 있다. 공교롭게도 삼성전자는 야심작 갤럭시노트7 발화 사건으로 초유의 위기에 빠져 있다. 고동진(55) 삼성전자 사장(무선사업부장)의 거취는 이 부회장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시험대다. 일각에서는 삼성의 오랜 경영 유산인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있다’는 신상필벌(信賞必罰)을 들어 고 사장의 경질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삼성 관계자는 “다른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고 전한다. 이 인사의 전언이다. “애플 신제품이 기술적 측면에서 혁신이 없다는 소식을 듣고 삼성전자는 승산이 있다고 봤다. 홍채 인식과 같은 신기술로 도전을 했다. 배터리 용량을 키우는 과정에서 일부 임계점을 건드린 듯한데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이를 계기로 삼성은 큰 교훈을 얻었다. 기술이 아무리 혁신적이라 할지라도 안전성을 100% 담보할 수 없다면 기술이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삼성 고위 관계자는 “남을 따라가려다 실수한 게 아니라 스스로 앞서 혁신을 이루려다 사고가 난 것인 만큼 수장(고동진 사장)을 바로 벌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사고가 났다고 기회를 주지 않으면 앞으로 누가 삼성에서 혁신의 리스크를 짊어지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갤럭시노트7 사태의 수습에도 이 부회장의 입김이 닿고 있다. 원인 규명에 들어간 삼성전자는 독자적으로 발화 원인 발표를 하지 않기로 했다. 회사 관계자는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미국 제3의 검증기관과 함께 원인을 밝히고 교차검토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갤럭시노트7 사태와 관련해 직접 사과할 가능성도 작게 점쳐진다. 스마트폰 사업의 리더는 고동진 사장이라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이 부회장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로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은 그가 병원을 운영하는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이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삼성의 미래는 선대 회장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이 부회장의 스타일로 가늠해볼 수 있다. 지난 2년간 부친의 공백기를 메운 이 부회장은 과감히 사업을 정리하는 초강수를 썼다. 화학회사인 삼성종합화학과 방위산업체인 삼성테크윈을 포함한 4개 회사를 2014년 한화에 팔았다. 이듬해엔 이병철 회장이 세운 한국비료를 모태로 한 삼성정밀화학 등을 롯데에 넘겼다. 최근 불발된 제일기획 매각까지 일련의 움직임이 시사하는 바는 컸다. “잘할 수 없는 것은 과감히 정리한다”는 것이었다. 사업 조정 여파로 2014년 말 기준(삼성의 15개 상장사 기준) 366조원에 달하던 삼성 매출은 지난해 말 357조원으로 줄었다. 직원도 22만3000명에서 21만6000명으로 감소했다.


[그룹 일괄 인사 대신 계열사 수시 인사로]


삼성은 이 같은 변화를 이 부회장의 ‘선택과 집중 전략, 실용주의’로 설명한다. 이 부회장은 기존에 답습돼 오던 전통을 지키기보다 실익을 더 우선시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과거 삼성이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로 성장을 거듭했다면 이제는 시장의 판도를 바꿔놓는 개척자(first mover)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전했다. 이 부회장이 “‘글로벌 기업’으로서 지속 가능한 체계를 만들고 싶어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삼성전자를 필두로 이사회 중심 경영 구조를 안착시키고 인력 채용과 조직문화를 글로벌 기업답게 바꾸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계열사 사장단에게 국내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해외 현장으로 나가 실시간으로 실제 시장을 느끼면서 현장 직원들과 일하라고 말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인사는 “일률적으로 그룹이 사장단 인사를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각 계열사 상황에 맞게 자율적으로 수시 인사를 실시하도록 인사·지휘 체계도 바꿀 것”이라고 밝혔다.


신규 투자나 기업 인수합병(M&A)을 한 부분에서도 이 부회장의 관심사는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물인터넷 회사인 ‘스마트싱스’(2014년), 삼성페이의 모태가 된 모바일 결제회사 ‘루프페이’(2015년), 최근 삼성전자가 사들인 인공지능(AI) 회사 비브랩스가 대표적이다. 회사 관계자는 “최근 2년 사이 삼성이 투자하거나 인수한 회사의 금액대는 2000억~3000억원 사이로 이 부회장이 꼼꼼히 들여다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바이오와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자동차 전자장치(전장) 사업, 전기차 배터리와 같은 신(新)수종 사업과 관련한 투자만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삼성의 미래를 점칠 수 있는 대목이다. 삼성 금융 계열사 관계자는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금융 계열사는 영국 프루덴셜이나 미국 뉴욕라이프처럼 보험+자산 사업 구조로 바꿔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해묵은 숙제인 지배구조 개편은 넘어야 할 산이다. 삼성전자 지분 0.62%를 들고 있는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최근 공개서한을 통해 삼성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했다. 삼성전자의 지주사-사업회사 분리 ▶지주사와 삼성물산의 합병 ▶특별배당금 지급과 이사회 3석 할당 ▶뉴욕 증시 상장 등이 주요 요구안이다. 삼성전자는 “주주 제안은 주주총회 개최 6주 전에 이뤄져야 하는데 엘리엇의 이번 요청은 그 요건을 갖추지 못해 주주총회 안건 상정 대상이 되지 못했다”면서도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증권가에선 연말 정기인사와 함께 삼성이 지배구조 개편 문제를 공론화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등기이사 선임을 계기로 삼성이 지배구조 개편을 비롯한 승계 작업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현예·이소아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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