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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속으로] 100% 행복한 인생은 영화 같은 허구…투쟁 덕에 살 만하고 풍요로워진다

『나의 투쟁』 쓴 노르웨이 작가 크나우스고르

노르웨이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47)는 ‘술 김에 말을 내뱉고 그 다음날 아침 후회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숫기가 좀 없는 그가 쓴 10권짜리 자전적 소설 『나의 투쟁』은 인구 500만 명 노르웨이에서 50만 부가 팔렸고 32개 언어로 번역됐다. 벌써 노벨 문학상 물망에 오르고 있다. 최근 우리말 번역본 1, 2, 3권이 나왔다. 현대인에게 삶과 문학은 어떻게 서로 엮이고 있는지 궁금해 전화로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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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는 “내 희망은 언젠가 꼭 한국에 가서 독자들을 만나는 것이다”고 말했다. [사진 한길사]

인생에서 몸부림, 투쟁의 문제를 해결할 방도는 정녕 없는가.
“없다. 투쟁이 곧 인생이다. 투쟁 덕분에 인생이 살 만하고 풍요롭다. 완벽하게 행복한 인생은 없다. 100% 행복한 인생은 영화 같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만든 허구다.”
『나의 투쟁』의 집필 동기는.
“기쁨을 되찾으려고 『나의 투쟁』을 썼다. 당시에도 나는 꿈꿀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졌다. 아내·자식·집이 있었고 작가였다. 그럼에도 내 인생에 기쁨이 없는 이유를 찾아내고 싶었다. 글 쓸 때 우리는 자신으로부터 벗어난다. 자아가 소멸되는 체험을 한다.”
목표를 발견하면 행복하게 될까.
“삶의 목표가 있으면 사는 게 더 쉽다. 삶에 방향과 의미를 준다. 어떤 목표가 좋은지는 알 수 없지만 이는 다른 문제다. 나는 실존의 문제에 관심이 아주 많다. 나는 종교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종교가 실존을 다루기에 종교에 관심이 많다. 지식·경험·지혜가 담긴 종교는 행복을 향한 좋은 출발점이다. 몇 년 전 노르웨이어 자문위원으로 번역가·신학자들과 함께 성경 번역 작업에 참가했다. 성경 시대와 지금은 언어적·문화적으로 멀다. 그 간격을 메우는 일은 흥미로웠다. 특히 카인과 아벨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형제와 살인에 대한 가장 중요한 이야기다. 읽어보면 굉장히 짧다. 성경에서는 큰 이야기일수록 글이 짧고 촘촘하다. 하지만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수천 년 전에 쓴 텍스트지만 지금도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놀랍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제우스가 아버지를 쫓아내고 ‘신들의 왕’ 자리를 차지한다. 부자지간·형제지간은 매우 어렵다.
“그렇다. 집안의 인간관계가 우리를 만든다. 식구들이 우리의 오늘을 만드는 데다 식구들끼리의 관계는 평생을 간다. 누구나 어버이·형제자매가 있다. 『나의 투쟁』 또한 부자지간·형제지간을 다룬다.”
부자지간·형제지간은 나쁠 수도 좋을 수도 있다. 왜 그런 차이가 나는가.
“흠. 이 문제에 대해 소설을 써야겠다. 카인과 아벨 이야기가 지극히 흥미로운 이유가 있다. 카인은 아벨을 시기한다. 매우 흔한 일이다. 질투심 없는 형제간은 없다. 질투심 때문에 카인은 고개를 떨군다. 신(神)이 카인에게 ‘왜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느냐. 네가 잘했다면 왜 얼굴을 쳐들지 못하느냐’고 묻는다. 우리는 카인과 아벨 사이에 거리(distance)를 발견한다. 거리감은 지극히 위험하다. 아마 존재하는 모든 것들 중에 가장 나쁘다. 살인자는 자신과 희생자 사이에 거리감이 있어야 살인할 수 있다.”
당신 소설은 매우 과학적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과학적 삶의 방법’은 인생을 지극히 행복하고 생산적으로 만들어주지 않을까.
“과학이 유일한 세계관이 되도록 방치하는 것은 위험하다. 소설·예술·영화·신문 같은 것들은 세상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바라본다. 오로지 과학만이 세계관으로 남는다면 그것은 악몽이다. 유전자를 조작하고 생명을 실험하는 것은 위험하다. 생명에 대해선 나는 매우 구식이고 보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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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투쟁』 1, 2, 3권.

