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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리포트] “야옹·멍멍이 시중드는 우리는 행복한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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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이름: 보리(사실상 주인님), 집사 이름: 배원향, 조태호

분명 주인일진대 스스로 ‘집사’라 일컫는다. 먹이고 재우는 부모 노릇을 하지만, 그만큼 자주 친구도 된다. 반려동물 1000만 마리 시대, “가족 못잖다”란 말로 애정을 표한다. 애완동물(愛玩動物)이란 말 대신 사람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의미인 반려동물(伴侶動物)이라는 호칭이 일반화된 배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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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이름 : 나장미(rose), 엄마: 유보라, 아빠: 나훈영 [사진 김민경]

2030세대 중 자칭 ‘집사’들의 삶에서도 반려동물이 차지하는 몫은 크다. 반려동물 때문에 일상의 일부분을 포기하는 건 예사고, 아예 새로운 진로를 찾아나서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힐난해도, 마음 아파할지언정 궤도를 수정하지 않는다. 청춘리포트팀은 스스로 반려동물의 ‘충성스러운 집사’ ‘극성맞은 엄마’라 일컫는 네 명의 청춘을 만났다.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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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당당이, 보리, 루이와 집사 박현선씨.

“이 강아지, 사실상 실명 상태네요.”

동물과 가족된 2030
약속·여행 주도권 모두 뺏겼지만
서로 감정 나누고 위로 받는 즐거움
사람보다 수명 짧아 이별 준비해야
안락사 뒤 화장, 유골함 보관도


4년 전, 반려견 ‘보리’를 데리고 동물병원을 찾았던 박현선(37)씨에게 수의사가 한 말이다. 보리는 원래 주인이 “사람만 보면 물고 짖어 도저히 키울 수 없다”며 파양한 개다. 그런 처지가 안쓰러웠던 박씨는 보리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동물병원에 데려갔고 “망막에 염증이 생겨 어슴푸레한 빛밖에 볼 수 없는 상태”라는 설명을 들었다. 진료 후 더 깊은 연민이 생긴 박씨는 ‘보리를 잘 키우겠다’고 마음먹었다.

청춘리포트팀이 만난 네 명의 청춘은 모두 상처 있는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었다.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애틋함 때문이다. 2010년 고양이 분양소를 찾았던 이은정(34)씨는 키우겠다는 이가 없어 곧 안락사당할 예정이던 다섯 마리를 데려왔다. 이하영(28)씨는 2년 전 경기 고양시의 유기견 보호소에서 ‘땅콩이’를 입양했다. 땅콩이는 주인에게 골프채로 학대를 당해 긴 막대만 보면 움츠러드는 강아지였다.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고양이 웹툰 ‘뽀짜툰’을 연재하는 작가 채유리(39)씨는 길고양이 다섯 마리를 보듬었다.
 
◆고민과 적응
‘새 가족’을 받아들이는 게 마냥 쉽지는 않았다. 보리를 키우는 박현선씨도 자신만 보면 으르렁거리는 모습에 지쳐 ‘다시 돌려보낼까’ 몇 번을 고민했다. 하지만 ‘사람에게 상처받은 보리에게 다시 상처를 줄 순 없다’는 생각에 그때마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박씨는 지난해 1월 반려동물 교육기관을 찾아가 아로마 치료법과 마사지를 배웠다. 보리가 좋아하자 아예 ‘펫 허브테라피’ ‘펫 마사지’ 등 다섯 개의 자격증도 땄다. 박씨는 “보리를 씻기거나 털을 다듬어주면서 조금씩 덜 두려워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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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씨의 고양이들은 먹이를 줄 때면 모여든다.

반려동물에 대한 고민 끝에 진로를 수정한 경우도 있다. 동물병원에서 일하던 이은정씨는 집에서 매일같이 싸워대는 고양이들이 마음에 걸렸다. 고양이 뒤치다꺼리를 하다 한때 천식까지 앓았지만, 고양이들 다툼이 더 큰 고민이었다. 이를 해결하려 펫 아로마테라피를 공부한 이씨는 아예 아로마테라피스트로 직업을 바꾸고 서울 홍익대 인근에 고양이 잡화점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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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영씨는 2년 전 푸들 두 마리를 입양했다.

