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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음악은 꼭 연주홀서 실연으로 접해야”


1972년 프랑스 문화부 장관 미셸 기는 파리를 문화의 중심지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 고민을 거듭한다. 그의 승부수는 아방가르드 음악의 선두를 달리던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1925~2016). 불레즈는 1976년 현대음악 전문단체인 앙상블 엥테르콩탱포랭(Ensemble Intercontemporain·EIC)을 창단한다. 현재 파리 필하모니에 상주하고 있는 이 현대음악 전문 단체는 31명의 단원들로 구성돼 있다. 피아니스트 피에르-로랑 에마르, 첼리스트 장기엔 케라스, 바이올리니스트 강혜선이 이 악단 출신이다.


단원들은 노동 시간의 3분의 1을 악보 해석에 쏟는다. 대부분 세계 초연작이기 때문이다. 창단부터 지금까지 EIC가 소화해낸 레퍼토리는 2000여 곡이 넘는다. 20세기 중반 이후의 레퍼토리 연주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주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불레즈에게 백지수표를 주며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라”고 했을 정도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EIC 덕분에 파리는 ‘오늘날의 음악’을 주도하는 도시로 거듭날 수 있었다.


26일 오후 롯데콘서트 홀에서는 EIC의 첫 내한 공연이 펼쳐진다. 이 역사적인 공연을 앞두고 불레즈에 이어 지휘와 작곡을 겸하는 음악감독 마티아스 핀처(Matthias Pintscher)를 파리 시테 드 라 뮈지크에서 만났다.


내한공연을 앞두고 있다. 기분이 어떤가.“개인적으로도 한국이 처음이라 설렌다. 우선 이번 공연이 성사되기까지 작곡가 진은숙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그녀를 10년 전쯤 알게 되었는데, 현대 음악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는 정말 특별하다. 작품은 에너지로 가득 차 있으며 재치와 유머로 반짝이기 때문에 연주되는 순간마다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EIC는 이미 90년 초중반에 그녀를 가장 먼저 알아보았다. 우리와 함께 세계초연을 했던 곡을 다시 한국에서 초연한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가.”


프로그램은 리게티, 불레즈, 바레즈, 진은숙 그리고 당신의 곡을 포함하고 있는 정통 현대음악 레퍼토리다. 그런데 현대음악은 어렵다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나는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음반을 듣지 않는다. 음반으로 음악을 듣는 것 자체를 즐기지 않고, 그렇게 접하는 음악은 결코 100%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현대 음악뿐 아니라 모든 레퍼토리가 그렇다.”


왜 그런가.“홀에 가서 연주자들이 지휘자와 함께 움직이는 모습을 보라. 그 자체가 한 편의 스펙터클이다. 연주자들끼리 서로 눈빛을 나누고, 지휘자의 미세한 손짓에 반응하고, 활을 그으며 호흡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그들이 음악 안에서 살고 있음을 깨닫는다. 소리를 내어 그저 연주하는 것은 음악이 아니다. 물론 낯설 수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는 현대음악은 꼭 실연(實演)으로 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음반으로는 전해지지 않는 모든 비언어적 요소들이 더해져 마치 춤처럼 직관적으로, 베토벤이나 브루크너의 심포니보다 더 간명하게 청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


어떤 연주를 통해 현대음악을 처음 접하는 지도 중요할 것 같다. “그렇다. 우리 앙상블이 창립된 지 40년의 시간이 지났고, 우리는 이제 세계 최고의 현대음악 앙상블이다. 지휘자로서 포디움에 설 때마다 EIC의 특별함을 느낀다. 아주 미세한 손짓에도 단원들은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리게티와 불레즈 같은 레퍼토리는 우리에게는 이미 클래식이라고 할 수 있다. 불레즈의 지휘로 불레즈를 연주했고 녹음했던 우리에게는 그 경험이 유산으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어떤 경험인가.“사람들은 대부분 그의 음악이 기계를 연상시킬 만큼 묵직하고 차갑고 건조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남긴 악보에는 그 이상의 것이 들어있다. 차가운 금속표면 같은 음악 아래에는 연한 속살 같은 관능과 감각적인 디테일이 들어있다. 아직 한국 청중들은 우리를 실연으로 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EIC에 대해 백지상태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의 정체성을 대변할 수 있는 레퍼토리로 첫 만남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여러 사조를 대표하는, 20세기의 중후반을 가로질러 오늘날까지 가장 중요한 작곡가들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다. 단 하루의 연주를 듣는 것만으로도 현대 음악의 지형에 대해 직관적인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당신은 지휘자이지만 동시에 작곡가이기도 하다. 지휘와 작곡을 겸하는 피에르 불레즈,페터 외트비쉬와 같은 이들을 보면서 누구보다 확신을 갖고 자신의 작품을 ‘이데아’ 그 자체로 청중들 앞에서 펼쳐보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곡과 지휘를 겸하기 때문에 적어도 내 곡에 있어서만큼은 내 지휘가 정석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종종 다른 지휘자들을 통해 경이로울 만큼 새로운 발견을 할 때가 많다. 심지어 내가 곡을 쓰던 순간에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들을 그런 연주를 통해 발견하기도 한다. 마치 내 곡이 지닌 여러 겹의 표피가 벗겨지고 그 안에 숨겨져 있던 것이 드러나는 기분이다. 나만이 옳고 나만의 해석이 최고라는 자만은 그 자체로 음악적이지 않다. 우리는 불레즈와 리게티를 수없이 연주했지만, 매번의 연주가 다 각각의 가치를 갖는다. 그들이 세상을 떠났지만 작품은 남아 연주를 통해 여전히 그 생명력을 이어간다. 그게 예술과 음악의 가치 아닌가.”


지난 9월의 베를린 뮤직페스트는 절반 넘는 레퍼토리가 현대음악이었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현대음악을 어려워 하는 청중들이 많다. 그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음악 언어에 대해 흔히 사람들은 분류를 하고 싶어 하지만, 슈베르트의 말기 작품과 초기 브루크너, 초기 쇤베르크를 들여다보면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의 언어를 느낄 수 있다. 음악을 들으면서 이런 ‘발견’을 하기 때문에 베토벤 교향곡을 10번 연주하면 그 10번이 모두 다 색다른 경험이 된다. 어떤 연주도 복제될 수 없는 유일무이한 무엇이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호기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베토벤과 브람스, 말러, 브루크너, 베베른 그 이후에는 어떤 음악이 있는가 하는 질문을 갖는 것, 그리고 우리(EIC)처럼 현대음악이 가진 진짜 매력과 음악적 향기를 전달할 수 있는 연주력을 갖춘 앙상블의 연주를 듣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해결되지 않을까. 한국의 청중들과 그곳의 작곡가들을 새로 만날 생각에 설렌다.” ●


 


 


파리 글 김나희 음악평론가 nahui.adelaide.kim@gmail.com 사진 롯데콘서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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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