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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의 시선 사로잡는 ‘고이케 극장’

고이케(왼쪽) 지사가 지난 18일 도쿄 도청에서 열린 바흐 IOC 회장과의 회담 전 과정을 언론에 공개했다. “시민 부담이 너무 커 올림픽 비용을 줄여야 한다”며 바흐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로이터=뉴스1]


최근 일본에서 가장 떠오르는 정치인은 단연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64) 도쿄도지사다. 고이케는 지난 8월 2일 지사로 취임한 이래 도쿄 올림픽 계획 전면 재검토, 쓰키지 시장 이전 계획의 무기한 연기 등 굵직한 어젠다로 일본인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17일 산케이신문과 후지뉴스네트워크가 발표한 공동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1.4%가 “고이케가 일을 잘하고 있다”고 답했다. 같은 조사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을 지지한다는 답변은 57.6%에 그쳤다.


고이케를 향한 민심은 길거리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났다. 23일 실시되는 중의원 보궐선거를 일주일 앞둔 지난 16일 도쿄 이케부쿠로 역전 광장에서 고이케는 도쿄 10선거구 보궐선거에 출마하는 와카사 마사루(若狹勝) 자민당 후보의 지원 유세에 나섰다. 이날 지원 유세엔 아베 총리도 참석했지만 유세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고이케의 이름인 “유리코”를 연신 외쳤다고 아시히신문은 보도했다. 와카사 캠프 측의 한 간부는 “고이케 지사의 기세가 대단하다. 그 흐름에 올라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와카사 캠프는 유세 공보물도 고이케의 상징색과 같은 녹색으로 만들고 선거 구호로 ?와카사는 고이케 지사 당선에 기여한 일등공신?이란 문구를 사용할 정도로 고이케의 인기에 크게 의존했다.


[고이케가 지지하는 후보 모두 선두에]


고이케의 인기는 도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고이케는 보궐선거 유세가 시작되기 하루 전인 10일 후쿠오카현 구루메(久留米)시를 찾아 후쿠오카 6선거구 보궐선거에 출마한 하토야마 지로(鳩山二郞) 무소속 후보를 응원했다. 자민당은 후쿠오카 6선거구에 공천 후보를 내지 않고 하토야마와 구라우치 겐(??謙) 무소속 후보 가운데 이기는 쪽을 자민당에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지만, 고이케가 하토야마를 지지하면서 당내 지지는 급격히 하토야마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고이케는 10일 후쿠오카에서 하토야마를 지원한 뒤 11일 곧장 도쿄로 올라와 와카사 후보의 유세를 도왔다. 그야말로 일본판 ‘선거의 여왕’이라 할 만하다.


자민당 내에선 종횡무진 선거판을 누비는 고이케 덕분에 승리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을 기뻐하면서도 끝을 모르고 치솟는 고이케의 인기를 우려하는 분위기다. 정작 알려져야 할 출마 후보의 정책이나 성격이 좀처럼 부각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1일 유세가 끝난 뒤 한 자민당 간부는 “고이케가 출마하는 선거도 아닌데 이래서야…”라며 말끝을 흐렸다. 고이케가 손을 들어준 두 후보는 모두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기록하고 있어 23일 선거에서 무난히 승리할 확률이 높다. 아사히신문을 비롯한 일본 언론들은 일본인들의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는 고이케의 행보에 ‘고이케 극장’이란 별명을 붙였다.


‘고이케 극장’은 여론전에 능한 고이케의 강점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단어다. 고이케는 대중의 관심이 높은 주제를 선정해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극을 준비하고 연출된 무대 위로 기자들을 불러들여 여론의 주목을 끌어모은다. 어지간한 자신감과 승부사 기질이 없이는 불가능한 전략이다.


지난 8월 취임하자마자 진행 중인 2020년 도쿄 올림픽 계획 재검토가 대표적이다. 당선 전부터 도쿄 올림픽에 예산이 지나치게 많이 책정됐으며 불필요한 비용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던 고이케는 취임 첫날인 8월 2일 도쿄 올림픽 예산의 타당성을 조사하기 위한 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모리 요시로(森喜朗)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 회장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이미 결정한 사안을 이제 와서 뒤집는 것은 어렵다”고 맞섰다. 기자들을 직접 찾아가 “우리(조직위)가 도쿄도의 하부 조직이냐”고 불만을 토로할 만큼 모리의 반발은 거셌다. 고이케는 물러서지 않았다. 조직위원회조차 예산 타당성 조사 대상에 올리고 감사단체를 꾸리는 강수로 맞섰다. 80% 이상의 응답자가 도쿄 올림픽 예산 재조정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지면서 고이케의 기세는 더욱 등등해졌다.


결정적인 순간은 18일 고이케와 토마스 바흐 IOC 회장이 도쿄에서 가진 회담이었다. 이날 고이케는 회담 모두발언만 기자들 앞에서 한 뒤 비공개 회담에 들어가던 관례를 완전히 깨뜨리고 회담 전체를 기자들에게 공개했다. 요미우리신문은 “회담 직전 고이케가 전체를 공개 진행하자고 IOC 측을 설득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회담에서 고이케는 바흐에게 “도쿄 올림픽 비용 탓에 시민들이 크게 부담을 느끼고 있다”며 이를 줄여나가기 위한 방안을 설명해 바흐로부터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 같다”며 공감을 이끌어냈다. 또 고이케와 바흐는 도쿄도·정부·조직위원회·IOC가 예산 절감을 위한 4자 협의체를 설치하는 방안에도 합의했다. 132명의 기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올림픽 예산 논쟁의 주도권을 완전히 자기 쪽으로 가져온 것이다.


