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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 제8요일의 남자] #18. 이별은 언제나 아프다.

“한 번 껴볼래?”
 
더블은 보석함을 열더니 조심스레 반지를 꺼내 내 앞에 놓았다.
조그만 루비 알이 박힌 얇은 링은 하얀색 벨벳 천 조각 위에서 빛을 내며 반짝이고 있었다.
 
탄성이라도 지르며 당장 손가락에 걸어 볼 줄 알았던지 더블은 재촉하듯 내게 시선을 건네고 있었지만 나는 반짝이는 루비에 눈을 두는 것으로 그것을 받아들였을 뿐이었다.
더블은 자신의 시선을 얼른 거두어 갔다.
 
서빙 직원이 케익을 가지고 와 초에 불을 붙였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예쁜 신부가 데코레이션 된 작은 케익이었다. 다른 테이블 사람들이 수군대며 우리 쪽을 돌아보았다. 누가 보더라도 프러포즈를 하고 있는 걸로 보였을 것이다.
 
더블은 나와 시선이 부딪치는 걸 피해 애써 다른 것들에 눈을 두고 있었지만 나는 내내 더블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별하자며 꺼내 놓은 선물이 반지라니... 거기에 신부가 조각된 케익이라니.... 눈이 마주치면 물어보고 싶었다. 내게 왜 이러는 거야.....
 
더블은 평소처럼 내 앞에 냅킨을 펴주고 수저를 가지런히 챙겨주면서도 시선은 내내 다른 곳을 향해있었다.
 
“마음에 안 들어?”
 
더블은 턱을 옆으로 살짝 치켜들고는 조금 소리 내어 웃었다.
나는 말없이 그의 두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우리는... 나와 더블은, 한 마디 말이면 알아 듣고 한 번의 눈짓이면 알아차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늘 짧은 문장만을 주고받으면서도 누구보다 서로를 잘 이해했고 수용했었다.
 
“왜 이러는 거야...”
 
내 말에 더블이 씨익 웃었다. 내 질문을 이미 짐작했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자신도 왜 그러는지 모르겠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너... 나 좋아하지?”
 
더블은 뜬금없는 말을 던져놓곤 물 컵을 집어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주문한 음식이 날라져 왔다. 서빙 직원이 와인을 오픈해 디켄더에 따르며 케익의 불을 꺼도 좋은 지 묻자 더블은 말없이 촛불을 향해 입으로 훅 바람을 불었다. 그러곤 혼자 피식 웃었다.
 
“그런데 미주야...”
 
담담하고 침착한 목소리가 내게로 건너왔다.
 
“네가 나 좋아하는 것 열 배쯤 내가 너 좋아해.”
 
좋아해, 라는 부분에서 잠시 흔들리던 목소리는 곧바로 다시 담담함을 되찾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대답은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오랜 시간을 친구로, 연인으로 만나오며 수없이 많은 말들을 주고받았지만 지금 더블은 혼자 독백을 원하는 것 같았다.
 
더블의 잔에 와인을 따르자 기다렸다는 듯 그가 들이켰다. 그리고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나도 내 잔에 따라진 와인을 훌쩍 넘겼다.
 
“나는 미주야. 너를 안고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어.... ”
 
과거형 서술어가 마치 앞에 말한 이별에 확고한 증거처럼 느껴졌다. 정말 나와 헤어지려 하는구나. 그래서 문장이 길어지고 잘 웃지 않던 웃음을 웃는 구나.
 
“그런데 그, 충만한 행복은 그저 한 순간일 뿐이야. 한 순간 뿐이라는 게 문제는 아니야. 진짜 내 딜레마는 그 짧은 순간의 행복감이 나머지 긴 시간들을 장악하고 고통스럽게 해. 순간일 뿐인 그것들을 계속 지속하고 싶은... 그래서... 내가... 그걸 감당할 수가 없어.”
 
왜 그걸 통제하지 못하지? 밤과 낮을 분리하듯이 감정과 일상에 왜 경계선을 긋지 못하지? 묻고 싶었지만 나는 그의 독백에 끼어들지 않았다.
 
“나는 너를 다 가지고 싶어. 네 생각과 네 영혼과 네 정신까지도. 내가 그리는 모든 그림을 너를 위해 바치고 싶어. 죽는 날까지 내가 하는 모든 것들 너를 통해서 너를 위해서만 행위하고 싶어져. 그런데 그건 네가 견디지 못할 거야.”
 
