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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층 담배 냄새 ‘로봇 변호사’에게 상담했더니…

1992년 영국에서 발간되어 인기를 끈 메카니즈모 시리즈에 등장하는 드레드 판사는 체포·판결·집행까지 할 수 있는 로봇 판사를 모델로 하고 있다. 1995년과 2012년 ‘저지 드레드’라는 이름으로 두차례 영화화됐다.


김길동씨가 상기된 표정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다. 평소와 다른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고 로봇 코다가 이유를 물었다. 아래층에 사는 이웃이 베란다에서 담배를 자주 피워서 냄새와 연기 때문에 불편해 하던 차에, 오늘은 드디어 사달이 난 것 같다. 김길동씨가 반상회에서 좀 따끔하게 지적한 모양이다. 그런데 상대방이 그런 적 없다고 잡아떼며 화를 냈다는 것이다. 오히려 여러 사람 앞에서 명예를 훼손했다고 고소하겠단다. 하도 기가 막혀 일단 돌아왔지만, 정말 고소하면 어쩌나 하는 염려도 들고 적반하장에 분하기도 해서 실제 법률적 해석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졌단다. 도대체 어떤 법률이 적용되는지도 잘 모르겠고 법률 용어도 어려워서 인터넷 검색으로 속 시원한 답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이런 일로 변호사 사무실까지 찾아가기에는 부담스러워 속절없이 인터넷만 뒤지고 있다. 딱하게 바라보던 로봇 코다가 최근 개업한 인공지능 변호사 웹사이트를 소개해줬다. 회원 가입만 하면 생활법률부터 형사사건까지 무료로 상담해주는 인공지능 서비스라는 것이다. 방대한 법률지식과 완벽한 자연어 대화기능을 갖고 있어서 웬만한 변호사보다 잘 상담해 준단다. 특히 로봇이 상담하기 때문에 상담시간 제한이 없어서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 꼬치꼬치 물어볼 수 있다고 한다.


 

세계 최초의 로봇 변호사라고 주장하는 두낫페이(donotpay) 웹사이트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이용해서 교통범칙금이나 항공지연 보상에 대한 법률서비스를 제공한다.


[자연어 대화기술 탑재는 시간문제]지난 3월 미국 뉴욕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두낫페이(donotpay)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세계 최초의 로봇 변호사”라고 씌어있다. 주차위반이나 과속으로 억울한 벌금 통지서를 받았을 때, 이 웹사이트를 통해 상담하면 항의서한을 작성해준다. 항공편 지연이나 결항으로 불편을 겪었을 때 보상금을 받기 위한 항의서한도 작성해준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학생이 개발한 이 웹사이트를 현재까지 16만여 명이 사용했고, 항의서한을 통해 취소된 벌금이 40억원을 넘는다고 한다. 필자도 호기심에 회원가입을 하고 항공편 지연상황을 가상해서 상담해봤다. 항공편명, 출발지와 도착지, 지연시간 등을 하나씩 묻길래 대충 대답해줬다. 그랬더니 그럴싸하게 작성된 영문편지 한 장을 출력해줬다. 그 편지를 항공사에 보내면 된다는 것이다. 얼마나 똑똑한지 시험해 볼 요량으로 일부러 엉뚱한 답변도 해봤는데 아직은 대응이 완벽하지 않다. 프로그램이 기대하는 형식의 답변이 아니면, 미리 정해진 대화종료 루틴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개인 개발자가 만든 시스템이라서 아직 제대로 된 자연어 대화기술이 탑재되지 않은 듯 하다. 처리할 수 있는 사건도 단순한 몇 가지로 국한되어 있다. 하지만 그 기술의 가능성과 사회적 관심을 보고 벌써 투자자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본격적인 개발 투자를 통해 이미 상용화된 자연어 대화기술을 탑재하고, 처리 가능한 사건 유형을 확대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인공지능 기술을 법률 서비스에 적용하려는 시도는 나름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 1980년대 소위 전문가 시스템이라는 기술이 세간의 주목을 끌 때, 의료용 전문가 시스템과 법률용 전문가 시스템이 그 중 가장 주목을 끌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의료와 법률 두 가지는 인간생활에서 필수적이면서도 비용은 비싸니까, 사람 대신 컴퓨터를 이용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것 같다. 법률 조문을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규칙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컴퓨터의 논리추론 기술을 적용하여 법률 해석이 가능하다. 방대하고 다양한 판례를 컴퓨터에 인공신경망의 형태로 학습시키고 특정한 사건을 입력하면 판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가능하다. 실제로 개발된 여러 프로그램들은 이런 기술을 혼합해서 사용했다. 가장 유명한 프로그램 중 하나인 ‘SHYSTER’는 호주에서 개발되었는데, 횡령, 특허, 계약, 행정에 관련된 법률자문을 하도록 설계됐다. 살인이나 폭행 같은 형사사건의 선고형량을 추정하는 ‘JUDGE’ 프로그램이나 이혼하는 부부간 재산분쟁에 관한 법률자문을 제공하는 ‘ASHSD’ ‘Split-Up’과 같은 프로그램도 개발됐다.