쓰키지 시장 이전 계획의 무기한 연기도 ‘고이케 극장’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다. 일본 최대의 수산물 시장이자 도쿄의 주요 관광지이기도 한 쓰키지 시장의 이전 문제는 도쿄 시민뿐 아니라 일본 전 국민의 관심사다.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전 도쿄도지사가 시설 노후화 등을 이유로 2004년 처음 이전의 필요성을 제기한 이래 10년 동안 격렬한 찬반 논쟁이 벌어졌고, 결국 2014년 도쿄도는 오는 11월까지 쓰키지 시장을 도요스(豊洲)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다 끝났다고 여겨졌던 사안에 고이케가 제동을 걸었다. 이전을 약 두 달 남겨놓은 8월 31일 고이케는 쓰키지 시장 이전이 예정된 도요스의 부지에 과거 화학공장이 있었음에도 토양의 오염 여부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추가 조사를 선언했다. 조사 과정에서 과거 도쿄도청이 시장 부지의 위생 점검 절차를 누락했으며 부지 지하에 비소가 함유된 오염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났다.


[쓰키지 시장 이전 계획도 무기 연기시켜]


고이케는 매주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조사 진행 과정을 빠짐없이 전달했다. 시민들은 열광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5일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88%가 고이케의 쓰키지 시장 이전 문제 대응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지난 14일엔 기자들을 불러모아 “이시하라 전 도지사에게 사건의 전말을 묻는 질문지를 보냈으나 이시하라 측은 ‘그런 사소한 일은 사무직원 담당이다’ ‘기억나지 않는다’ 등 무책임한 답변으로 일관했다”고 폭로했다.


여론을 능숙하게 활용하는 고이케의 면모는 그가 1979년부터 10여 년간 방송인으로 지내는 동안 갈고 닦은 것으로 보인다. 52년 효고(兵庫)현 아시야(芦屋)시에서 태어난 고이케는 간사이가쿠인대 사회학과에 재학 중이던 71년 유엔이 아랍어를 공용어로 채택했다는 신문기사를 접하고 아랍어 공부를 위해 이집트 카이로로 유학을 떠났다. 그가 카이로에서 유학한 데는 중동 국가들과 무역을 했던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다. 76년 카이로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고이케는 아랍어 통역으로 일하면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의장과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대통령의 단독 인터뷰를 잇따라 따내면서 방송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니혼TV·TV도쿄 등에서 앵커를 지냈고 90년엔 일본여성방송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 7월 31일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압승한 뒤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는 고이케. 일본의 첫 여성 방위상에 이어 첫 여성 도쿄도지사가 됐다. [AP=뉴시스]


고이케는 방송인으로 쌓은 명성을 바탕으로 92년 참의원 선거에서 당선됐고 이후 중의원을 거치며 8선 중견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내각에서 환경상을 지낸 데 이어 2007년 아베 신조 내각에선 일본 사상 첫 여성 방위상에 임명됐다. 승승장구하던 고이케는 이듬해 자민당 총재 선거에 입후보하는 등 정치적인 야심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2012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 총리가 아닌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간사장을 지지하면서 고이케는 자민당 중심부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고이케가 지난 7월 도쿄도지사 선거에 자민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유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고이케가 자민당이 공천한 마스다 히로야(增田寬也) 전 총무상을 누르고 당선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여론의 압도적 지지를 등에 업은 고이케는 현재 아베 총리의 뒤를 이을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정치평론가 스즈키 데쓰오(鈴木哲夫)는 “도쿄도지사는 일국의 대통령 못지않은 재원과 권한을 가지며 전 세계에 자신의 얼굴을 알릴 도쿄 올림픽이라는 기회도 마련돼 있다. 고이케는 일본 외교의 ‘또 하나의 얼굴’로서 입지를 다진 뒤 국정으로 복귀해 총리직을 차지하는 것도 이미 시야에 넣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이케 견제 위해 조기 총선 검토도]


문제는 자민당과의 관계다. 일본 정계에선 아베 총리를 비롯해 자신을 내친 자민당 중진과 앙금이 남아 있는 고이케가 자민당을 떠나 신당을 창당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고이케는 지난달 28일 자신의 이름을 딴 ‘고이케 유리코 정경숙(政經塾·정치경제학원)’을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오는 30일 개소식이 예정된 이 학원은 홈페이지를 통해 “정치·경제·지방행정 등 지금까지 친숙하지 않았던 것들을 배우고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설립 취지를 밝혔다.


학원이라고는 하지만 모집 대상을 “(고이케의) 도쿄 대개혁 이념에 찬성하는 사람” “일본 국적을 가진 자”로 한정한 것 때문에 일각에선 고이케가 신당 창당을 위해 자기 조직을 만들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고이케가 2011~2015년 오사카 시장을 지냈던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전 일본유신회 대표와 연대해 신당 창당을 모색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같은 고이케의 움직임에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자민당 간사장은 지난 9일 연설에서 “고이케 신당이 생기면 곤란하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자민당과 연립여당 공명당은 고이케를 견제하기 위해 내년 1월 중의원 해산 및 조기 총선 카드도 불사할 조짐이다. 조기 총선에서 여당이 또 한 번 압승할 경우 고이케의 기세를 꺾고 신당 창당도 지연시킬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아베 총리는 “중의원 해산은 전혀 생각지 않고 있다”고 못 박았지만 자민당 내 서열 2위인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이 지난 10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총선의 바람이 이미 불기 시작했다”며 조기 총선 의사를 내비치는 등 당내 여론은 해산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이기준 기자 forideali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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