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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의 현문우답] 예수를 만나다 32 - 틱 낫한의 시에서 예수를 보다

갈릴리 호수의 북쪽에는 산촌 마을이 있다. 가버나움에서 산길 도로를 타고 20분쯤 가면 고라신이 있다. 예수는 가버나움에 거처를 두고, 주위 산촌 마을의 회당을 돌아다니며 설교를 했다. 고라신도 그 중 하나였다. 마태복음에는 예수가 고라신을 거세게 꾸짖는 장면이 나온다. 기적을 많이 베풀었는데도 고라신 마을의 주민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행하여라, 너 고라신아! 불행하여라, 너 벳새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두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마태복음 11장21~2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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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신은 폐허가 된 유적지다. 발굴단에 의해 예수 당시에 있던 건축물의 일부가 복원돼 있다.

‘자루옷’은 그리스어로 ‘삭코스’다. 히브리어로는 ‘삭(saq)’이다. 요즘 학생들이 짊어지고 다니는 ‘배낭(sack)’의 어원이다. 구약에서 자루옷은 죽음을 애도할 때 입었다. 부모나 자식이 죽었을 때도 그랬고, 남편이 죽었을 때도 아내는 자루옷을 입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회개할 때도 그랬다. ‘시편’에는 가까운 사람이 아플 때도 그 아픔에 동참한다는 의미에서 자루옷을 입었다고 한다. 전쟁에서 패했을 때는 패배를 인정하고 고개를 숙인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자루옷을 입기도 했다.

유대인들은 자루옷을 입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자루옷을 입은 이들은 자신의 아픈 마음을 행동으로 드러냈다. 입고 있는 옷을 찢어서 벗기도 하고, 머리에 재나 흙먼지를 뿌리기도 했다. 아예 잿더미 속에 들어가 뒹굴기도 했다. 그리고 금식하며 통곡했다. 예수는 당시 유대의 풍습을 빗대며 고라신을 꾸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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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신에는 무너진 바위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왼편 멀리 산 아래로 갈릴리 호수가 보인다.

나는 그 마을을 보고 싶었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차를 몰고 고라신 마을로 갔다. 굽이굽이 산길이었다. 올라갈수록 갈릴리 호수는 저 아래로 펼쳐졌다. 대신 산촌의 푸른 초지가 능선을 그리며 나타났다. 고라신 마을은 폐허에서 발굴한 유적지였다.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순례객도 없고, 관광용 버스도 보이지 않았다. 고라신의 관리인은 “이곳은 단체 여행객이 좀체 오지 않는다. 주로 개인적으로 찾아오는 순례객이 대부분이다”고 설명했다. 단체객을 대상으로 한 성지순례 프로그램에는 이곳이 빠져 있다. 예수와 직접 연관되는 무언가가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예수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받고 결국 몰락한 마을이라서일까. 그도 아니면 여행 일정상 시간이 너무 빠듯하기 때문일까. 이스라엘은 세 번째 순례였지만 나도 고라신 방문은 처음이었다.

입장권을 끊고 안으로 들어갔다. 제주도의 현무암 같은 돌로 담이 쌓여 있었다. 나는 돌담을 만져보았다. ‘예수는 두 발로 걸어다녔다. 호숫가의 가버나움에서 이곳까지 제자들과 함께 산길을 타고 올라왔겠지. 적잖이 가파른 길이다. 봄과 여름에는 꽤 더웠을 터이다. 땀을 흘린 예수는 그늘에 앉아 목도 축였겠지. 그리고 제자들에게 하늘의 소리를 간간이 들려주었겠지. 그럼 제자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들은 이런저런 문답을 주고 받았을 터이다. 때로는 제자들의 가슴이 뻥 뚫리기도 했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돌담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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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이 된 고라신 유적지에 세워져 있는 팻말. 고라신의 역사가 간략히 적혀 있다.
 

