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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일제강점기 도회지 풍경, 종이에 줄여 담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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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중국·일본 3국이 꿈꾸는 이상적인 도시를 한 방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제1부 ‘성문을 열다’ 전시실. 앞 왼쪽이 중국의 ‘청명상하도’, 오른쪽이 ‘고소번화도’, 그 끝 벽의 그림이 한국의 ‘태평성시도’, 오른쪽 벽 그림이 일본의 ‘낙중낙외도’다. [사진 김경빈 기자]

“즐비하게 늘어선 기와집 4만 호 물결 속에 방어와 잉어가 숨어 있는 듯하네. 화공은 털끝같이 세밀하게 그려 넣으려는 생각에 돋보기로 비춰보듯 종이 위에 줄여 담았네. 궁궐과 마을은 차례대로 늘어서고 큰 도성과 궁전은 처음과 끝이 트여 있네.” 정조 임금이 1792년 제작하도록 명한 ‘성시전도시(城市全圖詩)’ 중 2등을 차지한 박제가(1750~1805)의 시 한 구절이다. 번창해가는 한양의 시장 풍물을 비롯해 세속적인 도회지 풍경이 생생하다. 정조는 이 글에 ‘해어화(解語畵)’, 즉 말로 풀어 놓은 그림이란 어평(御評)을 내렸다. 18세기 조선의 도시가 사람들을 빨아들이며 상업도시로 변모해가는 모습을 실학자답게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미술 속 도시, 도시 속 미술’전
한·중·일 3국 이상향 견줘 볼 기회
랴오닝성박물관 소장‘고소번화도’
손톱 반쪽만 한 인물 수천 명 등장

박제가의 시 구절 덕일까. 적막하던 전시장이 두런두런 웅성웅성 사람들 입김에 부산해진다. 5일 서울 서빙고로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은 300여 년 전 한양으로 순간 이동했다. TV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 그려진 운종가(雲從街)가 눈앞에 보이고, 거리를 누비며 재력으로 새 취향을 뽐내던 중인(中人)의 발자취가 그림 속에서 살아 숨 쉰다. 특별전 ‘미술 속 도시, 도시 속 미술’은 조선 후기부터 1930년대까지 우리 미술 속에 나타난 도시 문화의 면면을 204건 373점 작품으로 풀어놓았다. 사대부의 엄숙한 유교 문화를 뚫고 발랄하게 솟구친 여항(閭巷, 중·서민층이 사는 시정 골목) 문화의 재발견이다.

‘한성도(漢城圖)’로 시작하는 1부 ‘성문을 열다’는 조선의 고유색이 난만하게 꽃핀 진경시대(眞景時代) 한양을 겸재 정선(1676~1759)과 강세황(1713~91)의 그림으로 살핀다. 조선뿐 아니라 중국, 일본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조선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와 나란히 중국 랴오닝성박물관 소장의 1급 문화재인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 ‘고소번화도(姑蘇繁華圖)’, 일본 ‘낙중낙외도(洛中洛外圖)’가 한중일 3국의 이상도시를 견주고 있다. 정조가 꿈꾼 계획도시 ‘화성(華城)’의 축성 후 면모도 볼 수 있다. 특히 18세기 신도시를 구상하던 조선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준 ‘청명상하도’와 ‘고소번화도’는 한꺼번에 전시되는 일이 드물고, 이번에도 진본은 23일까지만 공개돼 원화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다. 손톱 반쪽 쯤 되는 인물 수천 명이 등장하는 그림인데도 얼마나 정교한지 당대의 도시 풍광이 느린 비디오 보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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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의 그림 ‘주사거배’. [사진 간송미술문화재단]

2부 ‘사람들, 도시에 매혹되다’는 한양으로 모여든 사람들이 상품 화폐 경제에 적응하며 좌판이나 행상 등 상업 활동으로 부를 축적하며 새 유행을 창조하는 풍속을 담았다. 직업이 다양해지면서 별별 인간 군상이 출현한데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여가와 오락의 새 유행이 퍼져나가면서 그 현장을 담은 풍속화(風俗畵)가 기록사진 저리가랄 경지를 창조했다. 풍속화의 두 거장인 단원 김홍도(1745~1806 이후)의 ‘풍속도첩’과 혜원 신윤복(1758~1813 이후)의 ‘전신첩’이 어깨를 맞대고 있는 희귀한 진열장 앞에 관람객들 발길이 떨어질 줄 모른다. 이들의 빛나는 성취는 미술품의 수집과 유통, 후원의 과정에 기폭제가 돼 직업 화가가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조선 후기 서화수장가로 이름난 김광국(1727~97)은 자신이 수집한 회화를 모은 화첩 『석농화원(石農畵苑)』을 꾸몄는데 그 발문을 쓴 유한준(1732~1811)의 명문이 널리 회자된다. “알게 되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참되게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나니.”

도시적 풍류는 새로운 취향과 감각을 낳았다. 3부 ‘미술, 도시의 감성을 펼치다’는 생활 변화에 따른 문화 향유의 대중화와 이에 따른 소유욕의 흐름을 증언한다. 정조가 펼친 ‘책정치’의 근간이 된 ‘책가도’, 기교가 흐드러진 조희룡(1789~1866)의 ‘홍백매도’, 기기묘묘한 기물 등 도시의 욕망에 부응한 화려한 미술품이 광통교를 중심으로 미술품 유통의 새 길을 열었다.

전시는 4부 ‘도시, 근대를 만나다’에서 멈칫한다. 개항과 더불어 밀려든 신문물과 신매체를 채 소화하기도 전에 일제강점에 억눌린 식민지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고민해야 하는 뒤틀린 도시 경관을 통과해야 했다. 이수미 미술부장은 “옛 그림은 나이 든 사람들만 보는 낡은 유물이라는 인상을 털어내고 지금 여기서 우리 모두가 보고 즐기며 생각할 수 있는 생물임을 전시로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전시는 11월 23일까지(24일 휴관). 20일 오전 10시부터 대강당에서 연계 학술심포지엄, 다음 달 11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강연회가 열린다. 02-1688-0361.

글=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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