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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오디세이 2016 참가자 릴레이 기고 <8> 연해주에서 되돌아보는 발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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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호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연해주를 다시 찾았다. 예전에는 동해로 날았는데 북한의 위협으로 중국 만주로 에둘러 갔다. 군사도시였던 블라디보스토크가 갓 개방된 1992년 처음 방문했을 때는 일본 제품 일색이던 것이 그로부터 불과 2~3년 사이에 시골에도 한국 과자 봉지들이 굴러다니기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연해주는 우리에게 급격히 다가왔다.

10년 전쯤 우수리스크 부근에 있는 체르냐티노2 유적에서 한·러 공동 발굴이 있었다. 이때 북옥저와 발해 그리고 근대 고려인의 집자리들이 한 구역에서 나란히 발굴돼 내 관심을 끌었다. 우리 역사 가운데 이 시기가 연해주와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이 집자리들에서 우리 민족의 고유한 생활문화인 온돌이 공통적으로 확인된 것도 매우 뜻깊은 일이다. 우리 조상들이 땅속에 지문을 남겨 놓은 것이다. 이처럼 연해주는 과거 우리 역사의 무대였다. 이를 알게 된다면 낯선 백인의 땅이 아니라 친근한 땅으로 다가올 것이다.

연해주는 698년 건국되어 926년 멸망한 발해국의 땅이었다. 고구려 유민이 주축이 되고 말갈족이 참여한 연합정권의 성격을 띤 나라다. 이 때문에 누구 역사인가를 두고 한·중·러·일 사이에 논쟁이 되고 있다. 우리와 일본은 고구려 계통의 역사로 보지만 중국이나 러시아는 말갈족의 역사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중국과 러시아에서는 자기 역사로 삼아 열심히 발굴하고 있는데, 우리는 접근조차 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그러기에 우리 역사가 분명한데도 낯선 역사 취급을 받고 있다. 서울대에서 28년간 봉직하면서 아직 발해사 연구자를 키워내지 못했다고 말하니 버스 안에 있던 일행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만큼 연구하기 어렵기도 하거니와 우리 마음속에서 멀어져 있기도 하다. 광야에서 홀로 외치는 느낌이다. 발해사를 중국사라고 주장한다는 내 말에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더니 동북공정으로 고구려를 중국사로 만든다는 말에는 벌떼처럼 일어난 것만 봐도 그 관심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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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연해주의 크라스키노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크라스키노는 발해 사신들이 배를 타고 동해를 건너 일본으로 가던 항구였다. [사진 김현동 기자]

발해는 현재의 중국 옌볜과 헤이룽장성에 중심지를 두고, 사방 5000리에 이르는 너른 땅을 소유했다. 고구려보다 두 배 정도 큰 나라였다. 발해의 영역은 북쪽으로 하바롭스크가 있는 아무르강 유역까지 뻗어 있었다. 이에 비해 고구려 땅은 남쪽에 치우쳐 있어서 두만강 부근까지 미쳤을 뿐이다. 발해는 연해주에 살던 말갈족을 정복해 다스렸다. 지금 연해주에는 크라스키노 성터, 니콜라예프카 성터, 콕샤로프카1 성터 등 발해 지방성의 유적이 아주 잘 남아 있다. 인구가 적으니 1000년 전의 모습이 훼손되지 않는 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오래전에 사라진 국가이지만 우리 조상이 만주와 연해주란 커다란 대륙을 경영했던 사실을 후손들에게 일깨워 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크라스키노 바닷가에 있는 성터는 발해인들이 배를 타고 동해를 건너가던 항구도시였다. 100명이 넘는 인원이 목숨을 걸고 초겨울에 북서계절풍을 타고 바다를 건넜다가 봄에 동남계절풍을 타고 귀국했다. 이 당시에 일본은 바다를 건너지 못해 발해 배를 타고 당나라에 건너갈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크라스키노 성터는 한국과 일본, 중국 연구자들이 경쟁적으로 발굴하는 각축장이 되어 있다. 이처럼 발해는 대륙을 경영한 국가이면서, 거친 겨울 바다를 헤치고 해양을 개척한 나라였다.

고려 이후에 우리 활동은 한반도로 축소되었고, 남북 분단이 된 지금에 와서는 한반도 남부에 국한되기에 이르렀다. 하산의 두만강에서 건너다 보이는 북한 땅은 범접할 수 없는 곳이 되었고, 우리는 대륙에 연결된 사실을 잊은 채 섬 아닌 섬에 갇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극동에 사는 우리가 연해주의 서양인들과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곳에 와서야 새삼 느끼게 된다. 국경수비대가 허락하지 않아 이번에는 두만강과 북한 땅을 건너다 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기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거쳐 서유럽까지 갈 수 있음에도 북한에 가로막혀 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영토의 분단은 이렇게 사고의 분단마저 불러왔다. 우리의 생각이 한반도 남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것은 생각의 크기도 줄어들게 했다.

우리는 이제 다시 대륙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진정한 통일은 영토뿐 아니라 사고에서도 대륙으로 열려 있을 때 실현될 수 있다. 발해인은 신라인과 함께 남북국 시대에 살았고, 지금 우리는 남북한 분단시대에 살고 있다. 남북한 시대에 남북국 시대를 생각하며 미래를 설계해 볼 때다.

하바롭스크에서 탄 귀국 비행기가 아무르강에서 랴오둥반도에 이르는 발해의 국경선을 따라 날고 있었다. 거대한 영역을 하늘에서 다시금 확인한 순간이었다.

송기호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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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