복음서에는 예수가 이 마을에서 ‘많은 기적’을 일으켰다고 기록돼 있다. 그리스어 성경을 찾아봤다. 이 구절에서 ‘기적’에 해당하는 단어는 ‘dunamis(두나미스)’였다. ‘힘(power)’ 또는 ‘능력(ability)’이란 뜻이다. 예수는 이 마을에서 자신의 ‘커다란 능력’을 보여주었다. 병자를 치유한 능력일 수도 있고, 마음을 치유한 능력일 수도 있다. 기적의 구체적인 내용은 성경에 기록돼 있지 않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회개를 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뜻밖이다. 내 눈으로 살아 있는 예수를 직접 보고, 내 귀로 예수의 설교를 직접 들으면 ‘지이~잉’하고 자동으로 마음이 열릴 것만 같다. 실은 그렇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마음의 문고리가 안쪽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예수가 밖에서 문을 두드릴 수는 있다. ‘쿵! 쿵!’하고 세게 칠 수도 있다. 그러나 밖에는 문고리가 없다. 마음의 문은 안에서만 열린다. 그러니 회개는 전적으로 나의 몫이다. 내 마음의 문고리는 안쪽에만 달려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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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신 마을의 건축은 주로 현무암을 사용했다. 현우암은 단단한 돌이라 깎기가 무척 힘들다.
 

고라신 유적은 이스라엘의 국립공원이었다. 팻말도 서 있었다. ‘고라신(Korazimㆍchorazin)은 기원전 3~5세기 탈무드 시대에 생겨난 마을이다. 사람들이 이곳에서 계속 살다가 8세기경 황폐화했다’고 적혀 있었다. 예수는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 등 회개하지 않는 마을을 향해 ”심판 날에는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나는 무너진 바위 위에 앉았다. 눈을 감았다. ‘심판’이란 무엇일까. 사람들은 심판을 거론할 때 주로 ‘종말’ 혹은 ‘사후 심판’을 떠올린다. 그래서 천국에 가느냐, 지옥에 가느냐를 따진다. 그게 다일까. 심판은 우리가 ‘신의 속성’에서 벗어났을 때 감당해야 하는 결과물이다. 그게 ‘심판’이다. 그러니 ‘심판의 순간’은 우리가 살아가는 매 순간에 있지 않을까. ‘신의 속성’을 등지고 ‘에고의 속성’을 따름으로 인해 삶에서 감당해야 하는 온갖 파도들 말이다. 그런 파도들이야말로 심판의 흔적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그런 파도들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한다. 돌아가라고, 신의 속성으로 돌아가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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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신 마을에 있었던 회당의 유적지. 그리스 신전처럼 생긴 회당 기둥의 일부가 남아 있다.

고라신 마을의 회당(시나고그) 유적지로 갔다. 현무암으로 깎은 기둥이 서 있었다. 그리스 신전처럼 생긴 지붕은 부서져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예수도 고라신 마을에 왔을 때 회당으로 들어갔다. 갈릴리 호수 주위의 산촌 마을을 돌 때도 예수는 늘 회당에서 설교를 했다. 그러니 눈 앞에 펼쳐진 저 유적의 폐허 속에, 2000년 전에는 예수가 서 있었다. 그는 바로 이곳에서 사람들에게 ‘메타노이아(Metanoia)’를 역설했다. ‘회개’ 혹은 ‘회심’이다. ‘회개’는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일이다. 거기서만 끝나면 곤란하다. 반성만 하고 ‘눈’을 바꾸지 않으면 똑같은 잘못을 다시 저지르게 된다. 결국 끝없는 잘못과 끝없는 회개가 반복될 뿐이다.

그래서 ‘회심’이 필요하다. 회심이란 뭘까. 우리의 ‘눈’을 바꾸는 일이다. ‘에고의 눈’을 ‘예수의 눈’으로 돌리는 일이다. 사람들은 반박한다. ”‘예수의 눈’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돌릴 것 아닌가. 말이 쉽지, 그게 쉽나.“ ‘예수의 눈’은 멀리 있지 않다. 신은 인간을 지을 때 ‘신의 속성’을 불어넣었다. 우리 안에는 ‘신의 속성’이 들어차 있다. 다만 우리가 모를 뿐이다. 그래서 예수는 고라신의 사람들을 강하게 꾸짖었다. 그들 속에 있는 ‘신의 속성’을 보라고, 거기에 눈을 뜨라고 말이다. 그걸 위해 ”회개하라“고 했다. 그렇게 ‘나의 눈’을 무너뜨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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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당 건물의 일부 파편. 메두사의 머리가 조각돼 있다.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고라신의 회당은 현무암으로 지었다. 이스라엘은 사막 기후다. 큰 돌이 귀하다. 그래서인지 갈릴리 일대에서는 건축할 때 현무암을 썼다. 고라신도 마찬가지였다. 현무암은 굉장히 단단한 돌이다. 수백 번씩 깎아야만 조각을 할 수 있다. 고라신 사람들이 만약 현무암처럼 자신을 깎았다면 어땠을까. 수백 번씩 자신을 뚫고 부수며 ‘눈’을 돌렸다면 어땠을까. 그럼 예수가 저토록 절절하게 ‘회개’를 지적하지는 않았을 터이다.

