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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바람결에 흩날리고 강을 따라 떠도는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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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 없이 방으로 돌아와 종이를 펼쳤다. 흰 종이가 그믐밤에 마주한 절벽처럼 막막했다.
떠돌아다니며 온갖 고난을 겪었다. 한밤중에 한 발만 잘못 디뎌도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위태로운 길을 걸은 적도 있었고, 갑자기 비가 쏟아져 강물이 넘쳐 물에 빠져 이제 죽는구나 싶은 날도 있었다. 절벽을 따라 걸을 땐 더듬더듬 발을 디뎠다. 물에 빠졌을 땐 뭐든지 붙들고 매달려 살아남았다. 하지만 텅 빈 종이 앞에서는 붙잡을 것도, 매달릴 것도, 발을 디딜 곳도 없었다.

고난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길이 싫었던 적은 없었다. 언제나 다음에 도착할 마을을 설레며 기다렸다. 이렇게 고통스럽고 힘든 길은 내 길이 아니었다.
 
나는 붓을 들었다. 그리고 처음 서가에 온 날, 노인이 그간 떠돌며 보고 들은 바를 적으라 했을 때 쓰던 기분으로 쓰고자 했다.

말처럼 쉽지 않았다. 정사 이야기를 빼니 밋밋했다. 사내와 떠돌아다닐 때 절정은 늘 사내와 아낙이 한 이불을 덮었느냐 아니느냐였다. 쓰던 여행기를 버리고, 기억을 헤집었다. 늘 그런 이야기만 있던 건 아니었다.
 
사내가 솜이불을 샀다. 질이 좋은 솜이라 얇으면서 따뜻했다. 사내는 대도시에 가 상인들에게 비싼 값에 팔리라 하며 솜을 덮을 비단까지 샀다. 사내는 솜과 비단으로 산더미 같은 짐을 지고 다른 짐은 모두 내게 맡겼다. 부피는 작아도 내 짐이 훨씬 무거웠다. 사내는 내가 쓸모 있다며 좋아했다.

다음 마을에 가려면 강을 건너야 했다. 전에도 몇 번 건너 본 바 있는 강이었는데 비로 불었다. 나무다리가 발목까지 물에 잠겨 있었다. 마을 주민 몇이 만류했지만 사내는 다음 장을 놓칠 수 없다며 강행했다.

세찬 비를 못 견디고 강 중간에서 다리가 끊겼다. 사내는 그런 줄도 모르고 발을 딛다가 물에 휩쓸렸다. 솜은 삽시간에 물을 먹었고, 사내는 다리를 엮은 줄을 붙들고 매달렸다. 줄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았다. 나는 난간을 잡고 매달려 칼을 꺼내 사내의 짐을 잘랐다.

사내는 물속으로 가라앉는 솜이불과 나와 내 등에 진 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화풀이로 얻어맞을 각오를 했는데, 사내는 내 짐을 나눠 메더니 “장에 가면 이 이야기를 풀어 봐라. 그래야 남은 거라도 팔지.”라고 말했다.
 
노인이 여행기를 읽고 날 불렀다. 이 여행기로도 안 된다면 더는 답이 없었다. 노인이 서한을 뒤적였다.
 
“그래, 여기 있구나.”
 
노인이 한 서한을 꺼냈다.
 
“이 자는 영주가 아니야. 상인이다. 요즘은 상인들도 여행가를 후원하지. 여행기를 귀히 여길 줄 모르고, 그저 돈에 취해 영주 흉내를 내려는 자들이다만…….”
 

노인은 차근차근 서한을 다시 읽었다.
 
“어처구니없는 서한이라 치워두었더랬다. 몇 여행가를 후원했으나 하나같이 지루한 이야기만 보내더라고, 재미있는 여행기를 쓸 사람은 없는지 묻더구나. 이 자라면 네가 억지로 다른 이처럼 쓰려 하지 않아도, 네 여행기를 받아 줄지도 모른다. 보내 보겠느냐?”
 
“허락하신다면요…….”

 
나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방으로 돌아가 상인에게 보낼 여행기를 필사했다. 한 글자, 한 글자 공들여 쓰다 보니 오래 걸렸다. 이번이 내 마지막 기회였다. 이번에도 되지 않으면 더 머물 염치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노인이 내게 종이를 내밀었다. 내 여행기였다.
 
“어르신!”
 
나는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노인이 나를 위해 내 여행기를 필사했다. 노인의 성정이 그대로 묻어나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글자였다. 다시 한 번 괴발개발인 내 글씨가 모자란 내 마음 같아 부끄러웠다.
 
“마음에 드느냐?”
 
노인이 물었다. 모르는 이들에겐 아무 감정 없이 묻는 말로 들리겠으나, 이는 노인이 내는 가장 다정한 목소리였다.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상인에게 이걸 보내 보자꾸나.”
 
“감사합니다.”

 
나는 노인에게 머리 숙여 인사했다.
 
