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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칼럼] B-52와 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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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대기자

우드바르-헤이지(Steven F. Udvar-Hazy) 센터는 항공기술을 과시한다. 그곳은 미국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항공우주 박물관의 별관이다. 그 박물관은 거대하다. 160개 기종의 항공기로 차 있다. 20세기 하늘을 누빈 전투기들, 히로시마에 원폭을 떨어뜨린 에놀라 게이(B-29), 스텔스기, 우주왕복선. 과학은 전쟁의 부산물이다.

그곳에 독특한 전시품이 있다. 호찌민 샌들과 B-52 전략폭격기다(사진). B-52는 모형이다. 실물의 144분의 1 크기. 샌들만큼 작다. 두 진열품은 베트남전쟁 코너의 유리 박스 안에 나란히 있다. B-52는 지금도 미 공군의 주력기다. 북한의 핵실험 때 등장한다. B-52는 한반도 상공을 난다. 괌 기지에서 핵폭탄을 싣고 온다. 샌들은 50년 전 북베트남(월맹) 군의 전투화다. 자동차의 폐(廢)타이어로 만들었다. 호찌민 샌들 군대는 기술과학의 미군을 물리쳤다. 1960~70년대 베트남전쟁에서다.
 
   검은색 샌들은 볼품없다. 관람객들의 눈길은 거의 없다. 하지만 B-52와 함께 보면 격정적으로 다가온다. 정신력과 기술력의 독보적인 대조다. 샌들에서 뿜어나는 여운은 강렬하다. 인간의 투혼은 원초적이다. 그것은 첨단 과학을 압도한다.

인간 의지는 국가 안보의 핵심 요소다. 20세기 후반 북베트남은 그것을 격렬하게 작동시켰다. 프랑스와 미국을 패퇴시켰다. 1979년 중국과의 전쟁에서 사실상 승리했다. 그 역사의 영향력은 쇠퇴하지 않는다. 그 주역은 보 구엔 지압(1911~2013)이다. 그는 베트남 건국의 아버지 호찌민(胡志明)의 군사참모(국방장관)였다. 지압의 자세는 ‘내 나라는 내가 지키자’였다. 지압은 그 투지를 국민에게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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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험대가 디엔비엔푸 전투(1954년)였다. 프랑스와의 싸움이다. 디엔비엔푸는 라오스와의 국경 근처. 그곳은 800~1000m 산에 둘러싸였다. 전력은 프랑스군의 거침없는 우위였다. 대응은 선제적인 모험이다. 그것은 산 위로 대포를 끌어올리기다. 프랑스군은 그것을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산은 험하고 길이 없다. 지압은 선입관을 깬다. 105㎜ 곡사포(무게 2t)를 끌고 갔다. 병사 20명이 한번에 30~50㎝, 하루 평균 50m씩 올렸다. 대포는 산꼭대기로 옮겨졌다. 다음은 기습. 프랑스군은 허를 찔렸다. 무기력하게 항복했다.

자주 의식은 절제를 주입한다. 디엔비엔푸 드라마는 절묘해진다. 프랑스군의 항복 6일 뒤 지압은 밀림으로 들어갔다. 디엔비엔푸에서 35㎞ 떨어진 곳. 지압은 그곳에서 승전 기념식을 열었다. 그것도 상식 파괴다. 전투 현장의 축하식엔 포로들이 배치된다. 그것으로 승리의 환희는 커진다. 프랑스군 포로는 1만여 명. 하지만 지압의 기념식엔 포로들은 없었다. 밀림 속에서 은근히 진행됐다. 왜 그런 방식이었을까.

무엉팡 마을은 계곡과 밀림 속에 있다. 그곳엔 엄청난 승전 기념 석상(石像·길이 16m, 높이 9.8 m, 2009년 건립)이 있다. 표지판엔 “이곳에서 디엔비엔푸 승리를 선언했다”고 적혀 있다. 승전식의 축가는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그 소리들은 밀림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호찌민의 지도력이기도 하다. “우리의 영웅적 승리를 찬양하라. 하지만 포로가 된 적에게 굴욕감을 주지 말라.”- 그 장면엔 베트남 지도자들의 지정학적 통찰과 분별력이 스며 있다. 은밀한 승전 파티는 절제의 압축이다. 타국에 국방을 의존하지 않는 나라의 리더십은 다르다.

국제관계는 냉혹하다. 습관적인 안면 몰수와 태도 돌변이다. 어제의 적(敵)은 오늘의 친구다. 오늘의 친구는 내일의 적이 된다. 지압은 그 속성을 잊지 않았다. 베트남은 그 지혜와 경험을 저장해왔다. 그것을 외교 비전과 경륜으로 활용한다. 나는 오랫동안 지압을 추적했다. 무엉팡의 기념 장소에 가면 전율 같은 울림이 온다.

베트남은 프랑스와 친하다. 미국·일본과도 어울린다. 자주 의지는 외교의 원칙을 두텁게 해준다. 그와 함께 유연성도 키운다. 베트남의 투혼은 우리에게 자극이다. 지금 한·중 외교의 기복은 심하다. 한·미·일 공조는 상처 나 있다.

군사적 자립 태세는 국가 품격을 높인다. 의타적인 인간은 얕잡아 보인다. 국제관계도 비슷하다. 베트남은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대치한다. 하지만 베트남은 중국과도 가깝다. 중국은 베트남을 무시하지 못했다. 베트남의 자생적인 저항력 때문이다. 중국 불법 어선은 한국의 바다를 우습게 안다. 한국 해경 감시선은 형편없이 당한다. 북한은 핵무기 실험으로 위협한다. 한국의 대응은 한계를 갖는다. 한국은 중국에 의존한다. 주한미군에 매달린다.

저항 의지는 마력이다. 국가 전략을 풍요롭게 한다. 자주의 투혼은 국가운영의 공세적인 상상력을 공급한다. 군사적 대결에서 압박의 묘수를 제공한다. 평화 때는 외교의 기량을 키워준다.

박보균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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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