고라신 마을을 떠났다. 차를 몰고 갈릴리 호수로 내려갔다. 예수 당시로부터 지금껏 2000년 세월이 훌쩍 지났다. 앞으로의 2000년도 그렇게 훌쩍 지나겠지. 우리는 모두 그 속에서 잠시 머물다 간다. 긴 시간의 눈으로 보면 개인의 삶이란 참으로 순간이다. 그래서 더욱 간절한 걸까. 영원에 대한 갈망, 신의 속성에 대한 염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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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신의 무너진 회당 지붕. 돌에 새긴 문양들은 이스라엘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자연에서 가져왔다.

갈릴리 호수 근처로 내려왔다. 차를 공용 주차장에 세웠다. 내려서 호숫가를 걸었다. 갈릴리 근처의 어느 동네였을까. 예수는 그런 ‘영원’이 누구에게 나타나는지 설한 적이 있다. 예수는 성령(holy spirit) 안에 잠겨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누가복음 10장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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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록 이스트레이크 작 ‘어린이를 축복하는 예수’.

‘나의 눈’과 ‘예수의 눈’은 다르다. 우리는 무기라고 생각한다. 지혜와 슬기 말이다. 그걸 통해 ‘영원’을 성취한다고 믿는다. 예수는 달리 말한다. ”지혜롭다는 자들(The wise)과 슬기롭다는 자들(The intelligent)에게는 이것을 감추신다”고 했다. 지혜와 슬기를 통해서는 성령 속에 잠길 수가 없다고, 신의 속성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단정한다. 왜 그럴까.

답은 간단하다. 지혜롭다는 자들은 ‘나의 지혜’를 말하고, 슬기롭다는 자들도 ‘나의 슬기’를 말한다. 나의 지혜가 뭘까. 에고의 지혜다. 나의 슬기가 뭘까. 에고의 슬기다. 제 아무리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갖추고 있고, 그걸 활용하고 있다고 해도 에고의 울타리 안에서 맴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럴수록 영원에 대한 우리의 갈망은 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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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티소 작 ‘고통받는 어린 아이여 내게로 오라’.

우리는 종종 착각한다. ‘갈망=집착’이라 생각한다. 찬찬히 보면 그렇지 않다. 집착을 갖고 갈망할 수도 있고, 집착을 내려놓고 갈망할 수도 있다. 혜능 대사는 ”머무는 바없이 마음을 내라“고 했다. 집착 없이 갈망하라는 뜻이다. 육조 혜능은 초조 달마로부터 내려오는 깨달음의 법맥을 온전히 이어받은 인물이다. 그는 세상을 ‘깨달음의 눈’으로 본다. 그 눈에는 빤히 보인다. 우리가 무언가를 갈망할 때, 어떤 식으로 갈망해야 하는지. 어떻게 갈망해야 그 갈망이 이루어지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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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메스 작 ‘아이들을 축복하는 그리스도’.

갈망은 나를 떠나가야 한다. 그래서 저 우주로 녹아들어야 한다. 그래야 갈망과 우주가 하나가 된다. 그럴 때 하나로 작동한다. 그런데 갈망에 집착이 달라붙어 있으면 어찌 될까. 나를 떠나가지 못한다. 내가 브레이크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강하게 집착할수록 강하게 브레이크를 거는 셈이다. 그래서 강한 갈망보다 집착 없는 갈망이 더 잘 작동하는 법이다.

우리는 무기라고 생각한다. 지혜와 슬기가 말이다. 예수는 달리 말한다. ”지혜롭다는 자들(The wise)과 슬기롭다는 자들(The intelligent)에게는 이것을 감추신다”고 지적했다. 왜 그럴까. 지혜(sophos)’와 ‘슬기(sunetos)’를 자처하면 왜 ‘신의 속성’이 드러나지 않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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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르 브뤼헐 작 ‘바벨탑’. 하늘에 닿으려는 인간의 욕망이 탑을 쌓았다.

