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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악취 주범' 은행나무 알고보면 '부끄럼쟁이'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덕수궁 돌담길을 연인과 손잡고 걷는 풍경은 꽤나 낭만적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그렇지 않다. 길바닥에 우수수 떨어진 은행 열매를 요리조리 피해 걷다 보면 낭만을 만끽할 겨를이 없다. 은행열매를 밟은 채 실내나 지하철을 타기라도 하면 고약한 악취 때문에 오해 받기 십상이다.

은행나무는 알고 보면 꽤 '소심한' 식물이다. 은행나무는 벌레나 동물들로부터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가지 장치를 두고 있는데 악취는 그 중 하나다.

은행열매의 악취는 딱딱한 속껍데기를 감싸고 있는 노랗고 물렁한 껍데기(외과피ㆍ外果皮)에서 난다. 여기에 들어있는 '은행산(ginkgoic acid)'과 점액질의 '빌로볼(bilobol)' 성분이 특유의 냄새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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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부산진구 직원들이 은행 열매 수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송봉근 기자

은행 열매에는 청산배당체라는 독성 물질이 있어서 날것으로 먹으면 중독을 일으킬 수 있다. 또 은행나무 자체에도 '플라보노이드'라는 살균ㆍ살충성분이 있어서 벌레의 유충이나 식물에 기생하는 각종 곰팡이와 바이러스를 억제한다.

이런 자기보호장치 덕분에 은행나무는 중생대 쥐라기 때부터 지금까지 멸종되지 않고 있다. 기간으로 치자면 1억8천만 년 동안 대를 이어온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과도한 자기보호장치가 생존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식물이 번식하려면 동물들이 씨앗이 든 열매를 대신 퍼뜨려줘야 하는데 동물들은 악취 때문에 은행 열매를 먹지 않는다. 은행을 먹는 건 인간이 유일하다. 그래서 은행나무는 인간이 사는 곳에서만 볼 수 있다.

모든 은행나무에서 열매가 열리는 건 아니다. 암나무만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열매를 맺으려면 수령이 30년 정도 돼야 한다. 어린 묘목은 암수 감별이 어렵다. 그래서 가로수를 심을 때 악취를 풍기는 암나무를 걸러내기가 쉽지 않다. 다만 최근에는 산림과학원이 수나무에만 있는 유전자를 발견해 1년 이하의 묘목도 암수 감별이 가능해졌다.

서울시는 악취의 주범 암나무 3만1034그루를 순차적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시민 통행이 많은 지하철역 출입구나 버스정류장, 횡단보도 주변의 암나무를 통행이 적은 녹지대로 옮기고 대신 그 자리에 수나무를 심을 예정이다. 이미 맺힌 열매는 인력을 투입해 수거한 뒤 안전성 검사를 거쳐 경로당과 사회복지시설에 기증할 계획이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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