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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버리고 하원 구하기 나선 폴 라이언

미국 공화당 수뇌부가 대선을 불과 29일 남기고 자기 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를 버렸다. 사실상의 대선 포기다. 이는 트럼프의 음담패설 녹음 파일이 폭로된 이후 분노한 여론을 되돌리기 힘들어졌다는 판단에서다. 10일(현지시간) 발표된 NBC·월스트리트저널 여론조사 결과 지지율은 46%(클린턴) 대 35%(트럼프)로 11%포인트 차로 벌어졌다. 한 달 전 격차는 6%포인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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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라이언

워싱턴포스트(WP)와 뉴욕타임스(NYT) 등 미 언론은 이날 공화당의 서열 1위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46)이 공화당 동료 의원들에 “트럼프를 더 이상 방어할 생각이 없다. 유세도 같이 않겠다. 남은 기간 하원의 다수당 지위를 지키는 데 매진할 것”이라 선언했다고 전했다. 라이언의 폭탄 선언은 2차 TV토론이 끝난 다음날인 10일 오전 동료 하원의원들과의 콘퍼런스콜(전화회의)에서 튀어나왔다.

라이언은 “난 이제 트럼프를 위한 활동을 않겠다. 앞으로 (남은 한 달 동안)하원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을 돕겠다”고 선언했다. 트랜트 프랭크스 하원의원이 “우리가 (대선을 포기하고) 힐러리를 이대로 백악관으로 보낸다는 건 (출산까지 기다리지 않고) 낙태를 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거세게 반발하며 전화회의는 45분간 중단됐다. 하지만 이어진 회의에서도 라이언은 “트럼프 지지를 철회하겠다는 건 아니다. 하원 다수당을 지키겠다는 것”이라며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트럼프 지지 철회’를 선언한 다수 의원들도 라이언을 거들었다.

라이언이 ‘트럼프 폐기’를 결심한 배경을 놓고 두 가지 분석이 나온다. 먼저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상·하원 선거에 집중하겠다는 현실적 판단이다. 상원 34명(총 100명 중 3분의1), 하원 435명 전원을 뽑는 선거에서 그 동안 우세가 점쳐지던 공화당은 트럼프의 헛발질로 양쪽 모두 다수당 지위를 민주당에 빼앗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행정부와 의회를 모두 민주당에 내주면 공화당은 사실상 붕괴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 하나는 ‘차기 2020년 대선’을 겨냥한 정치적 계산이다. 라이언은 2020년 대선의 공화당 후보 1순위다. 특히 준수한 외모에 가정적 이미지로 여성 유권자들로부터 지지를 받으며 ‘공화당의 황태자’라 불린다. 라이언으로선 대선 패배가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여성 비하와 막말을 일삼는 트럼프와 ‘한통속’이 돼 움직이는 게 자신의 차기 대선 행보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할 만하다. 다만 공화당 내부의 기류를 감안해 지지 철회는 않으면서 사실상 관계를 끊는 절충안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이에 발끈했다. 즉각 트위터를 통해 “예산과 일자리, 불법 이민 등을 다루는 데 시간을 쏟아야지 공화당 대선후보(트럼프)와 싸우는 데 시간을 낭비해서 되겠느냐”고 라이언을 비난했다.

트럼프 측에 줄을 선 라인스 프리버스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위원장도 이날 비공개 회의를 소집, “트럼프 캠프와 RNC는 지금도 완벽하게 협력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계속 지지를 선언했다. 1854년 창당 후 에이브러햄 링컨을 자신들의 첫 대통령으로 만들어냈던 공화당. 이번엔 162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들이 뽑은 대선 후보를 최고지도자가 내치는 초유의 사태를 맞고 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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