하늘에 닿으려면 어찌해야 할까. 사람들은 무언가를 쌓는다. 돌을 놓고, 그 위에 또 돌을 놓고, 그 위에 또 돌을 놓는다. 그렇게 층층이 쌓아서 올라가며 하늘로 손을 뻗는다. 나의 지혜와 나의 슬기도 마찬가지다. 그걸 쌓고 쌓아서 ‘신이 속성’에 닿으려 한다. 성경에도 그렇게 쌓아서 올라가는 탑이 등장한다. 그 이름이 ‘바벨탑’이다. 그런 탑은 하늘에 닿을 수가 없다. 왜 그럴까. 아무리 높이 올라간다 해도 결국 땅에 머물기 때문이다.

예수는 ‘신의 속성’이 바벨탑이 아니라 철부지에게 드러난다고 했다. 그리스어 성경에서 ‘철부지’는 ‘nepios(네피오스)’이다. ‘어린이’라는 뜻도 있고, ‘마음이 담백한 사람, 마음이 단출한 사람(a simple-minded)’이란 뜻도 있다. 그럼 우리의 마음은 언제 담백한 마음(simple-minded)이 될까. 탑에서 내려올 때다. 쌓고 쌓아서 올라가던 돌들을 하나씩 빼면서 내려올 때다. 그렇게 낮아지고 낮아지다가 맨 밑의 주춧돌까지 빼버릴 때, 무엇이 드러날까. 그렇다. 비로소 하늘이 드러난다. 나의 지혜와 나의 슬기로 가리지 않는 하늘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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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드릭 반 클레브 작 ‘바벨탑’.

하늘과 하나가 된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누가복음 10장22절)

예수는 왜 “아버지께서 모든 걸 내게 넘겨주셨다”고 했을까. 예수의 속성과 신의 속성이 같아서다. 그래서 통한다. 통하니까 안다. 아들은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는 아들을 안다. 예수 당시에는 신의 속성을 알아보는 이가 없었다. 세례 요한조차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마태복음 11장3절)라며 헛갈려 했다. 눈이 밝다는 세례 요한이 그랬으니, 다른 사람들은 오죽했을까. 예수의 제자들도 그랬다. ‘예수의 속성’을 몰라봤다. 그러니 바리새인 등 유대 율법주의자들은 상상도 못했을 터이다. 예수의 속성과 신의 속성이 같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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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작 ‘론 강 위로 별이 빛나는 밤’. 강 속에 별이 있고, 그 별 속에 또 강이 흐른다.

틱 낫한 스님의 ‘서로 안에 있음’이란 시(詩)가 있다. 영어 제목은 ‘interbeing’이다. 예수가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가 예수를 아는 까닭도 ‘interbeing’이다. 그걸 예수는 “아버지가 내 안에 있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 “나를 보는 것이 곧 아버지를 보는 것이다”라고 표현했다. 틱 낫한의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해가 내 안으로 들어온다
구름과 강과 더불어 내 안으로 들어온다
나 또한 강으로 들어간다
구름과 강과 더불어 해로 들어간다
우리가 서로 안에 들어가지 않는
그런 순간은 없다

그렇지만 내 안으로 들어오기 전,
해는 이미 내 안에
구름과 강과 더불어 내 안에 있었다
강으로 들어가기 전,
나는 이미 그 안에 있었다
우리가 서로 안에 들어가 있지 않는
그런 순간은 없었다

그러니, 알아다오
네가 숨을 멎는 그 순간까지
내가 네 안에 들어 있음을.’

- 『영혼을 깨우는 시읽기』(이현경 역) 중에서 틱 낫한의 시 ‘서로 안에 있음’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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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츠 폰 우데 작 ‘아이들을 내게 오게 하라’.

예수도 우리에게 말한다. 들어오라고. 내 안으로 들어오라고. 그걸 ”내가 너희 안에 거하듯 너희가 내 안에 거하라“고 표현했다.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불어넣었던 신의 속성은 이미 우리 안에 있다. 단 한 순간도 우리와 떨어진 적이 없다. 품고 있으면서도 우리가 보지 못할 뿐이다. 나의 지혜로 인해, 나의 슬기로 인해 말이다. 그래서 예수는 ”철부지가 돼라“고 했다. 갈릴리 호수까지 내려왔을 때 나는 틱 낫한 시의 마지막 구절을 몇 번이나 소리 내어 읊었다.

‘그러니, 알아다오
네가 숨을 멎는 그 순간까지
내가 네 안에 들어 있음을.’

지금 이 순간, 예수도 우리에게 말한다.

“네가 숨을 멎는 그 순간까지 나는 네 안에 들어 있다.”

<33회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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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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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