그건 아니었다. 그건 나를 위해서도 더블 자신을 위해서도 전혀 아니었다. 그건 사랑이 아니다. 상대에 대한 집착이며 자신에 대한 구속이다. 그건 아니잖아. 그럴 수는 없지. 나는 말없이 더블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내가 견딜 수가 없어. 그래서 헤어지려고 하는 거야.”
 
더블의 목소리에 균열이 생겼다. 그는 잠시 이마를 찡그렸다 펴더니 벌떡 일어나 담배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어떤 일이든 감정이 섞이면 마지막을 정하는 지점이 모호해진다. 감정이란 서로 주고받는 것이어서 한 사람이 먼저 종료하고 싶어 한다고 해서 인터넷 창이 꺼지듯 클릭 한 번으로 이 전의 것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감정으로 만들어진 관계엔 반드시 종료할 때 상대의 동의가 필요하다. 나는 언제나 그 요청에 동의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엄마처럼 동의하지 않고 피해 다니는 비겁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더블은 내게 7분의 1의 지분을 가졌을 뿐이다. 나는 가볍고 쉽게 곧바로 그 요청에 응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자리로 돌아온 더블의 눈을 담담하게 바라 볼 수 있었다.
 
“차라리 네가 내게 어떤 짧은 유희였음 좋겠다고 생각 했던 적도 있어. 그 순간만의 충족이나 행복으로만 끝나는. 그 순간은 그저 그 순간으로 해소되고 마는 그런.”
 
더블은 그렇게 말하며 나를 향해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너는 내게 그런 존재일 수가 없어. 네가 인정하든 아니든 너에겐 내 지분이 있어. 나에게 네 지분이 있듯이. 너는 내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없는 거야. 너는 내게 일회적인 유희일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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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라는 말이 내 가슴 어디를 걷어차는 것처럼 아찔했다. 나는 사랑과 유희를 구분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나는 정말 우리가 영원히 각자의 생을 존중하면서 평행선처럼 그렇게 사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어.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왜? 왜 그게 불가능하지? 그래서 튜즈한테 더러운 욕망이라고 표현했었나? 자신에게 사랑이 욕망이듯이 남들도 그럴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갑자기 더블을 공격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미주야. 너한테 묻고 싶었어....”
 
내 생각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처럼 쓴 웃음을 웃으며 그가 나를 건너다 보았다.
 
“우리 결혼할래?”
 
더블은 내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도록 내 입을 막아버렸다.
태초부터 독신으로 태어났다며 자신의 생에 결혼이란 없을 거라며 스무 살 적부터 호언해왔던 더블이 결혼이라는 단어를 발음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겐 충격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좀 전에 그가 내게 그랬듯 세차게 고갤 흔들었다.
 
“그렇게 말하지 않고 헤어지자고 해도 돼....”
 
내가 무슨 말을 하려하자 긴장한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던 더블은 금세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우린 아무 말 없이 술을 마셨다. 서로 잔을 채워주면서 가끔 건배를 하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침묵이 필요했다. 더블은 자신이 쏟아놓은 말을 다시 새김질해야했고 나는 내가 들은 말들을 정리해야할 시간이 필요했다.
 
와인 한 병이 더 날라져왔고 우린 침묵을 안주삼아 두 번째 와인을 비웠다. 그렇게 한 시간쯤의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그곳을 나왔다.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더블의 바이올렛 셔츠가 바람에 살랑이고 있었다.
 
더블이 내 손을 잡았다. 나도 더블의 손을 꼭 잡았다. 손에서 손으로 내 마음이 더블의 마음이 오고 가고 오고 가는 게 느껴졌다.
 
“미주야. 나... 나쁜 놈이야. 나는 항상 네가 상처입고 내게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네가 내게만 의지하고 내게만 보호를 받고 싶어 하게 될 것 같았거든.”
 
엄마집 앞에 다다라 더블과 나는 어둑한 나무 아래서 마지막 키스를 나누었다. 10년 전 축제가 끝난 어느 밤의 교정에서처럼 그렇게 한참을 나무 밑에 서 있었다.
 
더블은 긴 키스를 마치고 내 이마에 입을 맞춰 주었다. 그리고 잡은 손을 들어 손등에 한참 입을 맞추었다. 손등에 따뜻한 물기가 느껴졌다.
 
더블을 보내고 한참 나무 아래 서 있었다. 돌아서 가는 더블의 모습이 아파서가 아니라 내가 너무 아파서 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엄마가 끝끝내 아버지 곁에서 버텼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이런 순간의 아픔이 너무 싫어서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었다.
 