하루하루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나는 초조하게 답신을 기다렸다. 수없이 여행기를 보냈다. 단 한 번도 답신을 받은 적이 없는데도 매번 똑같이 떨렸다.
한 달 후 상인에게 날 후원하겠다는 답신이 왔다.
 
“어르신, 제가 정말 상인 밑으로 가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떠나기 전 용기를 내어 물었다.
여행가들 사이에도 등급이 있었다. 상인을 섬기는 자는 은연중에 멸시받았고, 그런 여행가를 배출한 서가를 향한 눈도 곱지 않았다. 쫓겨난 아이가 노인이 나 때문에 곤욕을 치른다며 나무랐던 말이 귓가에 쟁쟁했다.
 
“전에도 말했다만 네겐 자질이 있단다. 그 자질을 허투루 쓰는 게 늘 아쉬웠는데……. 좀 더 어릴 때 내게 왔더라면 좋았을 것을…….”
 

노인의 입가에 드물게 웃음이 걸렸다.
 
“네가 지금 날 걱정할 처지더냐?”
 
“저 같은 놈을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소리가 떨렸다.
 
“내 밑에 얼마나 있었지?”
 
“7년입니다.”
 
“아주 어릴 때 오는 아이들은 10년은 가르친단다. 20년씩 배우다 떠난 이도 있어. 네 뒤에 온 아이 자질이 유별나 네가 뒤처진 것처럼 보일 뿐, 7년이면 늦은 게 아니다. 넌 이제 여행가다. 네 길을 걷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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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네 번째이자 이 서가에서 출발하는 마지막 여행을 위한 짐을 꾸려 주었다. 나는 노인에게 큰 절을 올리고 서가를 떠났다.
 
날이 밝았다. 의원이 와 다시 진맥을 하더니 많이 좋아졌다며 약을 받아 가라 이르고 갔다.
좋아졌다고? 어제보다 더 기운이 없었다. 여관에서 일하는 꼬마가 음식과 약을 가져다주었다. 적어도 당장 약값과 밥값 걱정은 안 하는 게 어디랴 싶었다. 모두 그때 날 후원한 상인 덕분이었다.
 
보름을 꼬박 걸어 상인의 집에 당도했다. 영주의 저택 못지않게 꽃문양을 새긴 돌담에 솟을대문을 높이 올렸다. 집사가 내 이름을 듣더니 날 상인에게 인도했다. 상인은 40줄에 이른 키가 크고, 살집이 좋은 사내였다. 나는 그간 쓴 여행기를 건넸다.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상인은 심드렁하니 여행기를 뒤적이다 말했다.
 
“읽기는 좀 귀찮고……, 숫자는 괜찮은데 글자만 보면 졸린단 말이지. 내 식사할 동안 자네가 한 번 읊어 보게.”
 
수십 가지에 이르는 진미가 상에 올랐다. 하나씩 맛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찰 것 같았다. 나는 몇 가지를 이야기했는데 상인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그래도 종이는 건진 게 어디랴 하고 터덜터덜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농번기라 다들 밭일을 하러 나가 마을은 조용했습죠. 웬 아낙이 남편 줄 새참을 들고 가는데…….”
 
나는 점점 자신을 잃고 무슨 소리를 하는 지도 모를 이야기를 지껄였다. 이대로 쫓겨나겠구나. 상인이 자길 만나러 오는데 쓰라고 준 돈은 오는 길에 다 썼다. 앞날에 대한 막막함보다 내게 헛된 시간을 쓴 노인에게 면목 없어 죽고 싶었다.
 
“아낙?”
 
상인의 눈이 반짝였다. 익숙한 눈빛이었다.
 
“네네, 아낙이 절 보더니, 어쩌다 이렇게 흠뻑 젖었느냐 해서…….”
 
아낙은 식구들에게 땅 마지기를 준다는 늙은 남자에게 팔리다시피 시집왔다. 예순이 넘은 남편은 밤에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아낙은 젖은 옷을 말려 준다며 날 으슥한 뽕나무 밭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다짜고짜 옷을 벗겼다. 싫다 좋다 말할 새도 없었다.
아낙은 종이와 붓을 빼앗아 그걸 미끼로 떠나지 못하게 하며 마을 과부 집에 날 숨겼다. 나는 늙을수록 눈치가 빨라진 남편이 아낙 뒤를 미행할 때까지 아낙과 과부를 번갈아가며 상대했다. 아낙도 만만치 않아 남편이 쫓아오는 걸 알아채고는 과부 집에서 같이 말린 고추를 거두며 시간을 보내다 태연스레 집에 돌아왔다. 다음 날 종이와 붓을 돌려받고 밤중에 도망치듯 마을을 떠났다.
 
“과부가 순순히 보내 주든가?”
 
“물론 마지막 정을 나눴습죠.”

