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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oo으로 배웠네-시즌2] 남자들이여, 질척대지 말지어다

잘생긴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 여자는 없다. 예쁜 여자를 싫어하는 남자도 없다. 이 모두는 참이다. 하지만 문장으로서만 참이다. 문제는 여자들이 생각하는 저 ‘잘생긴 남자’가 당신(남자)이 생각하는 ‘잘생긴 남자’와는 한참 다르다는 데 있다.

여자들과 조금이라도 속 깊은 대화를 해 본 사람이라면, 저 ‘잘생긴 남자’의 기준이 시도 때도 없이 바뀐다는 사실을 이해할 것이다. 오히려 여자들은 남자들이 생각하는 ‘예쁜 여자’가 수시로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란다. 아무튼 ‘잘생긴 남자를 좋아한다’는 여자가 남자들의 눈에 전혀 잘생겨 보이지 않는 남자를 이상형으로 꼽을 때, 그리 놀라지 않는 게 좋다. 이건 ‘본래 남녀 사이에는 미적 감각이 다르다’와는 좀 다른 얘기다. 굳이 말하자면, 남자의 미적 감각이 비교적 고정적이라면(예를 들어 한 남자가 10명의 여자를 놓고 1위부터 10위까지 미인의 순위를 매긴다면, 3년후나 5년 후, 10년 후에도 그 순위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 여자의 순위는 당장 며칠 뒤에도 바뀔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아무튼 대한민국에서 뭔가 연애를 해 보려면,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남자는 ‘못생긴 남자’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럼 대체 뭘까. 수많은 종류의 취향이 있지만 거의 모든 여자들이 공통적으로 싫어하는 남자는 ‘찌질하게 질척대는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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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리지 말아요. 우린 끝났어요.

“아름다운 피비. 제발 나를 무시하지 마.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으니 말만이라도 따뜻하게 해줘. 사람 죽이는 데 이골이 난 망나니라도 도끼를 내리칠 때에는 용서를 구한다고 하잖아. 그런데 넌 그 망나니보다 더 잔인해지려는 거야?”

셰익스피어의 희극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 3막에 나오는 실비어스의 대사. 여기 나오는 목동 실비어스는 다른 농가집 처녀 피비에게 반해 있다. 하지만 피비는 실비어스를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그런 피비에게 실비어스는 눈물로 호소하며 제발 자신을 불쌍히 여겨 자신의 사랑을 받아 달라고 애원한다. 피비가 실비어스의 구애를 매몰차게 거절하는 것은 현재 사정에 의해 남장을 하고 있는 백작집 규수 로잘린드에게 홀딱 반해 있기도 하지만, 사실 더 큰 이유는 실비어스의 질척댐이 너무 짜증스럽다는 데 있다.

모든 사랑 고백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한번의 고백이 실패한다고 해서 그 사랑이 실패하는 것도 결코 아니다. 하지만 실비어스의 가장 큰 문제는 한결같이 ‘질척대기만’ 한다는 점이다.

실비어스: 아름다운 피비, 제발 나를 동정해 줘.
피비: 정말 미안해.
실비어스: 동정이 있는 곳이 구원이 있어. 내 사랑을 동정해 준다면, 그래서 나를 사랑해 준다면, 너의 미안함과 나의 아픔이 사라질 거야.
피비: 사랑해 줄게. 친구로서.
실비어스: 너를 갖고 싶어.
피비: 실비어스. 지금까지는 네가 너무 미웠어. 날마다 사랑 이야기를 하는 네가 솔직히 귀찮았어. 하지만 참고 친구가 되어 줄게. 앞으론 부탁도 많이 할 거야. 하지만 부탁을 받는 것 이상으로 보답을 바라지는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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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매달려도

모든 남자들의 악몽인 ‘친구로 지내자’는 이 시절부터 존재했다. 이런 피비를 향해 셰익스피어는 극중 인물인 로잘린드의 입을 빌어 “이봐 양치기 자네, 자네는 왜 저런 여자 꽁무니를 따라다니나. 탄식과 눈물을 뿌릴 정도로 어여쁜 여자도 아닌데. 저 여자보단 당신이 몇백배 멋지게 생겼소. 이봐요 아가씨. 분수를 알고 살아요. (중략)못생긴 주제에 다른 사람을 깔보다니, 천하에 몹쓸 사람이군요.”라고 독설을 퍼붓는다.

이 대사를 쓸 때의 셰익스피어는 로잘린드가 사실은 여자라는 점을 잊고 너무나 자기 자신의 태도에 푹 빠져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뛰어난 점은 바로 저런 실비어스의 태도야 말로 여자들로 하여금 오만정이 다 떨어지게 한다는 점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다는 데 있다.