더블 앞에서 그 반지를 한 번 손가락에 걸어나 볼 걸 후회가 되었다. 그것을 다시 집어넣는 더블의 모습이 자꾸만 내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이러고 다니고 싶어서 혼자 독립해서 살려고 했던 거니?”
 
엄마가 앞에 서 있었다.
 
“엄마...”
 
엄마는 앞장서 아파트 계단을 올랐다.
 
엄마는 따듯한 꿀물을 내주곤 나를 식탁에 앉혀놓았다.
 
“너는 우리 부부한테 자랑스러운 딸이었어. 그런데 지금 너는... ”
 
“엄마..”
 
엄마의 말을 끊고 내가 말을 가로채었다. 엄마로부터 극단적인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왜 그러는 지 알겠어... 알아서 할게요. ”
 
“네 아빠가 너를 얼마나 애지중지하는 바람에 내가 너를 상전으로 떠 받들며 키웠어. 내 몸으로 내가 낳아놓고도 너한테 내 맘대로 화도 한 번 못내고 키웠어.”
 
“또 그이야기...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
 
식탁에서 일어서려는데 엄마의 말이 다시 날아 왔다.
 
“그래서.. 국회의원인지 뭔지 하는 사람 부인이 나를 찾아오게 하니?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남의 남자를 니가 엿본 거야? 내가 너를 그 정도 밖에 안되게 키웠어?”
 
다리가 후들거렸다.
 
“누가 찾아왔다고?”
 
“장뭐라는 국회의원 부인.”
 
한연수가..... 엄마를 왜.... 나는 머리가 아찔했다.
 
“언제?”
 
“내가 병원에 입원하기 전 날... 집 근처로 왔더라.”
 
“왜? 엄마한테 왜...?”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나는 한참을 식탁에 앉아있었다. 술 때 문인지 엄마 때문인지 밤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언니, 저 요즘 국회 출근 안해요. 설명하려고 하면 길구요... 제가 한 번 언니 찾아뵐게요. 미안해요 언니...”
 
국회에 주차를 하고 전화를 했더니 희정은 더 이상 출근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미리 전화해도 의원실로는 오지 말라고 할 것 같아 곧장 온 것인데... 하지만 희정 아니더라도 다른 직원이라도 만나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정과 오비서관과 한연수의 사이에 뭔가 내가 알아야할 일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주차장에서 나오다 김천수라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박장희의원 보좌관 김천수라고 지난번 국회도서관 카페에서 내게 명함을 건넨 사람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또 만났네요?”
 
그는 나를 보자마자 곧장 성큼성큼 내게로 다가왔다.
 
“오늘 입으신 트렌치코트는 제가 본 것 중에 최곱니다. 옷은 정말 누가 입느냐가 젤 중요한 것 같아요.”
 
그는 지난번처럼 너스레를 떨었다.
 
“장현수 의원실 옆방이라고 하셨죠?”
 
“아 그럼요. 오늘도 정희정씨 만나러 오셨어요?”
 
“네...그런데...”
 
“저랑 같이 가시면 되겠네요. 저도 사무실 올라가는 길입니다.”
 
“희정씨는 요즘 사무실 나오지 않나요? 장현수 의원실 정리한다는 말을 들어서...”
 
“사무실이야 정리하겠지만 희정씨는 마지막까지 나와야죠. 터줏대감이잖아요.”
 
의원회관 7층 승강기에서 내려 앞 서 걷던 그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오늘 점심은 저랑 같이 드시는 겁니다. 제가 꼭 여쭤볼 말이 있어요”
 
그를 따라 걷는데 희정이 에프의 사무실에서 걸어 나왔다.
 
“보좌관님. 잘 만났어요. 오늘 우리 방이랑 점심 같이 해요. 이비서관이 생일이라 한 턱 낸대요.”
 
희정은 미처 내가 뒤따라오는 걸 보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 제8요일의 남자 더 보기
#1. 화요일의 남자, 튜즈
#2. 7분의 1을 넘나드는 남자, 에프

#3. ‘당신의 어둠 속에 나도’
#4. “그날, 당신에게 주고 싶었던 것”
#5. 엠, 월요일을 싫어하는 남자
#6. 어떤 고백
#7. 한 잎의 여자
#8. 당신은 어디 있나요?
#9. 그 여자 미주 -내 이름은 튜즈
#10. 이미 시작된 일
#11. 말할 수 없는 비밀
#12. 점점 깊은 곳으로
#13. 기억의 영속
#14. 카메라오브스쿠라
#15. 왜 하필 장현수야?
#16. JEAN이라는 남자.
#17. 미로 속 그물

<다음주 월요일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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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정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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