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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지만 남편과 훈련하다보면 ‘기댈 수 있겠구나’ 믿음 싹터

윤진희 선수가 지난 18일 경기도 일산의 한 공원에서 포즈를 취했다. 비주얼과 목소리가 좋아 방송계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그는 “라디오 쪽은 해보고 싶다”고 했다. 일산=김춘식 기자


윤진희(30·경북개발공사)를 처음 본 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였다. 뽀글이 퍼머 머리에, 역도선수 답지 않은(?) 호리호리한 몸매의 윤진희는 여자역도 53kg급에서 은메달을 차지했다.


8년이 흐른 2016년 8월, 윤진희는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리우 올림픽에 나타났다. 그리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기적의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의 곁에는 4년 연하의 역도 선수 원정식(26·고양시청)이 있었다. 2012년 결혼한 두 사람 사이에는 라임(4)과 라율(2)이라는 예쁜 이름의 두 딸이 있다.


리우에서 돌아온 두 사람은 10월 초 열린 전국체전에 출전했다. 경북 소속 윤진희는 금메달 3개, 경기도 대표 원정식은 금2·은1개를 따냈다.


바벨보다 더 무거운 삶의 무게를 들어올려야 하는 세상이다. ‘으랏차차 부부’를 만나면 그 기술을 좀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가을빛이 좋은 시월의 어느 오후 경기도 일산 자택 근처에서 윤진희를 만났다. 한·중·일 친선대회 준비로 바쁜 원정식과는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두 딸 시댁에 맡기고 다시 바벨 잡아]2014년 9월,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역도 69kg급에 출전한 원정식은 경기 도중 왼쪽 무릎 힘줄이 끊어지는 중상을 입었다. 수술 후 길고 힘겨운 재활 훈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보조기를 풀고 보니 무릎이 굽혀지지 않았다. 남편은 3년 넘게 바벨을 놓고 있던 아내에게 손을 내밀었다. “다시 돌아와 날 좀 도와 줘.”


윤진희는 고민에 빠졌다. 한참 애 키우고 살림하는 재미에 빠져 있을 때였다. 무엇보다 엄마 품을 떠나본 적이 없는 두 딸이 눈에 밟혔다. 오랫동안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의 재기(再起)는 가정의 생계가 달린 문제이기도 했다.


“남편이 자기가 힘드니까 저를 끌어들이려는 건 아니었어요. 저를 인정하고 재능을 아까워해서 끌어내 준 거죠. 그런 점에선 남편에게 고맙죠.”


아이들은 강원도 원주의 시댁에 맡겼다. 윤진희와 라임·라율이는 그렇게 ‘주말 모녀’가 됐다. 토요일 오전 훈련을 끝내고 와서 일요일 저녁에 떠나는 엄마. 아이들은 처음에는 떨어지기 싫어 울고 보챘지만 지금은 보자마자 “엄마, 언제 가?” 하고 묻는다. 엄마는 그게 더 짠하고 마음이 아프다.


역도판에 복귀했지만 리우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설상가상, 어깨 부상이 덮쳤다. 왼쪽 회전근개 파열. 흔히 말하는 ‘오십견’과 증세가 비슷하다.


“바로 수술해야 한다는 주치의 선생님께 대표선발전까지만 미뤄주세요라고 했어요. 선발되고 나서는 올림픽까지만 미룹시다 했어요. 그런데 어깨가 너무 아픈 거예요. 팔을 뒤로 돌려 머리를 묶지도 못할 정도로요. 힘줄이 끊어져 팔을 들지도 못하는데 그걸로 몸무게 두 배의 쇳덩이를 들어올린다는 게 말이 됩니까.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만 접어야 하나 고민이 컸어요.”


윤진희는 리우에 싸우러 간다고 했다. 실력의 120%를 발휘하면 3~4위 싸움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올림픽 역도는 인상(역기를 한번에 들어올리는 것)과 용상(어깨에 한번 걸쳤다 올리는 것)을 합쳐 순위를 매긴다. 윤진희는 인상 88kg, 용상 111kg을 들어 합계 3위로 경기를 마쳤다. 하지만 인상 1위(101kg)를 한 최강자 리야준(중국)의 용상이 남아 있었다. 그가 112kg만 들면 금메달이고, 윤진희는 4위로 내려앉는 거였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리야준이 욕심을 부리다 1차(123kg), 2,3차(126kg) 시기에서 모두 실패해 실격한 것이다.


“당시엔 혹시나 하는 마음도 없었어요. 그런데 내게 동메달이 왔어요. 그냥, 한없이 기뻤죠. 베이징 올림픽 은메달보다 제겐 더 귀한 동메달입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개막을 앞둔 지난 7월 28일 역도연습장에서 남편 원정식 선수가 윤진희 선수의 손목테이프를 손봐주고 있다(왼쪽 사진). 리우올림픽 인상 경기에서 온 힘을 다해 바벨을 들어올리는 윤진희 선수.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중앙포토]


[역도선수는 민첩하고 머리도 좋아야]윤진희는 어릴적 부모가 이혼해 할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어려웠지만 구김살 없이 컸다. 소녀 시절 소설도 쓰고 그림에도 소질을 보였다. 중학교 무용반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데 체육선생님이 들어와 “우리 학교 여자역도부 만든다. 하고 싶은 사람 와라” 하셨다. “역도가 뭐지? 한번 해볼까” 하면서 친구랑 같이 찾아갔는데 선생님이 “너는 너무 작고 말라서 안 돼” 하셨다. 그때 체중이 36kg이었다. 석 달을 쫓아다녀 결국 역도부에 들었다.