 
말을 마치자 상인은 껄껄 웃었다. 그는 주위를 물리더니 내게 음식과 술을 권했다. 내가 먹을 만큼 먹고 적당히 취하자 상인은 당연하다는 듯 내게 올라탔다.
상인의 부인은 영주의 딸이었다. 같은 담 안에서 지내도 처소가 달랐다. 상인은 영주의 딸과 혼인해, 부인을 통해 영주들에게 적절히 뇌물을 바치며 영역을 넓혀나갔다. 영주 부인은 가문이 몰락해 가던 터라 상인을 남편으로 맞아 화려한 생활을 영위하는 걸로 만족했다. 부부는 꼭 필요한 자리에만 함께 동석할 뿐 남남이나 마찬가지였다.
 
한 달 동안 상인 집에 머물며, 그간 차마 여행기에 쓰지 못하던 온갖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상인이 귀여워하기엔 너무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상인은 거의 매일 밤 날 찾을 만큼 내게 푹 빠졌다. 심하게 때리는 일도 없었다.
한 달이 지나자 상인은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오라며 후하게 돈을 줘서 날 보냈다.
 
노인은 내게 자질이 있다 했다. 내가 아는 내 유일한 자질은 사람들 사이를 간파하는 재주뿐이었다. 나는 며칠 지내는 것만으로, 때로는 말 몇 마디만 나눠도 마을에서 정이 통한 자들을 귀신같이 알아챘다. 상인은 그런 이야기를 좋아했다.
영주나 부유한 상인들은 대체로 정략결혼을 했다. 부부가 정을 나누는 일은 드물었고, 배우자에게 애인이 생겨도 모르는 척했다.
 
“이게 말이 되느냐고? 응? 그래도 부인인데, 손가락 하나 못 건드리게 하지, 내가 계집이고 사내고 침대로 끌어들이든 말든 눈 하나 까딱 안 하고, 명색이 마누란데, 딴 놈들이 침대에 드나드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해야 하고, 이게 도대체 무슨 재미냔 말이지? 돈? 그래, 돈이야 아주 실컷 벌고 있지. 계집이든 사내든 돈만 있으면 못 찾을 것도 없지. 하지만, 아무튼 간에 마누라잖아, 안 그래?”

 
“그러게나 말입니다, 주인님.”
 
상인 밑에서 상인이 새로 맞이한 여행가가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상인이 새 여행가와 일을 마치자 나는 상인과 새 여행가를 위해 술을 따라 주었다. 상인을 위해 여행한지 5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상인은 몇 주 정도 우리 둘을 번갈아 침대로 부르거나 한꺼번에 희롱했다. 하지만 결국 새 여행가에게 마음이 굳었다.
상인은 그간 많은 이야기를 즐겁게 들었다며 곧 추워지니 봄이 올 때까지 머물러도 좋다고 했다.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들은 새 여행가의 안색이 바뀌었다. 나는 괜찮다고 사양했다. 상인은 더 권하지 않고 묵직한 돈주머니와 몇몇 상인에게 날 추천하는 추천서를 써 주더니 새 후원가를 찾길 바란다고 어깨를 두드리며 날 보냈다.
 
상인의 집을 나오니 눈앞이 아득했다. 이제 어째야 하나. 다른 여행가는 이럴 때 어떻게 하나. 노인에게 돌아갈 면목은 없다 여겼는데,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몇 날 며칠을 걷다 정신을 차려 보니 서가 앞이었다. 거짓을 고할 순 없지만 여기까지 와서 한 번 들르지도 않고 돌아갈 수는 없었다. 노인에게 그래도 몇 년 간 후원가에게 사랑받았다고, 여행가로 잘 살고 있다 인사라도 하려 마음먹고 서가에 들어갔다.
 
서가에는 처음 보는 이가 있었다. 나는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덕분에 좋은 여행가가 되었다고, 인사라도 드리려 들렀는데…….”
 
그가 안쓰러운 눈으로 날 보더니 말했다.
 
“몇 달 전에 떠나셨네.”
 
무릎이 풀려 주저앉았다. 서가를 지키는 이가 다가와 서둘러 날 일으켰다.
 
“이름이 뭔가?”

 
나는 이름을 말했다. 그는 서한을 하나 건넸다.
 
“자네를 많이 아꼈나보이. 서한을 남긴 이는 자네뿐일세.”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황망히 서가를 나왔다. 서한을 뜯을 엄두도 나지 않아 그저 품 깊이 갈무리하고 도시를 떠나 정처 없이 걷다 이 마을에 도착했다. 도시를 나올 때부터 몸이 좋지 않다 싶더니 난생처음으로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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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장편 [지우전 : 모두 나를 칼이라 했다], [부엉이 소녀 욜란드],
작품집 [원초적 본능 feat. 미소년], [각인]을 출간하고 다수의 공동 작품집에 단편을 수록한 이 인간의 작업 책상에는 컴퓨터, 프린터/스캐너 복합기, 지난 밤 마신 맥주 캔, 고양이가 있다. 네 발 달린 아해가 책상을 오르내리며 키보드를 밟아도 오타는 모두 작가의 책임이라는 게 냉엄한 현실.

오늘도 글을 쓰며 고양이와 키배, 아니 키보드 쟁탈전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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