여자들이 싫다고 하면, 그건 너의 꼬라지와 태도로 볼 때 감히 내가 너를 받아들인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경우 조금이라도 상황을 바꾸려는 의지가 있다면, 그 꼬라지와 태도에 변화를 줘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사가 시작된 이래 수많은 수컷들은 똑 같은 모습으로 여자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동정심에 매달리는 형편없는 전략을 썼다. 참으로 지독한 일관성이다. 18세 때 무려 8년 연상의 여자와 결혼한 뒤 21세 때 아내와 세 아이를 고향에 남겨둔 채 런던으로 건너와 배우 겸 작가 활동을 했던 그에게 연애란 너무나 일상의 일부였을 것이고, 그의 많은 작품들에선 이런 통찰이 수시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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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렇게 매달려도

아무튼 이런 ‘동정심에 매달리는 전략’은 여자들이 기본적으로 모성애를 갖고 있는 존재라는 데서 착안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다면 그건 정말 큰 오산일 수밖에 없다. 모성애란 본질적으로 자신이 보호해야 하는 어린 존재들을 대할 때 발산되는 것이지, 자신을 보호하고 먹을 것을 구해 와야 하는 수컷을 향한 것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여자들은 바로 ‘모성애를 갖고 있기 때문에’ 애원하고 매달리는 연약한 존재들은 냉혹하게 뿌리치도록 설계된 존재들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보자. 누가 저런 나약한 존재들의 DNA를 받아 새끼를 낳고 미래를 기약하고자 하겠느냐는 말이다.

물론 이런 조연들 말고 남자 주인공들도 간절히 사랑을 호소할 때가 있기는 있다. ‘뜻대로 하세요’에도 남자 주인공 올란도가 이런 말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로잘린드: (전략) 사랑 때문에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올란도: 나의 로잘린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소. 나는 그녀가 찌푸리기만 해도 죽을 거요.


하지만 그 호소는 실천의 의지가 담겨 있다는 데서 이런 질척댐과 다르다. 이 대목에서 의성이의실제 경험담으로 넘어가 보자. 젊은 날 의성이에게는 매우 마초스러운 선배 하나가 있었다. 훤칠한 키에 괜찮은 용모, 법조계 종사자라는 타이틀 덕분에 여자들에게 인기가 꽤 있는 편이고, 평소 적잖은 연애 관계를 갖고 있었고 평소 지론이 ‘어디 여자가 너 하나냐’일 만큼 절대 싫다는 여자에게 매달리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에게도 임자가 나타났다. 부유한 가문의 따님으로 태어나 유학을 다녀온 뒤 영연방계 국가 대사관 직원으로 일하고 있던 그녀는 미모와 안목을 고루 갖춘 터라 당연히 눈이 높았고, 성격도 전형적인 얼음공주였다. 구애는 난항에 부딪혔다.

어느날 술자리에서 선배는 의성이에게 잘 풀리지 않는 연애 이야기를 했다. 상황은 이미 난파 직전. 어렵사리 가진 두어 차례 술자리에서 선배는 얼음공주에게 속마음을 털어놨지만 그녀는 자연스럽게 위빙(weaving)으로 선배의 진지함을 피해갔다.

얘기를 들어보니 그 회피 동작의 유연함으로 볼 때 얼음공주는 보통 선수가 아니었다. 확실하게 ‘넌 아니야’라고 말해 상대의 자존심을 자극하지도 않으면서, 언제든 나중에 ‘난 그 말이 그렇게 진지한 얘기였는지 몰랐어’라고 발뺌할 수 있는 선의 묘한 대응이었다. 아마도 유년 시절 이후 수많은 ‘찔러보기’의 대상이 되어 보았을 터, 그런 현명한 대응의 기술이 자연스레 몸에 밴 듯 했다. 아무튼 상황으로 봐선 선배의 명백한 1패. 그러나 도전자는 아직 패전을 인정하지 않은 채 역전의 기회를 찾고 있었다.

어줍잖게 상담역이 된 의성은 말했다. 아마도 정상적인 방법은 이미 틀린 듯 하다. 그분이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이미 차단되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 뭔가 그분의 예상을 뛰어 넘는 접근만이 약간이라도 가능성이 남아 있을 것 같다. 함께 자리한 다른 선배의 의견도 비슷했다. 완전히 포기한 듯, 연락을 끊고 돌아섰다가 최후의 한 방을 노려라. 그 한방에 온 힘을 다 쏟아야 한다. 두 사람 모두 “절대 찌질대거나 매달리지 마라. 그거야 말로 가능성을 0으로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평소 같으면 그러란다고 그럴 사람도 아니었지만 사람이 절박해지면 엉뚱한 짓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어쨌든 그 다음달 초로 예정돼 있던 그녀의 생일을 전후해 뭔가 정교하게 계산된 일격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본 뒤, 세 사람은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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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받아주는 도라에몽이 아니랍니다

다음달 초, 출장지 싱가포르에서 바쁜 하루 일과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온 얼음공주는 로비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아는 얼굴을 마주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적절히 피곤해 보이는, 하지만 초췌하거나 구질구질하지는 않은, 잘 아는 남자가 자신에게 불쑥 꽃다발(그 달의 탄생화)을 건넸기 때문이었다. 로비에서 샌드위치와 차 한잔을 주문했지만 미처 다 먹을 시간도 없었고, 남자는 밤 비행기를 타고 다음날 출근을 위해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 “그냥 생일날 꽃을 전해 주고 싶었다”는 남자는 “못 만나면 콘시어지에게 꽃만 맡기고 갈 뻔 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남자는 심지어 서울에서의 다음 만남조차도 기약하지 않은 채 공항으로 떠났다.

