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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주식고수' 임성기(한미약품 회장)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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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논설위원

한미약품은 제약·바이오 업계의 스타다. 수십 년 연구개발과 투자 외길의 결실을 지난해 맺었다. 7조원 넘는 기술 수출에 성공했고 1년 새 주가도 10배 가까이 뛰었다. 지금도 제2의 한미를 꿈꾸며 뛰는 바이오벤처가 수두룩하다. 그런 한미약품이 대형 악재를 ‘늑장 공시’ 하는 바람에 파장이 크다. 생각거리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제약·바이오 기업의 도덕적 해이다.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은 증권가에서 주식 고수로 불린다. 자기 회사 주식을 철저히 투자·관리하는 몇 안 되는 오너로 꼽힌다. 1990년대에 직원들에게 보너스로 주식을 줬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서다. 진작 지주회사와 순환출자를 통해 지배구조를 만들었다. 열 살도 안 된 손자·손녀 7명에게 수백억원어치의 주식을 증여했다. 절친한 고등학교 후배인 신동국 한양정밀 대표가 국내 최고 수퍼개미가 된 것도 임 회장 덕이 컸다. 신 대표는 2년 전 한미약품·한미사이언스 주식을 대거 사들였는데 이게 2년 만에 4~10배 올라 그를 1조원 넘는 주식 부자로 만들어줬다.

그런 임 회장의 한미약품이 8000억원짜리 기술 계약 해지라는 대형 악재를 다음 날 개장 후 29분이 지나서야 공시했다. 그 29분 동안 5만 주, 약 300억원어치의 공매도가 이뤄졌다. 평소(하루 평균 4800주)의 10배 물량이었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 팔아놓는 것으로 주가가 하락할수록 이득을 보는 투자 기법이다. 65만원이던 주가는 일주일 새 42만원으로 급락했다. 단순 계산하면 공매도 세력은 일주일 만에 약 100억원을 벌었다는 얘기다. 누군가 벌면 누군가는 잃는 법, 이때의 루저는 개인투자자이기 쉽다. 개인들은 사실상 공매도가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개인들이 더 분노하며 ‘소송 불사’를 외치는 이유다.

한미 측은 ‘단순 실수’라고 하지만 시장은 좀체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공시 하나에 주가가 특히 심하게 요동치는 게 제약·바이오 기업의 특징이다. 1973년 설립해 산전수전 다 겪은 한미약품 측의 해명치곤 많이 군색하다. 주식 상장은 공익이란 이름으로 사기업에 준 발권력이다. 스타 기업일수록 더 깊은 책임과 고민이 필요하다.

둘째는 바이오 투자의 단기 조급증이다. 증시에서 바이오벤처는 대표적인 장기 투자상품이다. 작물로 치면 잣나무와 같다. 잣은 12년을 키워야 첫 열매를 맺는다. 25년이 지나야 제대로 수확할 수 있다. 미국의 10대 바이오 기업인 셀진과 리제네론은 지난해 각각 150달러·579달러까지 올랐지만 상장 후 20년간 주가는 10~30달러를 넘지 못했다. 1984년 상장한 암젠은 30년 후 주가가 1500배 올랐고 1990년 상장한 셀진은 500배 뛰었다. 하지만 휴지조각처럼 사라진 기업은 부지기수다.

국내 바이오벤처는 지금이 발아기다. 90년대 말 김대중 정부 때 뿌린 씨가 막 싹을 틔웠다. 셀트리온·마크로젠·메디포스트… 돈 버는 바이오 기업이 나오기 시작했다. 20여 년간 의대·약대로만 몰린 인재들도 넘친다. 10년만 더 키우면 제대로 수확할 수 있다. 바이오는 돈을 먹고 자란다. 최종 성공까지는 몇 백억~수천억원의 끝없는 자금 수혈이 있어야 한다. 미국이 바이오테크 기업은 매출이 없어도 전문가들이 미래가치가 있다고 평가하면 상장을 허용해주는 이유다. 그런 만큼 장기 투자, 제대로 투자, 알고 투자하는 시장의 뒷받침이 꼭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어떤가. 고질적 냄비 근성이 여전하다. 한미약품의 악재 하나에 시장이 출렁이고 전 바이오 기업의 주가가 급락한다. 이래서야 바이오의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

세 번째는 따로 노는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은 500조원을 굴리는 연못 속 고래다. 어디에 투자하느냐에 따라 연못이 커지기도 줄어들기도 한다. 그런데 올 들어 바이오 주식을 대거 팔았다. 게다가 최근 3년간 약 120만 주의 제약·바이오 주식을 공매도 세력에게 빌려줬다. 가뜩이나 힘을 잃은 바이오 시장은 더 쪼그라들었다. 국민연금이 챙긴 것은 주식 대여료 65억원뿐이다. 연못이 쪼그라들면 고래도 살 수 없다.

이정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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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