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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사형 폐지 논란과 여론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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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헌
도쿄 특파원

“시청자 여러분! 정의는 여러분 손에 달려 있습니다. 유죄는 7번, 무죄는 0번을 눌러 주세요.”

매일 저녁 6시30분 TV 뉴스쇼가 시작된다. ‘사형이 정의’라는 타이틀이 뜨고 살인사건 피고인의 신상이 낱낱이 공개된다. 7일간 생방송을 지켜본 뒤 전화기 버튼을 누른다. 집계 결과 유죄가 더 많으면 즉시 사형이 집행된다. 최근 한국에서도 출간된 영국 작가 케리 드루어리의 소설 『셀 7』은 사법제도가 붕괴된 위험한 사회를 그린다. 법정에서 죄를 다투지 않는다. 인민재판 식의 시청자 투표만 있을 뿐이다. 전화번호를 사들여 여론도 조작할 수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고대 바빌로니아 왕국 함무라비 법전의 핵심 원칙이다. ‘구멍을 통해 남의 집에 들어가 도둑질한 자는 그 구멍 앞에서 사형에 처한다’는 규정까지 있을 정도로 살인자의 사형이 당연시되던 시절이다. 타인의 생명을 빼앗으면 죽음으로써 속죄해야 한다는 논리는 지금도 통한다. 큰 문제는 소설 속 시청자나 고대와 현대의 재판관 모두 왜곡된 여론 또는 잘못된 증거에 속을 가능성이다. 누명을 쓴 사형수가 언제든 생길 수 있다.

제14회 ‘세계 사형 폐지의 날’을 사흘 앞둔 지난 7일 일본 변호사연합회가 ‘사형제도 폐지 선언’을 채택했다. 2020년까지 사형을 없애고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하자고 주장했다. 가이도 유이치(海渡雄一) 변호사는 “누구라도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후(戰後) 일본에선 네 명의 사형수가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았다. 살인 혐의로 사형이 확정돼 48년간 옥살이를 했던 하카마다 이와오(袴田巖·80)는 2014년 새로운 DNA 물증이 발견되면서 풀려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중 사형을 유지하는 나라는 미국의 일부 주와 일본뿐이다. 아사히신문은 지난 9일 사설에서 “비판과 반발, 저항을 각오한 변호사연합회가 큰 첫걸음을 뗐다”고 평가했다. 이어 “사형은 일단 집행하면 돌이킬 수 없으며 사람이 재판하는 이상 실수는 반드시 일어난다”고 덧붙였다. 반면 피해자 유족들은 “가해자의 인권만 지키고 피해자 존엄을 홀대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재심 개시 결정에 따라 하카마다를 석방한 후에도 8명의 사형수를 처형했다. 가네다 가쓰토시(金田勝年) 법무상은 “흉악한 범죄자에게 신중한 심리를 거쳐 사형을 선고한다”며 폐지에 부정적인 뜻을 밝혔다. 유엔의 시정권고를 거듭 받으면서도 사형제도를 유지하는 버팀목은 여론이다. 2014년 내각부 조사에서 응답자의 80.3%가 사형에 찬성했다. 폐지 요구는 9.7%에 그쳤다.

한국은 1997년 23명을 끝으로 집행을 중단한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다. 딱 거기서 멈췄다. 여론의 벽이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법제연구원의 국민 법의식 조사에선 65.2%가 사형에 찬성했다. 20대 국회에서 완전 폐지 법안이 다시 준비되고 있다. 국가가 법의 이름으로 국민의 생명을 박탈하는 사형제도, 냉정한 토론을 기대한다.

이정헌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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