다행히 최후의 한방이 상황의 변화를 가져왔고, 커플은 몇 달 뒤 결혼식을 올렸다. 의성이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최선의 한수는 진실함이나 절박함, 애절함이나 처연함에서 나오는 것이 결코 아님을. 최강의 수는 자신감과 능력, 그리고 보장된 헌신에 대한 가시적 표현임을.

선배는 어쨌든 그녀가 생일 전후 출장을 간다는 사실과 싱가포르의 수백개 호텔 가운데 그녀가 어디 머물지를 스스로의 능력으로 알아낼 수 있었고, 기약 없는 기다림을 자신있게 선택할 수 있었고, 왕복 열 두 시간의 지루한 비행과 항공료 따위는 잠시라도 그녀를 만날 수 있는 행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님을 몸소 보여줬다. 오래 머무르지 않아 환상이 깨질 여유를 주지 않았고, 자신이 그녀를 대할 때 뭔가 들인 만큼 뽑아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치사한 녀석이 아니라는 것, 또 이런 깜짝 이벤트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태도의 변화가 없다면 그건 그 나름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자신있는 남자라는 것을 충분히 보여줬다. 당일의 상황에서 이 모두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크게 중요치 않다. 핵심은 ‘어쨌든 그녀가 그렇게 인식한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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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연애달인이었던 이분께 배워봐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수많은 남자들이 이런 식의 노력을 하기보다는 자기연민과 눈물로 실패한 사랑을 되새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역시 실비어스가 그렇다. 동네 노인인 코린의 눈에도 실비어스가 한심해 보여 “그 따위 짓을 하니 여자에게 괄시받는 것”이라고 충고하지만 실비어스는 오히려 발끈한다.

실비어스: 제가 얼마나 그 여자를 사랑하는지 영감님은 모를 거예요.
코린: 왜 몰라. 왕년에 사랑 안 해본 사람 있나.
실비어스: 나이든 영감님이 알 턱이 있을리가요. 물론 젊은 시절엔 사랑에 빠져 베개를 껴안고 한숨을 지으며 밤을 새운 적이 있겠지만요. 정말 영감님도 사랑 때문에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단 말이죠?
코린: 하도 많아서 다 기억할 수가 없어.
실비어스: 그게 바로 영감님이 진실한 사랑을 한 적이 없다는 증거라구요. 사랑 때문에 저지른 건 하찮은 바보 짓이라도 그걸 일일이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건 진실로 사랑하지 않았던 거죠.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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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은 약사에게 모성애는 엄마에게

아직도 수많은 젊은이들에게서 실비어스의 모습을 본다. 그 진실함을 인정하고 칭찬하고 싶지만, 그게 과연 그들의 삶에 무슨 도움이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역시 한숨이 나온다. 그런 안타까운 사연을 안주로 평생 의지할 수 있는 술친구를 얻었다면 그나마 다행일지도.
혹시 의성이의 선배가 한 것 같은 무모하고 보장 없는 투자 보다는 본전 한 푼 들지 않는 눈물과 애원이 훨씬 경제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그 원칙에 따라 행동한다면, 그건 또 그 나름 사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 선택은 그 자신의 몫이니까.

P.S.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덧붙이자면, 이 글은 너무나 뻔하게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고 실패하고 나면 너무나 뻔하게 울며 불며 왜 세상이 이 모양이냐고 한탄하는 젊은이(특히 남자)들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해 둔다. 여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저런 기발한 한 수를 쓰는 남자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한 선택이라는 뜻에서 쓴 글이 절대 아니라는 말이다. 일찍이 손자병법에서 지적하고 있듯 병법의 요체는 병불염사(兵不厭詐), 즉 ‘상대를 속이는 것을 꺼리지 않는’ 데 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소박하고 진심 어린, 기술 없는 고백이 좀 더 잘 받아들여지는 세상이라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으나 현실이 그렇지 않음을 어쩌랴. 진심은 통하기 힘들고, 좋은 일은 이뤄지기 쉽지 않은 것을.

정신차려이친구야 기자 notbegging@joongang.co*KR
 
**‘연애를 OO으로 배웠네’ 는?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들이 다양한 문화콘텐트에 연애 경험담을 엮어 연재하는 잡글입니다. 잡글이라 함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기자 이름과 e메일 주소는 글 내용에 맞춰 허구로 만든 것이며 익명으로 연재합니다. 연애 좀비가 사랑꾼이 되는 그날까지 매주 금요일 업데이트합니다. 많은 의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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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