역도는 남성들이 가장 원초적인 방식으로 힘을 겨루는 경기였다. 여자역도가 올림픽 종목이 된 건 2000년 시드니 대회부터다. 여성에게 썩 권장할 만한 운동이 아니다. 자세나 표정이 좀 그렇다. 여자가 역도 하면 코끼리 허벅지가 되고 목도 짧아지고 키도 안 큰다고 했다. 여자역도 선수를 소재로 한 영화 ‘킹콩을 들다’(이범수 주연, 2009년)에 나오는 얘기다. 그런데 프리마돈나를 꿈꾸던 윤진희가 어떻게 역도를 업으로 삼게 됐을까.


“하다 보니 재밌었어요. 열심히 연습해서 더 무거운 걸 들게 되면 남모르는 희열을 느껴요. 심리적인 만족감에다 물질적 보상도 있죠. 여자역도 하면 무제한급 무솽솽(중국·135kg) 같은 선수를 연상하잖아요. 그런데 여자역도에 경량급도 있고, 저처럼 날씬하고 예쁘게 꾸미는 선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재미도 있었어요.”


실제로 역도는 단순한 힘자랑이 아니다. 민첩성·유연성·순발력에다 근지구력도 갖춰야 한다. 태릉선수촌에서 각 종목 대표선수들이 축구 시합을 하면 펄펄 나는 종목이 역도다. 윤진희도 100m 기록이 12초대라고 한다.


두뇌싸움도 치열하다. “대회 때는 전광판을 쳐다보면서 머리 굴리는 소리가 들려요. 차수(次數)에 따라 상대 선수들이 몇 kg을 들지를 예상해 내 무게를 바꿔야 하거든요. 짧은 시간 안에 전략을 세우고 준비를 하는 과정이 정말 재미있어요.”


원정식은 매우 남성적으로 생겼다. 올림픽 메달도 없다. 윤진희가 손해봤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윤진희의 말은 다르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죠. 남편이 전에는 사고뭉치 스타일이었는데 요즘은 사람이 180도 바뀌었다는 소리를 들어요. 운동하는 자세부터 달라졌다고요.” 그렇다면 ‘미녀와 야수’가 아니라 ‘평강공주와 온달’ 스토리 아닌가.


둘은 원주에서 같이 운동하면서 서로를 알고 있었다. 2009년부터 남자가 본색을 드러냈다. 윤진희는 자신의 이상형과 정반대인데다 나이도 어린 후배가 대시하는 게 당돌하고 귀여웠다고 한다. 이 ‘도도녀’는 장난으로 “10억 벌어오면 결혼해 줄게”라며 후배를 ‘십억’이라고 불렀다. 남자는 그걸 깨부술 배짱과 터프함이 있었다. “남편은 반전 매력이 있어요. 남들 앞에선 무뚝뚝해 보이지만 둘만 있을 땐 알뜰살뜰 챙겨줍니다. 내가 사랑받고 있구나 싶어요. 행복하게 알콩달콩 잘 살고 있답니다.”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 두 사람은 태릉선수촌에서 함께 훈련했다. 하루종일 옆에 있으면서 폼나고 멋진 모습이 아니라 힘들어서 헉헉대고, 오만상을 찌푸리는 장면을 봐야만 했다. 그건 어떤 느낌일까.


“사실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는 싫죠. 그래도 서로 가장 힘들고 바닥인 상태를 보게 되면 ‘아, 이 사람에게는 기댈 수 있겠구나’ 싶은 믿음이 생겨요. 요즘 남편들은 직장에서 왕창 깨지고도 집에 와서는 안 그런 척 하잖아요. 가족 앞에서도 거짓 웃음을 짓는다면 그 사람은 불행할 것 같아요. 부부는 가장 힘들 때 보듬어 주고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사이라고 생각해요.”


손재주가 뛰어난 윤진희는 요리에도 관심이 많다. 자연식을 좋아해 말린 새우·홍합 등을 믹서기에 갈아 천연 조미료를 만든다. 양파·황태머리 같은 별별 재료를 다 넣어서 육수를 우려낸다. 그걸로 잔치국수만 만들어도 맛과 영양을 다 잡을 수 있다. 남편은 집에만 오면 살이 찐다. 소화가 잘 돼 돌아서면 배가 고프니까 많이 먹어서 그렇단다.


 


[‘윤진희 브랜드’ 널리 알리고 싶어]몸짱 열풍이 불고, 여성들은 애플힙에 집착하는 세상이 되었다. 머슬 퀸에 도전하는 사람도, 역도 선수도 똑같이 바벨을 든다. 이에 대한 윤진희의 생각을 물었다.


“몸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서 운동 방법이 다릅니다. 정답은 없어요. 역도는 몸 전체의 밸런스를 잡아주는 좋은 운동입니다. 요즘은 역도 동호인과 대회도 늘고 있어요. 고양시만 해도 동호회원이 50명을 넘는데, 그 중에 여성이 더 많아요.”


소수 엘리트에 집중됐던 역도가 생활 스포츠로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는 얘기다. 나중에 ‘윤진희 역도교실’ 같은 걸 열면 밥 굶지는 않겠다고 했더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계획을 물었다. “윤진희라는 브랜드를 알리고 싶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런 사람도 있구나,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구나, (장)미란 언니가 자신의 길을 만들었듯이 역도계 후배들에게 새로운 모델을 보여주고 싶어요.”


4년 뒤 도쿄 올림픽이 열린다. 메달을 따면 ‘윤진희 브랜드’가 더 빛나겠지만, 몸이 받쳐줘야 한다. 그래서 그는 11월에 어깨 수술을 한다. 원정식도 각오가 단단하다. “올림픽은 1년 준비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차근차근 준비해서 4년 뒤에는 제가 주연이 돼야죠.”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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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