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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이덕희 “외국선 장애보다 제 나이에 더 놀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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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희는 귀가 들리지 않지만 순발력으로 단점을 극복하고 세계랭킹 100위권대에 진입했다. 그는 “테니스를 계속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고 말했다. [사진 우상조 기자]

“므자. 므자.”

작년 성인 무대 데뷔 세계랭킹 157위
한국 남자 테니스 역사 바꾸고 있어
어눌해도 말 계속 하려 수화 안 배워
어머니 “오심에 항의 못할 때 속상해”
나달 “그의 도전정신 배워야” 칭찬
“장애 극복? 열심히 살면 못느끼죠”

4일 서울 노원구 한국스포츠개발원에서 만난 테니스 선수 이덕희(18·마포고)는 어눌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이덕희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는 걸 보고 나서야 기자는 이 선수가 모자를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진 촬영을 하는데 모자를 써야 하느냐는 질문인 것 같아서 “괜찮다”고 대답했다.

이덕희는 청각장애 3급 테니스 선수다. 지하철이 옆에서 지나가는 소리도 듣지 못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침묵의 세계에서 살고 있지만 답답해 하지 않는다. 말투가 어눌해도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의사를 당당하게 표현하는 청년이다. 인터뷰 때도 다양한 표정과 손짓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덕희를 가르치는 우충효 코치와 가족의 도움을 받아가며 그와 인터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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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방한한 로저 페더러(왼쪽), 라파엘 나달과 함께 사진을 찍은 8세 때의 이덕희. [중앙포토]

이덕희는 일곱 살 때 처음으로 테니스 라켓을 잡았다. 책 읽을 땐 10분도 앉아있지 못했지만 테니스를 하면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했다. 공 튀는 소리를 듣진 못했지만 눈에 불을 켰다. 주위 소음이 들리지 않아 경기에만 몰두할 수 있는 건 이덕희 만의 장점이었다. 우 코치는 “귀가 안 들리는 대신 덕희는 눈이 발달했다. 시력은 1.2인데 동체시력(움직이는 물체를 보는 능력)이 뛰어나다”며 “상대 스윙을 보고 공의 구질과 방향·스피드를 예측해 빠르게 반응하는 능력이 수준급”이라고 설명했다.

이덕희는 테니스 4대 메이저(호주 오픈·프랑스 오픈·윔블던·US 오픈) 주니어 대회에 출전할 정도로 실력이 쑥쑥 자랐다. 현대자동차와 KDB산업은행 등이 이덕희를 후원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성인 무대에서 뛰고 있는 이덕희의 세계랭킹은 지난 1월 229위에서 최근 157위로 뛰어올랐다. 국내 남자 테니스 사상 최연소(만 18세2개월)로 세계랭킹 100위권대에 진입하는 기록을 세웠다. 지난달 25일 대만 가오슝 챌린저대회(세계랭킹 100~300위대 선수들이 출전하는 대회)에서는 랭킹 142위 정현(20·한체대)과 결승에서 맞붙어 세트 스코어 0-2로 졌다. 비록 이기지는 못했지만 이덕희는 생애 첫 챌린저대회에서 준우승을 거뒀다. 그는 “올해 100위 안에 드는 게 목표다. 나보다 나이가 많고, 랭킹이 높은 선수들과의 대결에서 이기면서 욕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장애인이 엘리트 스포츠에서 뛰는 것 자체가 엄청난 도전이다. 심판판정에 제대로 항의하지 못해 답답한 적도 많았다. 이덕희의 어머니 박미자 씨는 “심판의 콜로 상대는 멈춰섰는데, 덕희는 듣지 못하는 탓에 열심히 공을 따라간 적이 있었다. 그럴 땐 너무 속이 상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덕희에게 수화를 가르치지 않았다. 어눌하더라도 말로 의사소통을 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주위에선 “성인 무대에 올라가면 장애로 인해 한계가 드러날 것”이라며 혹평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덕희는 그런 우려를 오직 실력으로 날려버렸다. 매일 7시간씩 지독하게 훈련했고, 로저 페더러(35·스위스), 노박 조코비치(29·세르비아), 라파엘 나달(30·스페인) 등 톱랭커들의 동영상을 보며 연구를 거듭했다.

덕분에 이제 이덕희는 세계 무대에도 이름을 많이 알렸다. 지난 2013년 이덕희가 남자프로테니스(ATP) 선수들 가운데 최연소(14세10개월)로 랭킹포인트 1점을 땄을 때 나달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이덕희의 소식을 전했다. 나달은 당시 “그는 항상 도전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나달의 팬 460만 명이 그 글을 읽었다. 이후 이덕희와 나달은 친구가 됐다.

주니어 시절 출전한 메이저 대회에서는 나달·조코비치 등의 훈련 파트너로 귀중한 경험을 쌓았다. 이덕희는 “나달의 스트로크는 내가 예상한 것보다 회전이 많았다 ”며 “스타 선수들이었지만 거만하지 않았다. 자신의 플레이를 숨김없이 보여줘서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영국 방송 BBC, 프랑스 신문 레퀴프 등의 세계적 매체들이 이덕희와 인터뷰를 했다. 이덕희는 “해외 미디어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그들은 나의 장애보다 내가 아직 18세인 걸 놀라워 한다”고 말했다. 어머니 박씨는 “덕희가 참 대견하다. 세계 1위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테니스를 즐겁게 치면서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이덕희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자신의 장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장애는 극복하는 게 아니다. 그걸 안고 열심히 살다 보면 어느새 장애를 느끼지 않게 된다.”
 
이덕희는…
생년월일 : 1998년 5월 29일(만 18세)
체격 : 1m75㎝, 70㎏
세계랭킹 : 157위
플레이 스타일 : 강한 스트로크 내세운 파워 테니스
경력 : 호주오픈 남자부 최연소(17세7개월) 출전, 국내 남자 최연소(18세2개월) 세계랭킹 100위권대 진입

글=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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