『나의 투쟁』에 대한 인상적인 반응은 어떤 게 있나.
“나를 사인회에서 보자마자 울기 시작하는 독자들이 있다. 내 책이 그들의 삶에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작가로서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글을 쓰는 것이다.”
당신의 책을 오해하는 사람도 있는가.
“뭔가를 쓰는 사람은 오해를 피할 수 없다. 작가는 자신의 글을 독점할 수 없다. 책이 출간된 다음에는 모든 사람이 독자적인 방식으로 그 책과 관계를 설정한다. 책을 읽는 올바른 방식이라는 것은 없다. 어떤 책에 대한 가장 큰 잘못은 읽지도 않고 풍문이나 서평만으로 그 책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성의 반응은 어땠나.
“다양했다. 스웨덴에서는 많은 페미니스트가 반발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다른 곳 여성 독자들은 내가 ‘여성에 대해 여성처럼 글을 쓴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글쓰기나 글에 대한 반응은 성별과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문학이란 무엇이라고 보는가.
“문학은 삶과 세상을 체험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타인, 그리고 타인의 세계관과 더 가깝게 되기 위해 소통하는 게 문학이다. 문학으로 하는 소통은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과는 또 다르다. 읽기는 일종의 협력이다. 아까 말한 대로 거리감은 위험하다. 문학은 거리감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체험을 공유해 달라.
“작가가 되는 게 인생에서 딱 한 가지의 간절한 바람이어야 한다.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하다. 쓸 때와 읽을 때는 다른 일을 할 때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집중이 필요하다. 글쓰기는 우리 내면에 담긴 수많은 체험과 기억에 접근하는 수단이다. 나는 글 쓸 때는 내 삶을 기억하지만 글을 안 쓸 때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수차례 슬럼프에 빠져 아무것도 쓰지 못한 적도 있다. 내 글이 나쁘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이를 용납할 수 없었다. 작가가 되려면 스스로에게 ‘내 글이 나쁠 수도 있다’는 것을 납득시켜야 한다. 글에 대한 모든 야망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좋은 문학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는 생각을 제거하라. 아무리 나쁜 글이라도 일단 그냥 써라. 그러면 작품이 나온다. 그러다 보면 궁극적으로 글이 점점 더 좋아진다.”
 
[S BOX] 히틀러가 『나의 투쟁』 쓴 탓에 기피 단어 된 ‘투쟁’
‘투쟁(鬪爭·struggle·Kampf)’이라는 말 자체는 좋은 말도 나쁜 말도 아니다. 아돌프 히틀러(1889~1945)가 쓴 『나의 투쟁』 때문에 ‘나의 투쟁’은 서구 사회에서 멀리해야 할 표현이 됐다.

카인·아벨처럼 질투 않는 형제 없어
둘 사이에 거리감 생기면 아주 위험
과학만 유일한 세계관 되면 악몽
예술·신문처럼 세상을 다르게 봐야
타인의 세계관과 소통하는 게 문학
나쁜 글도 일단 써야 작품이 나와


노르웨이 작가 크나우스고르가 쓴 『나의 투쟁』(2009~2011)은 ‘내 투쟁’이라는 말의 본래적 가치를 복원했다. 총 6권 3622쪽에 달하는 자서전적 소설이다. 일기 같기도 하다. 독자들은 『나의 투쟁』에서 자신의 삶을 발견하고 열광한다. 저자는 일상생활에서 겪은 소소한 굴욕감, ‘파충류’적인 욕망, 떨치기 힘든 나쁜 생각들을 촘촘하게 추적한다.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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