자취생이던 이하영씨는 반려견 ‘땅콩이’에게 일상을 맞추다 보니 어느덧 친구와 약속을 잡기도, 여행을 가기도 어려워졌다. 프로그램 개발자인 이씨는 이런 자신의 고민을 담아 ‘도그메이트(dogmate)’라는 사업을 시작했다. 집을 비우는 동안 반려동물을 맡아줄 사람을 연결해 주는 온라인 서비스다. 이씨는 “주인과 반려동물이 서로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위안
“가족이 좋은 이유가 따로 있나요?”

반려동물이 주는 행복이 뭔지를 묻는 물음에 네 명 모두 하나같이 되물었다. 이들은 반려동물로부터 가족 못잖은 위안을 얻고 있었다.

“20대 초반, 개인적으로 한창 힘들 때라 나쁜 생각까지 들었는데요. 갑자기 옆에 있던 고양이 ‘양락이’가 처음 듣는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아, 난 혼자가 아니구나’라고 느꼈어요.” 이은정씨가 전한 20대 초반의 경험이다.

이씨는 고양이가 사람의 감정을 읽는다고 믿는다. “지금은 고양이가 여덟 마리예요. 화를 내거나 슬퍼하면 고양이들도 그걸 알아요. 그래서 화도 덜 내고 좋은 생각만 하려 노력해요.“

박현선씨는 2년 전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실 때를 떠올렸다. 한창 실의에 빠져 있을 때, 보리와 또 다른 반려견 ‘루이’ ‘당당이’도 풀이 죽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선 ‘얘네들 밥 주려면 힘 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는 ”일상의 스트레스도 주말에 반려견과 산책을 하며 날려버린다”고 했다.
 
◆헤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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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유리씨와 세상을 떠난 짜구의 추억이 담긴 사진.

반려동물의 수명은 사람보다 짧다. 이별에 대한 각오가 필연적인 이유다. 웹툰 작가 채유리씨는 지난달 21일, 13년 동안 키운 고양이 ‘짜구’를 안락사시켰다. 복막염 진단을 받은 지 한 달 만이었다. 복막염은 고양이에게 유독 고통스러운 병이다. 안락사 당일 밤에만 발작을 네 번 했다.

채씨는 반려동물 장례식장에서 짜구를 화장했다. 유골은 유리함에 담아 방 책꽂이 한쪽에 보관 중이다. 박현선씨는 2013년 죽은 반려견 ‘해피’의 유골을 돌로 만들었고, 이은정씨는 지난해 떠나보낸 고양이 ‘큐피’의 생전 모습을 사진첩으로 만들었다. 채씨는 “반려동물의 아픔과 죽음도 내가 감당할 몫이지만, 짜구는 너무 힘들게 죽었다. 다른 아이들과는 잠들 듯 평화롭게 이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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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세대에게 반려동물과 동고동락하는 ‘집사’의 모습은 자연스럽다. 반려동물 장례식뿐 아니라 반려동물 전용 해수욕장도 인기를 끌었다. 인스타그램 등 2030이 즐겨 찾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좋아요’ 수가 100만 넘는 SNS 반려동물 스타도 많다. 지난달 서울시가 15세 이상 가구주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서울에 사는 15~29세 가구주의 22.7%가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었다.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은 비율이다.

반려동물 시장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반려동물 시장 규모는 1조8100억원으로 2012년 9000억원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자녀 없이 반려동물만 키우는 ‘딩펫족’(DINKPet·자녀 없이 맞벌이로 살아간다는 의미인 ‘Double Income No Kids’와 반려동물인 Pet의 합성어)이란 신조어가 생기는 등 관련 시장이 계속 성장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하지만 ‘청춘 집사’들이 늘면서 갈등도 빈발한다. 지난달에는 전북 익산에서 이웃이 키우던 대형 반려견을 잡아먹은 70대 노인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을 비하하는 ‘캣맘충’이라는 용어도 논란이 됐다. 박씨는 “내가 남들에게 동물을 사랑하라고 강요하지 않듯,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각자의 가치관을 존중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재영 기자 yun.jae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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