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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없던 시절, 글꼴 만든 두 ‘최고집’

“글자란 사상이나 뜻을 전달하는 도구이다. 그러므로 읽는 사람이 피로감을 느끼지 않게 글자가 디자인되어야 한다. 글자를 하나하나 쓴다는 것은 예술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글씨를 쓴다고 말하지 않고 자형 설계를 한다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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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호(左), 최정순(右)

1세대 한글 디자이너 최정호(1916∼88)가 생전 한 잡지에 밝힌 글자 디자인 철학이다. 지금은 컴퓨터를 활용해 얼마든지 어렵지 않게 개성적인 글자체(폰트)를 만들어내지만 과거에는 달랐다. 인쇄된 글자가 예쁘려면 씨그림이라고도 하는 원도(原圖)가 예뻐야 했다. 이 원도는 손으로 그리는 수밖에 없다. 고도의 균형감각과 손재주가 있어야 했다. 최정호는 평생의 라이벌이자 같은 1세대 한글 디자이너인 최정순(1917∼2016)과 함께 보기 좋고 읽기 편한 한글 원도를 그리는 달인이었다. 한국전쟁 직후 폐허 속에서 우리가 번듯한 서체의 서적·신문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두 사람 덕이다. 둘의 업적과 흔적, 덧붙여 출판인쇄 기술의 변화상도 간략하게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서빙고로 국립한글박물관(관장 김철민)이 세종대왕기념사업회와 함께 5일 시작해 다음달 17일까지 여는 특별전 ‘최정호·최정순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원도, 두 글씨장이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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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순의 1959년 국어 교과서.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전시를 기획한 박물관의 유호선 글꼴센터 팀장에 따르면 5∼6㎝ 크기의 원도를 그리는 과정은 0.1㎜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피 말리는 작업이었다. 획의 굵기나 각도가 조금만 달라져도 글자의 느낌이 확 달라져서다. 더구나 원도를 바탕으로 납활자를 제작해 실제 인쇄해보면 당초 의도와는 다른 글자가 나오기 일쑤였다. 그래서 두 달인들도 하루 15시간 작업해 20장가량을 그릴 수 있을 뿐이었다고 한다. 한데 초·중·종성 자모가 변화무쌍하게 결합하는 한글 글자체를 한 벌 만들려면 자주 쓰는 것만 추려도 2500개가량의 글자를 그려야 한다. 두 사람 이력에 한 글자체를 개발하는 데 2, 3년이 걸렸다는 대목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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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호의 모리사와 사진식자용 한글 원도.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김철민 박물관 관장은 “두 분은 여러모로 인상파 화가 모네와 고흐를 연상시킨다”고 했다. 최정호가 일본의 폰트 개발업체 모리사와의 의뢰를 받아 이 회사 사진식자기에 필요한 원도를 그리는 등 좀 더 화려했다면 최정순은 상대적으로 묵묵하게 자기 길을 가는 스타일이었다는 얘기다. 최정호는 1957년 동아출판사 서체 원도를 그려 60년대 국내 출판사들의 활자 개량 붐을 불렀고, 최정순은 65년 창간된 중앙일보의 활자체 원도를 그리는 등 교과서·신문 원도 분야를 개척했다.

국립한글박물관서 탄생 100주년전
인쇄용 납활자 밑그림 ‘원도’ 제작
글자체 하나 개발에 2, 3년 걸려
최정순, 중앙일보 창간 활자체 맡아

전시에는 두 사람의 각종 원도들은 물론 루페(확대경) 등 작업 도구, 모리사와로부터 빌려온 최정호의 사진활자 원도 등 190여 점이 나와 있다. 유호선 팀장은 “두 분에 대해 알면 알수록 치열한 사명감과 극기의 정신이 원도 글자의 획과 획 사이에 흐르고 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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