 

미국에서 개발된 대법원 판결예측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법률 전문가 패널보다 더 정확하게 대법원 판결을 예측했다.


[‘대법 판결예측’ 전문가보다 정확]2002년 미국과학재단의 지원으로 하버드·펜실베니아·워싱턴대학교의 법대 교수들이 공동수행한 ‘대법원 판결예측 프로젝트’의 결과는 무척 흥미롭다. 의사결정트리라는 인공지능기법을 이용해 대법관 아홉 명의 과거 판결 성향을 학습시켰다. 이것을 실제로 대법원에서 판결한 76건의 사례에 적용해본 것이다. 법학교수나 변호사와 같은 법률 전문가로 구성된 패널의 예측정확도가 59.1%인데 반해, 의사결정트리 인공지능 시스템의 정확도는 75%로 나왔다. 예측 정확도가 높은 것도 시사하는 바가 있지만 의사결정트리 모델을 분석함으로써, 각 대법관들의 판결 성향과 판결 과정을 계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었다는 것도 흥미롭다.


사람의 뇌는 ‘공평’이라는 잣대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미국 UCLA 매튜 리버만 교수 연구팀은 경제학 이론 분야에서 유명한 ‘최후통첩 게임’을 이용해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최후통첩 게임은 공평이라는 잣대로 두 명의 참가자가 벌이는 심리게임이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사람에게 100만원을 주고 두 번째 사람과 ‘공평하게’ 나누라고 한다. 첫 번째 사람은 자기에게 결정권이 있으므로 자기가 99만원을 갖고 두 번째 사람에게는 만원만 줄 수도 있고, 인심 좋게 절반씩 나눌 수도 있다. 게임의 묘미는 두 번째 사람의 결정에 있다. 만약 두 번째 사람이 불공평하다고 거부하면 100만원 자체는 몰수되어 둘 다 빈 손이 된다. 산술적으로만 보면 두 번째 사람은 단돈 만원이라도 거부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 아예 한 푼도 못 받는 것보다는 이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실험에서는 최소한 8:2 이상으로 나눠주지 않으면 대개 거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람은 순전히 이해 타산으로만 행동하는 것이 아니고 공평하게 대접받으려는 속성이 있는 것이다. 리버만 교수 연구팀은 불공평하게 대접받을 때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뇌영상판독장치를 이용해서 측정했다. 공평하게 대접받을 때는 주로 복부 선조(ventral striatum), 편도선(amigdala)과 같이 보상과 관련된 영역이 활성화 됐다. 불공평하게 대접받을 때는 전전두엽 피질(anterior insula)과 같이 혐오감과 관련된 영역이 활성화 됐다. 전전두엽 피질은 악취를 맡을 때도 활성화되는 영역이다. 이러한 영역들은 경험과 학습보다는 선천적인 본능에 의해 활성화 여부가 결정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민들도 값싼 법률 서비스 받게 돼]불공평에 대해서 본능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는 인간의 속성으로 볼 때, 사회가 복잡해져 갈수록 법률적인 잣대나 해석에 대한 궁금증이 계속 늘어갈 것이다. 법률 인공지능 개발자들이 주장했듯이 인공지능 기술의 보급은 변호사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변호사 업무의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로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값비싼 변호사 수임료를 감당하기 어려운 서민들도 법률 서비스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게 된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올리버 하트 교수와 벵트 홀름스트룀 교수가 정립한 계약이론에서 강조하듯이, 사회 구성원간 정보 비대칭은 빈부 격차와 사회 불균형의 중요한 요인이다. 법률 인공지능 시스템이 보편화되면 법률에 대한 정보 비대칭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현재 인공지능 기술이 과연 얼마나 빨리 실제 변호사 수준의 법률 해석 및 상담 능력을 갖추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법령이나 판례를 암기하거나 자연어로 대화하는 것은 현재의 기술로도 이미 해결할 수 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상식과 맥락을 적용하는 것이다. 상식과 맥락이라는 형태의 지식을 표현하고 적용하는 기술은 인공지능 전문가들도 아직 확실한 해결책을 못 찾고 있다.


김길동씨는 로봇 코다의 조언을 따라 인공지능 변호사 웹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해서 법률상담을 받기로 했다. 아래층 이웃과 벌어진 상황에 대해 자세히 문답식으로 설명했더니 곧바로 관련 판례와 법령을 제시해줬다. 재판 시뮬레이션을 의뢰하니 금방 승소와 패소 가능성을 계산해 주고 가장 유리한 소송절차와 그에 필요한 법률양식까지 설계해 줬다. 첫 회원가입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상담비용도 무료로 해준다고 한다. 신속하게 진행된 법률상담을 통해 어느 정도 걱정이 사라지긴 했는데, 왠지 꺼림칙한 기분을 떨칠 수 없다. 결국 김길동씨는 생각을 바꾼다. 담배 해독에 좋다는 복숭아를 한 봉지 사들고 아래층 이웃에게 찾아가서 자기가 담배연기 때문에 왜 불편해 하는지 잘 얘기해 보기로 했다.


 


이도헌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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